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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삼베길쌈으로 짜 내려간 인생 여전히 현재 진행형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 보유자가 거창삼베길쌈을 시연하고 있다.

삼베길쌈으로 짜 내려간 인생 여전히 현재 진행형 [경남 무형유산을 찾아서]

(24) 거창삼베길쌈

이옥수 보유자 80여 년간 작업

사별한 남편 수의도 직접 마련해

거창삼베길쌈보존회 활동 이어가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 보유자가 거창삼베길쌈을 시연하고 있다. /이옥수

교과서와 여행안내서, 미디어를 통해 자주 보게 되는 국가유산은 이미 상식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지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경상남도에만 모두 41건의 무형유산이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름과 내용, 그것을 지켜온 사람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지역 유산을 조명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때마다 ‘기록의 필요성’과 ‘계승의 위기’가 이야기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쉽게 흩어진다. 이 기획은 단순히 지역 유산을 나열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지역의 시간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까지 이어온 사람들의 현재를 차분히 따라가며 응원과 격려를 보내는 일이다.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 보유자는 1935년 지금의 거창읍 가지리 개화마을에서 태어났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안이었다. 10살(이하 세는나이)이던 1944년에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광복 이후 4학년 때 그만뒀다. 집에서 못 가게 해서다. 어머니가 길쌈(실을 내 옷감을 짜는 모든 일)하랴, 밭일하랴, 자식들을 못 챙겨 육 남매 맏이인 이 보유자가 동생들을 업어 키워야 했다. 그래서 한글은 배우다가 말았다.

이 보유자의 어머니는 삼베길쌈을 잘했다. 고산분지(高山盆地)인 거창은 예로부터 삼(대마) 농사를 해왔고, 삼베(삼실로 짠 천) 산지로 전통을 이어왔다. 농사일이나 길쌈 아니면 벌이가 없을 때였는데, 이 보유자가 누구 집의 삼을 가져다가 삶아서 가져다주면 고구마나 쌀을 얻어먹었다. 어머니가 부잣집 삼베를 짜는 날이면 보리쌀 조금 섞은 쌀밥을 먹었다. 잔칫날이 따로 있으랴. 그날이 잔칫날이었다.

이 보유자는 어머니가 하는 길쌈을 눈으로 보며 배워나갔다. 어머니가 동생들 젖 먹이러 가면 베틀에 올라앉아 베를 짜보면서 시나브로 익혔다. 여섯 남매 중 베 짜는 일은 이 보유자밖에 못했다. 이 보유자는 길쌈하랴, 동생들 키우랴, 밥하랴, 중학교 가는 일을 엄두도 못 냈다. 다행인지 시대가 바뀌어 살기 좋아지면서 동생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다.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 보유자의 젊은 시절. /이옥수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 보유자의 혼례 사진. /이옥수

어릴 때부터 삼베길쌈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

이 보유자는 1953년 꽃다운 열아홉에 시집갔다. 한동네 사람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중매했는데, 집안은 별 볼일 없지만 부자였다. 이 보유자의 어머니는 “없는 게 무섭다고, 그 집에 가면 등 따시고 배부르니까 그리 가라”고 하셨다. 결혼하고 나서도 1년을 친정집에 있다가 시집에 갔는데, 가서 보니 신랑은 군대에 가고 없었다. 그래서 시부모와 함께 생활했다.

친정어머니와 달리 시어머니는 성질이 불같고 욕심이 많았다. 이 보유자가 일만 해야 좋아했다. 한동네 살아도 친정을 못 갔다. 처음에는 어찌나 무서운지 벌벌 떨었다. 치마를 태워 먹은 적도 있었다. 시어머니 몰래 머리라도 하고 오면 주전자와 함지박이 날아다니고 난리가 났다. 남편이 이 보유자한테 밥이나 가서 하라고 하면 며느리 편든다고 생각했는지 또 화를 냈다.

친정어머니는 길쌈하다가 쓰러져 나이 오십에 세상을 떠났다. 나이 어린 동생들은 시집·장가도 안 갔을 때였다. 이 보유자는 동생들 걱정에 몰래 밤에 친정에 가서 울다가 오고는 했다. 동생들이 올 때면 시어머니가 시아버지한테 “뭐 주던가요?” 하고 묻는데, 그게 또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여동생들이 이 보유자한테 와서 옷을 기워달라고 하면 재봉틀 닳는다고, 친구들이 불러내서 나갔다 오면 그것대로 또 난리가 났다. 눈물겨운 시집살이였다.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뒷줄 왼쪽 넷째) 보유자가 시어머니 칠순 잔치 때 찍은 사진. /이옥수

시집살이는 맵고 남편은 속 썩여

전통적으로 삼베는 서민용 옷감이었다. 옷이나 이불로 짜면 더운 여름을 나는 데 그만이었다. 상례에는 계절을 따지지 않고 쓰였다. 이 보유자도 시집갈 때와 첫날밤에 삼베옷을 입었다.

넉넉하게 살지 않는 이상에야 삼베 팔아 자식 학비 내고 가족 먹일 쌀을 사서 먹고살았다. 길쌈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이 보유자는 시집에 가서도 자식(2남 2녀)들을 키우며 길쌈을 했다. 시댁에서도 길쌈을 조금 했다.

1934년생으로 이 보유자보다 한 살 많은 남편은 늦둥이로 귀하게 자랐다. 고등학교를 나오고 군대도 일찍 갔다 오니 여기저기서 일자리가 들어왔다. 그런데 사양하더니 노름을 하면서 살림을 거덜 냈다. 시어머니도 오냐오냐 키웠던 아들이 애를 먹이니까 속이 썩었다. 그래서였다. 1981년 시어머니가 죽기 전 이 보유자를 붙잡고 한 말은 “내가 너한테 너무 못했다. 저놈하고 어찌 살래”였다. 시집살이를 맵게 했다지만 시어머니를 그렇게 보내서인지 밉지가 않았다.

남편은 시간이 흘러 마음잡고 살아보려니까 당뇨가 왔다. 합병증으로 위암에 걸리더니 병원에 몇 달을 입원했다가 저세상으로 갔다. 남편은 이 보유자가 짠 수의를 입었다. 수의를 일찍 준비해 두면 오래 살 거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먼저 가버렸다. 차라리 마음은 편했다. 그래도 남편은 잘해줬다. 이 보유자가 전수관에 갈 때면 막지 않았다. 다른 집은 못 가게 했는데 말이다.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 보유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임산하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앞줄 맨 왼쪽) 보유자가 거창삼베길쌈보존회 회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옥수

일상의 낙은 거창삼베길쌈보존회 활동

남편은 떠났고 분가한 자식들은 손주를 볼 나이가 됐다. 시간이 흘렀어도 이 보유자는 길쌈을 하고 있다. 일상의 낙이라고 하면 거창삼베길쌈보존회 활동이다. 2013년, 이 보유자가 79살 때 거창삼베길쌈이 지금의 경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이 보유자가 보유자로 인정됐다. 이 보유자는 지금까지 보존회 회원들과 함께 삼베길쌈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함께 활동하니 심심하지도 않고 좋다. 현재 이 보유자를 포함해 59명이 활동하고 있다.

삼베길쌈이 쇠퇴의 길로 접어든 지는 오래됐다. 1953년 우리나라에 나일론이 소개됐으며, 이후 화학 섬유가 개발·보급되면서 삼베 이용은 줄어들었다. 1976년에는 ‘대마관리법’이 제정되고 대마 재배가 허가제로 바뀌어 생산량이 급감했다. 현재 거창에서는 이 보유자가 거주하는 거창읍 가지리에서만 삼이 재배되고 있다.

이 보유자는 집에서 꼼지락꼼지락하다가도 전수관에 가려고 씻고 화장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 있으면 세수도 안 하고 아침에 늦잠 잘 때도 있고 그렇다. 그런데 전수관 가는 날이면 일찍 일어나 뭘 해야 한다. 어디 초대받아서 시연이라도 할라치면 흥이 난다. 이제는 접하기가 쉽지 않은 길쌈 한 번 해보겠다고 줄을 서는데, 자신이 평생 해왔고, 잘하기까지 하는 길쌈을 알려주고 우리 전통도 알리니 신이 안 날 수가 없다.

경남도 무형유산 ‘거창삼베길쌈’ 이옥수 보유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경상남도여성가족재단

내년 공개 행사 등 빠짐없이 참여 다짐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거창스포츠파크 일원에서 거창삼베길쌈 공개 행사가 열렸다. 이날 보존회 회원들은 삼 삼기·물레질·실 나르기·베매기·베짜기 등 삼베길쌈을 시연했다. 그런데 이 보유자는 함께하지 못했다. 앞서 9월 넘어져 다쳤기 때문이다. 현재 이 보유자는 대구에 있는 요양병원에 있다. 연내 퇴원할 예정이다.

이 보유자는 월요일에는 거창삼베길쌈을 전수하고 화요일에는 거창삼베일소리를 비롯해 거창일소리·거창상여디딜방아액막이소리를 연습한다. 목요일에는 국악을 배운다. 갑갑한 병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24일 오후 병원에서 만났을 때 이 보유자는 내년에는 공개 행사 등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삼베는 내 인생에서 최고 좋은 거지. 이걸로 돈도 벌었지, 지금은 전수관 다닌다고 내 건강도 좋아지지, 삼베 덕에 지금은 이렇게 보유자가 돼서 남들이 회장님이라고 알아주니까 좋지. 자식들한테 용돈 안 받고 부담 안 줘서 그것도 좋고. 이제는 내가 건강해야 되는데, 어서 빨리 나아져야지.”

삼베길쌈이란 부녀자들이 가정에서 삼을 이용해 직물을 짜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농가 소득원 중 하나였지만 화학 섬유가 나오면서 삼 재배 농가가 줄어들어 삼베길쌈도 사라지고 있다. 거창에서는 거창삼베길쌈보존회에서 삼을 재배하고 있다.

거창삼베길쌈은 △삼 잎 치기 △삼 삶기 △삼 말리기 △삼 뭉치 만들기 △삼 톱기 △삼 삼기 △물레질 △실 나르기 △베매기 △베짜기 순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보존회는 삼에서 얻은 섬유를 실로 잇고 베로 짜는 과정을 선보인다.

/류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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