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속 굴착기로 구조된 노인, 불가해한 참상에 같은 질문 되풀이
네팔 “복구 비용 40억달러 이상”…배상 청구서 받은 탄소 대국 ‘침묵’
살아남았지만…
구나 마야 보하라가 지난달 26일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갓 노인 요양원을 덮친 흙더미에 깔려 있다가 4시간여 만에 구조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네팔 바그마티주 일대를 강타한 대홍수의 참상이 미처 알려지기도 전,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앙상하게 마른 한 노인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굴착기 버킷에 실려 구조되는 장면이었다. 그의 생환은 더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구조의 희망과 가늠할 수 없었던 참사의 민낯을 동시에 드러냈다.
재난에서 살아남아 세상에 알려진 그의 이름은 구나 마야 보하라(97)이다. 기적적인 생존 못지않게 굴곡진 그의 삶을 2일 카트만두포스트가 전했다. 8세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 그는 16세에 남편을, 20세 즈음에 양친과 남동생을 잃었다. 자녀는 없었다. 이후 평생을 25명 조카의 뒷바라지에 바쳤다. 14년 전인 83세 때 그가 스스로 선택해 머무르기 시작한 데비갓의 요양원에서 이번 대홍수를 맞닥뜨렸다.
이번 재난 이후 가끔 읊는 힌두교 기도문을 빼면 그는 말을 거의 잃었다고 한다. 침묵으로 일상을 보내는 그가 하는 유일한 말은 “왜 물이 나를 덮쳤을까”이다. 보하라의 조카손자는 할머니에게 상류의 호수가 넘쳤다고 설명하면 잠시 이해한 듯하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질문을 되풀이한다고 말했다. 한 세기에 가까운 그의 일생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어도 이렇게 큰 물난리는 없었던 것과 관계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하라의 질문에 대한 네팔 정부의 대답은 “선진국과 강대국의 탄소 배출”이었다. 막대한 양의 탄소 배출로 지구온난화를 앞당긴 결과가 히말라야 빙하의 붕괴와 산사태, 대홍수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발렌드라 샤 네팔 총리는 이날 “기후변화의 영향을 완화·관리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며 보다 적극적인 국제사회의 책임 분담을 요구했다.
네팔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히말라야 빙하 침식에 관한 네팔 정부의 외교적 대응을 ‘시혜적 원조’에서 ‘권리와 의무’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네팔 정부는 중국·미국·인도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며 관련국에 피해 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고 밝혔다. 또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산하 ‘손실과 피해 대응기금’(FRLD)에 긴급 금융지원을 요청했다.
네팔이 이번 재난으로 발생한 피해를 자체적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네팔 정부는 이번 대홍수의 피해 복구 비용으로 약 40억~70억달러(약 5조5000억~9조5000억원)가 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한다. 관광산업과 수력발전 등 네팔 경제의 주요 동력이 이번 참사로 치명타를 입으면서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네팔 방문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네팔 관광청의 호소가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네팔의 기후 배상 요구 명단에 오른 중국·미국·인도와 주요 탄소 배출국들은 침묵하고 있다. CNN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1월 네팔의 재난 감시·관리 사업 ‘SERVIR-힌두쿠시 히말라야 프로젝트’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재임 기간 FRLD에 1750만달러(약 237억원)를 내기로 약속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기금에서 탈퇴했다.
FRLD 자금 규모의 한계, 다른 재난 피해국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충분한 지원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기금에서 수백만달러는 지원받을 수 있겠지만, 수십억달러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네팔이 쏘아올린 ‘기후정의’에 호응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200여개 국제 시민사회단체의 연합인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세계 캠페인’은 성명에서 “다른 국가가 만든 위기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네팔이 더 많은 빚을 져서는 안 된다”며 “선진국들은 피해 지역이 겪는 손실에 상응하는 금액으로 손실 및 피해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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