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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 사업자들이 양질의 '출판 콘텐츠' 구매할 수 있는 마켓 열겠다"

두산동아에서 4년간 근무한 뒤 1993년 IT·실용 분야 전문 출판사인 한빛미디어를 설립했고, 이후 한빛비즈·한빛아카데미·한빛N 등을 잇달아 세우며 출판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AI 사업자들이 양질의 '출판 콘텐츠' 구매할 수 있는 마켓 열겠다"

대학교재 디지털 유통 플랫폼 마련

종이책 보다 싼 전자책 제공할 때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가 인공지능(AI) 대중화 시대를 맞아 출판산업의 생존 전략과 정책 방향을 공개했다. 출협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에서 김태헌 신임 회장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출판산업을 단순한 종이책 생산업에서 ‘텍스트 콘텐츠 기반의 IP 및 서비스 산업’으로 재정의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교수신문은 기자 간담회 이후 김태헌 회장과 인터뷰를 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에서 김태헌 신임 회장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렸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AI 시대를 맞아 출판산업을 ‘텍스트 콘텐츠 기반 IP·서비스 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새 비전을 제시했다. 사진=출협

김 회장이 가장 역점을 두는 현안 중 하나는 AI 시대의 출판 정책이다. 그는 출판산업이 AI산업과의 관계에서 “데이터 공급자이자 서비스 사용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고 규정했다. 창작물과 저작물에 대한 정당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동시에, 출판산업 내부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할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출협은 출판 AI 활용 가이드라인, 인간저작물 인증제도, AI 학습 데이터 시장 구축 등의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대학교재 디지털 유통 플랫폼도 마련해 불법 복제를 줄이고, 종이책보다 저렴한 전자책 교재를 제공하겠다는 구상도 전했다.

정부와의 관계 복원도 주요 과제다. 이전 집행부 시절 문체부와의 갈등으로 예산 집행이 중단된 전례가 있는 만큼, 김 회장은 취임 후 문체부 장관과 실무진을 지속적으로 만나며 협력 기반을 다지고 있다. 그는 “정부와 출판계를 단순한 대립 구도로 보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출판진흥정책 수립과 예산 편성 과정에서 민관이 함께 논의하는 거버넌스 구조 복원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김 회장은 현재 출판산업이 전례 없는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학령인구 감소 △독서율 하락 △플랫폼 중심의 유통구조 재편 △생성형 AI의 대중화까지 복합적 변수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출판산업 전환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출협 자체를 출판사들의 역량을 모으는 공동 플랫폼으로 재정립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AI 기본법에 학습 데이터 표시 의무조항 포함 돼야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 회복·출판 미래 논의 장으로

김태헌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 회장은 출판계 내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와의 입장 차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고 논의의 구조 안으로 포용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존처럼 일부 주체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방식으로는 지금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고, 출협 외의 여러 협회·단체는 물론 쟁점별 당사자들과도 폭넓게 협의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가 지향하는 출협의 모습은 ‘포용적 협회’다. 1인 출판사부터 대형 출판사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협회를 만들기 위해 정책 논의의 범위와 참여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회장은 “신속한 결정보다 중요한 것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합의”라며 “출협은 앞으로 출판계 내부의 이해 충돌에 대해 공정하고 적극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태헌 출협 회장은 출판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배제하지 않고 폭넓게 협의하는 ‘포용적 협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1인 출판사부터 대형 출판사까지 아우르며, 신뢰를 바탕으로 출판계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진=출협

“불법복제 긴급차단·징벌적 손해배상제 고무적”

불법복제 대응에서도 공동 체계 구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불법 복제물 유통사이트 북토끼 등이 폐쇄됐고, 문체부는 5월 11일부터 긴급차단제를 시행한 데 이어 8월 11일부터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형사처벌 기준 강화를 예고했다. 김 회장은 이에 대해 “불법복제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디지털 환경에서 불법복제가 점점 더 조직적이고 정교해지는 만큼, 개별 출판사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김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최근 저작권법 개정으로 한국저작권보호원의 권한이 확대된 부분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출협은 법률 전문가, 정부 기관, 관련 단체들과 협력해 체계적인 대응 구조를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AI 학습 과정에서 저작물이 어떻게 활용되는가의 문제까지 포함해, 저작권 보호와 데이터 활용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AI 학습 데이터 마켓’ 구축해 콘텐츠 제공

이를 위해 출협은 ‘출판 AI Data HUB(AI 학습데이터 마켓)’ 구축도 추진할 계획이다. 출판계의 공청회를 거쳐 AI 사업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양질의 데이터를 구매할 수 있는 마켓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출판 콘텐츠의 데이터 집적·판매·정산 구조를 체계화하고 AI 사업자들과의 합리적인 거래 구조를 만드는 이 계획에 대해, 김 회장은 “저작권 보호와 산업 발전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AI 학습 데이터 판매 시장이 조기에 안착하려면 국가 차원의 초기 자본 지원과 AI 기본법에 학습 데이터 표시 의무 조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김 회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출판 현장의 고질적인 현안들도 빠짐없이 짚었다. 출협은 도서정가제 사수와 대여 기간 법제화로 유통 질서를 바로잡고, 대학교재 불법복제 근절과 바우처 도입으로 저작권 보호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제지사 담합에 대한 공동 소송 검토, 플랫폼의 불공정 계약 문제 해결 등을 통해 출판인의 권익을 지키고 지속 가능한 출판 생태계를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물리학도에서 출판계 수장으로…30년 외길을 걷다

김태헌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연구자의 길 대신 출판 현장을 택했다. 두산동아에서 4년간 근무한 뒤 1993년 IT·실용 분야 전문 출판사인 한빛미디어를 설립했고, 이후 한빛비즈·한빛아카데미·한빛N 등을 잇달아 세우며 출판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 등을 맡으며 출판계 주요 현안에 참여해왔다. 한국출판인회의 서울북인스티튜트(SBI) 원장을 겸임하며 출판 인재 양성과 디지털 출판 교육에도 힘써왔다. 또한 한국출판인회의 내 전자출판위원장을 맡아 디지털 전환기 출판산업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경영자·교육자·단체 행정가로서 출판계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경험이 그를 업계 대표 리더로 세우는 밑거름이 됐다.

출판계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2017년 올해의 출판인상, 2018년 모범납세자 표창에 이어 2023년에는 책의날 출판문화발전 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 회장은 올해 2월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82차 정기총회에서 제52대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전체 의무이행사 519개사 가운데 351개사가 투표에 참여했으며, 김 회장은 이 중 187표를 획득해 과반에 가까운 득표로 회장직에 올랐다. 취임 후 그는 AI 시대 출판산업의 방향으로 저작권 보호와 정당한 대가를 전제로 한 학습데이터 유통 체계 구축을 제시하며, 출판계 화합·통합과 소통 중심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다.

지역서점·독립출판, 다양성 중요 기반

서울국제도서전 문제도 빠뜨릴 수 없는 현안이다. 6월 24일부터 28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70회 서울국제도서전의 부스 신청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에 대해 김 회장은 “매우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이라며 참가를 원했던 출판사들이 충분히 참여하지 못한 점에 유감을 표했다. 내년도 도서전은 코엑스 A동과 B동 전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히며, 참가를 희망하는 모든 출판사를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서울국제도서전이 단순한 전시 행사를 넘어 저작권 거래와 AI 시대 출판의 미래를 논의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처럼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도서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했다.

지역서점과 중소출판사 지원도 핵심 의제다. 그는 플랫폼 중심의 유통 환경 속에서 지역서점과 독립출판이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니라 지역문화와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본다. 출협 차원에서는 지역서점 활성화와 공공구매 확대, 독서 진흥 사업 연계 등을 정책적으로 논의하고, 플랫폼 중심 구조에서 거래 조건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유통 구조 전반의 개선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인간 편잡자 역할은 더 중요해질 것”

AI가 출판산업 전반의 생산 방식과 업무 구조를 크게 바꿀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번역, 편집, 마케팅, 데이터 분석 등에서 AI 활용이 이미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인간 편집자의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본다. “AI가 정보를 생성할 수는 있지만, 어떤 콘텐츠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지 판단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는 출판을 “단순한 정보 생산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와 가치를 사회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으로 규정했다.

출판의 미래상에 대한 김 회장의 시각은 낙관적이다. 인간이 깊이 있는 의미와 지식을 찾으려는 욕구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텍스트와 읽기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는 이른바 ‘텍스트힙’ 현상에서도 긍정적인 신호를 읽는다. 그는 출판이 앞으로 종이책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지식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10년 뒤 한국 출판의 미래와 관련해서 김 회장은 “어떤 형식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신뢰성과 깊이”라고 말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정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사고를 확장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책은 앞으로도 인간다운 사고와 민주적 공론장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대학·교수 사회와의 연결에 대한 메시지도 빠뜨리지 않았다. 김 회장은 “대학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공간이고, 출판은 그 지식을 사회와 연결하는 통로”라며 학문과 출판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강조했다. 지금은 대학 역시 사회 변화와 적극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시대라는 점에서, AI와 디지털 전환의 시대일수록 인간의 사유와 공공 담론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어떤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사람의 생각과 창작, 콘텐츠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김 회장은 “출협은 실사구시의 태도로 변화에 대응하겠다”라며 “출판의 사회적 가치와 출판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재생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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