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이윤보다 팍팍한 서민 위로가 먼저.
지난 초봄, 선양소주의 조웅래 회장이 직접 광고 모델로 나서며 내뱉은 이 한 마디가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카피가 아니었습니다. 원가 부담을 감수하고 병당 990원이라는 가격을 들고 나온 결정, 연예인 모델 대신 회장 본인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선 선택 —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있었습니다.
홍보회사 피알런이 선양소주의 '착한소주 990' PR 캠페인을 맡으면서 저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질문 하나와 다시 마주했습니다. “마케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전쟁과 물가 사이, 소비자는 지쳐 있다
요즘 마케터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지구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멈추지 않고, 그 여파는 에너지 가격과 물류비를 타고 우리 식탁까지 스며듭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에 들어섰다가 영수증을 보고 멈칫하는 순간이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외식 한 번, 맥주 한 캔이 작은 사치가 된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마케팅은 어디를 바라봐야 할까요? 여전히 화려한 이미지와 유명인의 얼굴로 '갖고 싶은 욕망'을 자극해야 할까요? 아니면 지친 소비자의 어깨를 먼저 두드려야 할까요?
저는 후자 쪽에 점점 더 마음이 기울고 있습니다.
990원이 만들어낸 360건의 공감
'착한소주 990' 캠페인은 처음부터 전략보다 진심이 앞섰습니다. 선양소주가 동네 슈퍼 전용으로 한정 출시한 이 소주는, 대형마트나 편의점이 아닌 골목 구석 작은 가게들을 선택했습니다. 소상공인과의 상생, 골목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제품의 유통 구조 자체에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피알런의 PR 전략은 이 진심을 증폭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990원'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 강력한 화제성을 가졌지만, 거기서 멈추면 일회성 이슈로 끝납니다. 저희는 그 숫자 뒤에 있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원가 부담을 감수한 결정, 마케팅비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광고 모델이 된 회장, 동네 슈퍼를 선택한 유통 철학.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KBS, SBS, JTBC, YTN, 연합뉴스TV가 앞다투어 보도했고, 총 360건 이상의 미디어 커버리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더 인상적인 것은 SNS에서 일어난 자발적인 확산이었습니다. 광고로 퍼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먼저 공유하고 싶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속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심에는 반응합니다.
위로가 되는 마케팅을 꿈꾸며
이번 캠페인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한 가지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마케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불안, 고물가의 무게, 불확실한 내일 앞에서 사람들은 작은 것에서 위안을 찾습니다. 단 한 병의 술이라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다는 안도감, 우리 동네 가게 아저씨의 매출이 조금 나아졌다는 뉴스, 대기업이 아닌 향토기업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이야기 — 이런 것들이 소비자의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마케팅은 본래 시대와 호흡해야 합니다. 소비자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지쳐 있는지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소비자는 '더 좋은 것'을 원하기 이전에 '덜 힘든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 브랜드, 그 마음 쪽으로 먼저 달려가는 기업이 결국 더 오래 기억됩니다.
홍보 대행사의 역할도 다르지 않습니다. 메시지를 멀리 퍼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메시지를 세상에 내보낼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저희의 본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숫자로 드러나는 미디어 성과 이전에,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이야기인지를 먼저 묻는 것.
다음 캠페인을 기다리며
요즘 저는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새로운 질문을 자주 꺼냅니다. '이 캠페인이 소비자를 위로할 수 있는가?' AI시대의 AEO와 매출 목표, 커버리지 수치 옆에 이 질문 하나를 더 놓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마케터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양소주의 '착한소주 990'은 충청권의 작은 향토기업이 던진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질문이 전국 단위 이슈가 되고, 360건의 언론과 수많은 SNS 게시글이 되고, 결국 누군가의 장바구니에 실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마케팅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회석
종합홍보회사 피알런(PRRUN) 대표. AEO·GEO. 언론홍보·디지털PR·브랜드 커뮤니케이션. RM 전략을 전문으로 하며, 마케팅이 소비자의 삶에 실질적인 위안과 가치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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