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선거 관리 안 되는 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리 체계 불신으로 이어져
‘부정선거론’ 부채질
서울 송파구 등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거나,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 진행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국민 사과를 내놨지만 비난 여론은 잠재워지지 않았습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참정권 훼손’ 문제로 연결됐습니다. 정부와 정치권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선관위 개혁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경남 지역에서는 실제 투표 중단이나 투표를 하지 못한 사례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확산되면서 선거 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번지고 있다.
도내 투표소 7곳에서 투표용지 부족이 예상돼 추가로 투표용지를 받았다. 이 가운데 추가 배부된 투표용지를 사용한 투표소는 2곳(창원 성산구 반송동·중앙동)으로 확인됐다.
실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참정권 훼손 사례가 경남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도선관위는 투표소별 투표진행 상황을 확인해 투표용지 수요를 예측했다. 투표용지 부족 현상이 예상되는 투표소에 미리 투표용지를 배부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해 투표가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개표 관리에서는 문제가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김해시 개표 지연이다. 김해시는 인구 50만 명이 넘는 대도시지만 단일 선거구이기 때문에 개표소가 1곳이다. 지난 지방선거보다 투표율이 높아진 데다 투표용지만 7장에 달해 선거별로 분류하고 개표 결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상황이기도 했다.
경남도선관위는 “김해는 대규모 개표 장소가 없어서 개표부서별 설치 수에 한계가 있었고, 인원이나 장비를 추가 동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충분한 인력과 장비를 수용할 수 있는 개표장소 확보가 시급하지만 적정한 규모의 시설이 건립되지 않는 한 단기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답했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2동 제6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하러 온 주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적된 불신이 불러온 결과
선관위를 향한 불신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 한 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불거진 문제점들이 누적되면서 불신을 만들어냈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사전투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쿠리 투표’ 논란이 불거졌다. 투표용지가 간이용기, 택배상자 등이 담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실 관리 비판이 일었다.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투표용지 외부 반출 의혹, 유권자 동선 관리 미흡 문제 등도 지적됐다.
선관위 내부 인사와 채용 비리 논란도 문제였다. 내부 직원이 자녀와 친인척 채용을 위해 조직적으로 특혜 채용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력경쟁채용 과정에서 다수의 규정 위반이 확인됐다.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내부 직원으로 시험위원을 구성하거나 채용 점수를 조작하는 방식도 드러났다.
여기에 더해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불거지자 선관위를 향한 비난 여론이 커져갔다.
7일 기준 경찰 추산으로 3만 8000여 명의 시민이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으로 모였다. 이들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불만을 품고서 거리로 나섰다. 거리에서 ‘재선거’를 외치면서 참정권 훼손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참정권 훼손 문제 해결이라는 정당한 요구 속에서 부정선거 음모론도 재점화됐다. 부정선거 음모론이 확산된다면 선거 결과에 대한 사회적 신뢰에도 흠집이 생겼다. 재선거·선거무효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정치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시스템을 향한 불신은 불법·폭력 행위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투표 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한 일부 시위대는 일반시민을 불심검문했다. 선관위 직원, 취재기자 등을 감금폭행하는 일까지 저질렀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을 조롱하거나 가짜 경찰관이라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
선거 시스템 불신은 2024년 12.3 내란의 주요 명분이기도 하다. 윤석열은 계엄 당일 중앙선관위에 군을 투입시켰다. 군인들이 실탄을 소지하고 선관위로 들어갔고, 선관위 직원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전산실을 폐쇄했다.
선거 관리 체계의 실패와 별개로 부정선거 주장이 앞서면서 민주주의 기능 약화도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선거 결과가 민심이 아니라 조작으로 해석되고, 선거 관리 체계 제도 개선보다는 선거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거관리위원회가 입법·사법·행정이 개입할 수 없는 독립적인 헌법 기관이어서 더욱 체계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진욱(민주당·광주 동구남구갑) 국회의원이 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불가피해진 선관위 개혁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내놨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과 허철훈 사무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규명위원회까지 출범했다. 이들은 10일부터 19일까지 활동하면서 투표용지 인쇄와 배정, 수급관리 전반을 조사한다. 투표소 운영과 초동 조치, 보고체계의 적정성 등도 판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선관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입법·행정·헌법재판소 4부 요인들은 8일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참정권 침해’로 규정했다. 진상규명과 함께 선거관리 제도 개혁에 나서기로 뜻을 모았다.
정진욱(민주당·광주 동구남구갑) 국회의원은 ‘원포인트 개헌’을 내세웠다. 선관위가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받도록 하고, 중앙선관위원장과 각급 선관위원장 상근 체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중앙선관위원의 임기 단축 등을 담은 헌법 개정도 포함됐다.
한동훈(무소속·북구 갑) 당선인도 선관위 개혁을 위한 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선관위 내부 출신이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조직 운영을 총괄했고, 그 결과 각종 문제가 반복됐다고 봤다. 그는 중앙선관위원장을 상임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선관위는 헌법기관으로 독립돼 있다.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선관위를 다른 부처 산하로 둔다면 권력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헌법기관으로 남겨두면서도 개혁을 고민해야 하기에 방향성을 잡기가 쉽지 않다.
홍재우 인제대 공공인대학부 교수는 “선관위가 단순 관리 기관으로 머물지,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헌법 수호 기관이 될지를 고민해야 한다”라며 “실제 선관위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 존재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니 조직이 정체되기 쉽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관이 겸직하지 않고, 상근 선관위원장을 둬서 책임을 분명하게 하고, 지금보다 인적 자원을 더 충원해야 한다”라며 “선관위 내부 관료주의 탓에 적극적인 개혁이나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문제를 피하려는 태도가 문제를 만들었던 만큼 지금보다 개방적인 조직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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