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계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photo 뉴시스
인공지능의 발전이 빠르고 무섭다는 말은 이제 식상하다. 보드게임이나 시험 같은 영역에서 사람을 능가한 일은 이미 옛날이고, 여러 사무직 직무에 침투해 업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상담, 친한 대화, 심지어 연애의 상대가 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여러 직무를 폭넓게 할 수 있는 '범용인공지능(AGI)'을 개발하려고 여러 나라에서 경쟁하고 있다. 게다가 현대차나 중국 기업에서 내놓은 로봇을 보면 '몸을 쓰는'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이 활약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사실 기술발전은 경제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다. 20세기 후반에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고속 경제성장은 농업 기계화, 컨테이너 화물 운송, 반도체 개발 등 기술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저가 노동력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기술발전에 기반한 수출로 빈곤을 탈출했다. 인공지능도 이에 못지않게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해줄 잠재력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의 발달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인공지능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퍼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공장 자동화나 사무 자동화(컴퓨터 등)로 인해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 중 기술의 혜택을 입는 직장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은 혜택받은 소수였고, 이는 노동시장에 양극화를 악화시켰다.
AI로 노동시장 양극화
노벨상 수상자인 대런 애스모글루와 파스쿠알 레스트레포가 2019년경부터 발표한 여러 편의 논문에 이러한 논의가 담겨 있다. 경제발전에 필요한 생산을 위해 몇 가지의 직무가 필요하다고 하자.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이 사람이 하던 직무 중 몇 가지를 대체하면서 그만큼 임금도 줄어들게 된다. 여기서 노동자의 임금이 늘어나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신기술이 전체 생산성을 너무나 높여서 더 많은 양을 생산하고, 그만큼 노동 수요가 커지는 것이다. 20세기 후반기에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두 번째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직무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공장이 들어서니 근로자가 필요하고, 기계가 발명되니 기술자가 필요한 식이다. 이러한 혜택이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면 양극화의 우려도 덜 수 있다. 애스모글루 등이 우려하는 점은 현재 인공지능이 직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지만 아직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리거나 새로운 직무를 도입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경우 기술발전으로 경제 전체는 발전할지 모르나 사람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정도는 줄어들고, 기술발전의 혜택이 소수에게만 집중되니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 각국에서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범용인공지능도 인간의 직무를 보조하기보다는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 여러 학자들은 노동친화적인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대표적인 연구가 지난 2월 애스모글루를 포함해 노동경제학계의 대가인 데이비드 오토,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사이먼 존슨이 내놓은 논문('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말인데, 예를 들면 인공지능이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관련 데이터를 분석·가공해서 교사를 지원하면 교사들이 학생 개개인의 필요에 맞게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 상담해주는 등 새로운 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공지능에 없는 교사의 식견과 전문성을 활용하면서 인공지능의 장점도 갖추게 되니 이상적이다. 다만 직무대체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는 즉각적인 반면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이득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이루어지므로 노동친화적 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 개혁 등 공동체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면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근로자의 생산성을 직접적으로 향상시켜주는 기술을 많이 개발하고, 또 기업에서 이런 기술을 다 받아들인다면 인공지능 개발로 인한 양극화를 좀 더 빠르게 완화할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봐도 비행기 등 기계 조작 관련 기술, 소프트웨어 기술은 사람이 기계나 컴퓨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했고,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혜택을 입었다.
다만 영향력이나 기술 혁신의 방향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페니실린이나 전자레인지는 우연히 발견된 기술이다. 게다가 기술의 사용방향도 예측하기 힘들다. 인터넷은 원래 군사기술이었지만 산업기술, 중독성 있는 소비재로 활용된다. 다이너마이트는 폭약을 더 안전하게 보관하고 건설현장에 쓰기 위해 만들었지만 결국 전쟁에서 더 널리 쓰였다. 인간 친화적일 거라고 생각한 기술이 친화적이지 않을 수도, 친화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기술이 알고 보니 새로운 직무를 만들어내는 기술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인간과 인공지능 협업 때 생산성 높아
노동친화적인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일은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단계에서 인간 친화적인 방향을 설정하기보다는 개발된 기술을 노동친화적으로 응용하도록 제도적으로 촉진하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원천기술 개발자들은 성능을 목표로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되, 이 기술을 노동친화적 방법으로 응용하는 연구를 지원하는 일을 고려할 수 있다. 노동친화적 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창업하는 기업을 지원하거나 관련 응용기술을 도입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일도 바람직하다.
물론 이런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노동친화적 기술을 내놓아도 당장 신기술에 대체되는 인력은 존재하며,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찾거나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공동체가 나서야 한다. 공동체가 안전하게 유지되어야 기술발전의 혜택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이 몰고 오는 창조적 파괴의 파괴적 영향으로 사회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노동친화적인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기술발전 및 경제성장 자체를 저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오늘날 같은 무한경쟁 시대에 공동체의 안위를 챙기다가 경쟁에 뒤처져서 장래에 오히려 더 큰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닐까?
다행히 최근 인공지능 연구 동향을 보면 단순히 인공지능에 모든 일을 맡기기보다 사람과 인공지능이 협업할 경우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이며, 좀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이는 인간·인공지능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한 미래 연구 방향이라고 한다. MIT 슬론 경영대학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데이터가 풍부하고 단순 데이터 예측을 기반으로 하는 일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잘하지만, 대인관계가 필요한 일이나 창의력이 필요한 일은 인공지능 혼자보다 사람이 더 잘하고, 또 사람과 인공지능이 협업하면 그보다 더 높은 업무효율과 성과를 보인다.(로아이자·리고본의 'AI의 시대(The EPOCH of AI)'). 인공지능만큼 인간 지능도 대단히 효율적이고 독특한 장점이 있다. 그 능력을 낭비하는 않는 것이 진정한 혁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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