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도 음식…오직 맛으로 승부합니다”
“팔수록 밑집니다. 적자죠. 하지만 소주는 원래 서민의 술 아닙니까.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밀려 고사 위기에 처한 동네 슈퍼(골목상권)를 위해 소진공(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함께 사회 공헌에 나선 겁니다. 소비자들이 이 술 사러 슈퍼에 왔다가 라면 하나, 뭐라도 하나 더 사게 하려는 거죠.”
최근 990원이란 파격적인 가격에 990만병 한정으로 ‘착한소주 990’을 선보인 조웅래 선양소주 회장(67)을 만났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같은 용량의 소주가 1500원 안팎임을 감안하면 거의 반값에 해당한다. 소주를 편의점 생수보다 싸게 팔면 적자 아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소진공의 선제안으로, 한국수퍼체인유통사업협동조합(KVC)과 선양소주가 함께 마진을 최소화하는 등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민·관·협이 뜻을 모았다는 설명이다.
조 회장이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광고 모델로 나서는 ‘오너 마케팅’이 있다. 지난해부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SNS에 직접 출연해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회사를 적극 알리고 있다. 유명 모델을 쓰지 않아 절감한 광고비를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셈이다. 소비자에게 보다 친근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효과는 덤이다.
‘벨소리’ 벤처 1세대, 술에 꽂히다
백색병·저도주로 차별화 성공
선양소주는 충청권을 대표하는 향토 소주 전문기업이다. 그러나 사실 조 회장은 고향도 경력도 그와는 연고가 없었다. 그는 경남 함안 출신의 IT 벤처 1세대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IT 기업을 다니던 그는 부품처럼 사는 삶이 싫었다. 회사를 나와 중소기업에서 영업이사로 근무하며 세상을 배웠다. 1992년 2000만원을 들고 전화 정보 사업을 했다. 첫 아이템은 전화로 운세를 알아보는 음성서비스였다. 이후 ‘㈜5425’를 설립했다. 삐삐(무선호출기) 인사말 녹음, 휴대전화 음악편지 등의 사업이 대박이 터졌다. 사업을 시작한 지 10여년 만에 수백억원을 벌었다.
그러던 2004년, 그는 돌연 연고도 없는 충청도의 소주 회사 ‘선양’을 인수한다. “IT는 변화가 너무 빠르더군요. 삐삐에서 시티폰,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속도를 소기업이 따라가기엔 정책적 변수가 너무 컸어요. 그때 선양소주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가 ‘벨소리’로 성공했잖습니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리처럼, 소주도 대중의 마음을 잇는 콘텐츠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위기도 있었다. 2017년 홀로그램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접목한 테마파크 사업 ‘라뜰리에’에 뛰어들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고 문을 닫았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죠. 이제 소주 외에 딴눈은 안 팝니다. 오직 ‘맛있는 소주’ 하나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현재 국내 소주 시장은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 두 대기업의 점유율이 80%가 넘는다. 각 지역에서 향토 기업의 소주를 마시는 문화도 옅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선양소주는 착실한 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525억원, 67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매출은 9.3% 늘고, 영업이익은 4배 이상 급등했다.
비결은 조 회장의 끊임없는 제품 혁신과 차별화 노력이 꼽힌다. 그는 최저 도수 소주(14.9도), 맥주처럼 따는 ‘크라운 캡’, 990원 착한소주 등을 잇따라 선보이며 최초, 유일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GS25와 손잡고 국내 최초로 오크통 숙성 원액을 블렌딩한 소주 ‘선양 오크’를 선보였다. 6개월에서 10년간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친 증류식 쌀 소주 원액 11%를 첨가해 깊고 풍부한 맛으로 호평받고 있다. 희석식 소주에 산소를 주입하는 ‘산소용존기술’ 특허도 보유하고 있다. 보통 소주에는 산소가 8ppm 들어가는데, 선양소주는 26ppm으로 3배 이상 많이 포함돼 있다. 덕분에 목 넘김이 부드럽고 숙취가 적다는 게 선양소주 설명이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존의 초록병 소주로 싸우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예요. 신제품을 개발하고, 유통 채널에 납품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지방 중소기업이 살아남으려면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했죠.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선양소주는 차별화된 맛과 특색 있는 병 덕분에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1959년생/ 마산고/ 경북대 전자공학과/ 1992년 2000만원으로 전화정보 사업 시작/ 1995년 휴대폰·벨소리 컬러링 서비스 업체 ‘5425’ 대표/ 2004년 선양 인수, 회장 취임(현)/ 2006년 계족산황톳길 조성, 관리 시작/ 조웅래나눔재단 이사장(현) (선양소주 제공)
맨발 걷고 직접 광고 ‘괴짜 기업인’
20년 닦은 황톳길, 전 국민 힐링 명소로
조 회장에겐 ‘괴짜 기업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회장이란 묵직한 직함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직접 나서 다양한 회사 홍보와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맨발 황톳길 걷기, 마라톤 완주, SNS와 기업 광고 직접 출연 등이 대표적이다.
대전 계족산황톳길은 조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2006년부터 매년 수십억원을 들여 계족산황톳길을 조성하고 관리해오고 있다. 맨발 달리기 대회인 ‘선양마사이마라톤’ ‘뻔뻔한(Fun Fun) 클래식 숲속음악회’ 등이 열리는 선양계족산맨발축제도 매년 개최 중이다. 덕분에 계족산은 연간 500만명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고등학생 때 자취를 했어요. 그때 옆집에 살던 여학생과 산길을 걷는데 하이힐을 신고 와서 불편해 보이더군요. 제 운동화를 벗어주고 저는 맨발로 5시간을 걸었죠. 그런데 기분이 너무 좋은 겁니다. 이 좋은 걸 같이 즐기자는 마음으로 계족산 14㎞에 흙을 깔고 황톳길을 정비했죠. 이제는 전 국민의 힐링 명소가 됐습니다. 기업이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지역과 함께 숨 쉬어야 한다는 제 경영 철학입니다.”
조 회장은 마라톤 애호가로도 유명하다. 42.195㎞에 달하는 마라톤 풀 코스를 무려 86회나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3시간 23분 24초다. 대한민국 국토 한 바퀴(5228㎞)를 국내 최초로 최단 시간(116일)에 완주한 기록도 보유했다. KRI한국기록원이 공식 인증한 기록이다.
“건강 관리 비결은 세 가지입니다. 먹는 거 맛있게 먹고, 이왕 입는 옷 폼나게 입고, 맑고 밝은 표정을 짓는 거죠. 이를 지키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조 회장은 지난 2024년 사명을 ‘더맥키스컴퍼니’에서 ‘선양소주’로 바꿨다. 소주 전문 기업으로서 정체성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앞으로 경영 계획과 목표를 묻는 질문에도 소주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국내 주류 시장은 여전히 상품력보다 ‘이미지’로 포장돼 있습니다. 지역 소주는 맛을 떠나 ‘아재들이 마시는 술’로 인식돼 젊은 층의 소비가 둔화되는 추세예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런 인식을 깨는 것이 목표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맛집을 찾아 다니잖아요. 소주도 음식인 만큼, ‘맛’으로 승부하면 소비자가 찾아올 겁니다. 젊은 층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편의점에서 맛있는 술을 찾아서 사먹는 문화가 활성화 되고 있죠. 해외 시장도 보고 있습니다. 수출 확대를 위해 미얀마에 공장을 짓고 있죠. 소주 하나만큼은 세계에서 제일 잘 만드는 회사, 그게 제 마지막 목표입니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6호(2026.04.20~04.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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