[의학신문·일간보사=이재원 기자] 최근 인공지능(AI) 기반 의료기술이 ‘선진입’ 및 ‘즉시 진입’ 제도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임상적 유용성 입증 방식과 평가체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학계·시민사회·평가기관에서 동시에 제기됐다. 특히 단순 정확도 중심의 성능 평가를 넘어 실제 환자 기여도를 반영하는 관리지표 도입과, 검증 절차 약화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지난 7일 열린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연례학술회의에서 울산의대 박성호 교수는 “선진입 제도 도입 이후 평가기관 입장에서는 오히려 어려움이 커졌다”며 “특히 초기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입하는 AI 기반 진단기술은 유용성과 불확실성을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의료기술평가 연관 시장 평가 유예 및 선진입 제도들. /사진 제공=한국보건의료연구원
박 교수는 AI 의료기술 평가의 핵심 쟁점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간 ‘평가 관점 차이’를 지목했다. 식약처가 모델의 정확도 등 성능 중심으로 허가를 내리는 반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실제 진료에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간극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AI 모델의 성능이 높다고 해서 임상적 유용성이 자동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단순 정확도를 넘어 실제 의료현장에서의 활용 맥락을 반영한 연구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AI 진단기술이 ‘휴먼 단독’이 아닌 ‘AI 보조 인간(Human-assisted AI)’ 형태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기존 평가 방식의 한계도 지적됐다. 예컨대 대장내시경 병변 탐지 AI의 경우 개별 이미지 단위 정확도와 실제 검사 과정에서의 성능은 다를 수 있으며, 의료진의 주의 분산 등 ‘휴먼 팩터’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임상적 유용성 평가는 민감도·특이도 중심 분석을 넘어 비교효과연구(Comparative Effectiveness Research, CER) 기반으로, ‘AI 사용군과 비사용군’ 간 실제 진료 결과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환자 아웃컴 개선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진단 수율(diagnostic yield)’ 등 중간지표 활용 필요성도 제기됐다. 더 나아가 ‘NNT(Number Needed to Test)’ 개념을 도입해, 특정 기술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추가 환자 발견에 기여하는지를 직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AUROC 등 성능지표만으로는 환자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NNT와 같은 지표를 활용하면 특정 집단에서의 효용성을 보다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 확산에 따른 새로운 위험요인도 언급됐다. 그는 “오류가 포함된 AI 결과를 제시할 경우 숙련된 의료진조차 판단 정확도가 저하되는 ‘오토메이션 바이어스’ 문제가 있다”며 “향후에는 진단 과정에서의 위해(harm)까지 평가에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멀티태스크 AI 등장에 따른 평가체계 한계도 제기됐다.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AI의 경우 개별 성능지표 평가가 어려운 만큼, 실제 사용 기반의 유용성 평가와 관리지표 중심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선진입 제도는 일정 기간 근거를 축적한 뒤 본평가로 이어지는 구조”라며 “현 단계에서 평가 방법론과 관리지표를 정교화해야 향후 보험 등재까지 합리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NECA 연례학술회의.
시민사회에서는 이러한 시장 선진입 제도 환경이 AI 의료기술 검증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의료 AI가 전문의를 능가한다는 식의 보도가 많지만, 실제로는 제한된 환경의 후향적 연구가 대부분”이라며 “임상 현장에서는 기대한 성능이 재현되지 않는다는 점에 학계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 AI는 의사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보조하는 기술인 만큼 인간과의 상호작용, 실제 진료 흐름, 위험성까지 함께 검증돼야 한다”며 “간접지표를 통해서라도 임상적 유용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제는 검증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기존 평가 기준이 있음에도 선진입 및 즉시 진입 제도를 통해 이를 건너뛰고 있다는 점”이라며 “정확성조차 불확실한 기술이 의료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장에서는 일부 영상 판독 보조 AI 등이 비급여 청구를 전제로 도입되며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는 “이러한 흐름이 과연 혁신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며 “사용 자체가 부적절한 ‘문제적 비급여’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검증되지 않은 기술의 비급여 확산이 근거 기반 의료체계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경고도 이어졌다. 전 국장은 “이러한 흐름은 기존 의료기술 평가 및 급여 등재 시스템의 원칙을 흔들 수 있다”며 “환자 안전과 공익 관점에서 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평가기관 역시 AI 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제도적 부담과 한계를 인정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최지은 신의료기술평가본부장은 “현재는 AI라는 새로운 의료환경과 기존 평가·보상체계가 충돌하는 지점에 있다”며 “임상적 유용성 입증과 이를 보상체계와 연결하는 문제가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2026년 4월 기준 혁신의료기술 43개, 평가유예 기술 58개 등 100여개 이상의 선진입 기술이 본평가를 앞두고 있다. 제한된 근거 상태에서 도입된 기술을 재평가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AI 기반 진단기술 평가에서 ‘분모(적용 대상 환자군)’ 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단순 정확도 지표가 아닌 실제 임상 적용 집단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술의 유용성과 재정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 본부장은 “분모를 무한정 확대하면 검사 비용 자체가 보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특히 검사 필요성이 낮은 집단까지 포함하면 정확도는 높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임상적 유용성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때문에 NECA는 단순 성능보다 ‘어떤 집단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결과를 내는지’에 더 집중하고 있다”며 “향후에는 진단 수율이나 NNT(Number Needed to Test)와 같은 지표를 평가체계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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