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시장의 관심이 금리의 '속도'에서 '지속기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 국채 금리가 5%대로 올라선 뒤에도 인공지능(AI) 투자와 기업 실적을 앞세운 증시는 사상 최고치 부근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택·자동차·소비자신용 등 금리에 민감한 경제 영역에서는 이미 균열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3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예상보다 크게 부진한 고용지표가 발표된 금요일에는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가 낮아지며 주가가 오르고 국채 금리가 하락했다. 그러나 채권 랠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장 후반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약 5.27%를 기록했다.
S&P500은 주간 기준 0.3% 하락한 반면 나스닥100은 0.7% 상승했다. 지수만 보면 고금리 충격이 제한적으로 보이지만 시장 내부에서는 업종 간 온도차가 확대되고 있다.
◆AI가 떠받친 지수…은행·산업재·유틸리티는 압박
허틀앤코의 브래드 콩거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메인스트리트와 AI·자본지출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증시 상승 폭은 좁아졌다. AI 관련 초대형주가 지수를 끌어올리는 동안 은행·산업재·유틸리티주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다.
콩거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명확한 변곡점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지금은 특정 업종들이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는 구간"이라고 진단했다. 주택과 자동차, 소비자대출, 신용카드가 대표적이다.
반면 높은 금리가 반드시 증시에 악재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라퍼텡글러 인베스트먼츠의 낸시 텡글러는 "때로는 금리가 오르는 데도 좋은 이유가 있다"며 기업이 5%로 자금을 조달해 15~20%의 수익률을 낼 수 있다면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메타뿐 아니라 GE버노바, 이튼, 콴타서비스 등의 비중도 늘리고 있다.
AI와 전력·인프라 투자 확대가 높은 자본비용을 상쇄할 만큼 높은 투자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자금 흐름에서는 변화가 포착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9월 전체 ETF 자금 유입 가운데 채권 ETF 비중은 42%로 1년여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BMO웰스매니지먼트 역시 투자등급 회사채에 대한 큰 폭의 언더웨이트를 절반가량 축소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트레이더들. [출처=연합]
◆"충격은 늦게 온다"…리파이낸싱부터 누적되는 고금리
고금리의 충격이 아직 전면화되지 않은 이유는 가계와 기업의 기존 부채 구조에 있다.
미국 주택 소유자의 상당수는 평균 약 4% 수준의 고정금리 모기지를 보유하고 있어 신규 모기지 금리 급등의 영향을 즉시 받지 않는다. 미국 비금융기업 부채 가운데 2027년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도 약 13%, 5700억 달러 수준이다.
프랭클린템플턴 인베스트먼트 솔루션스의 맥스 고크먼은 "높은 금리가 매우 오랜 기간 지속돼야만 본격적인 충격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가 당장 기업과 가계를 무너뜨리기보다는 차환 시점이 돌아올수록 부담이 누적된다는 의미다.
AI 투자도 당장은 금리 민감도가 낮을 수 있다. 고크먼은 하이퍼스케일러와 AI 연관 기업들이 향후 약 30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당수가 투자등급 기업이고 자본여력이 충분해 설비투자 경쟁을 이어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금리가 높은 상태로 오래 유지될수록 AI·빅테크와 나머지 경제 사이의 격차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자본력이 약한 가계와 중소기업, 저신용 차입자부터 높은 조달비용을 버티기 어려워지고, 이후 회사채 차환 부담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어서다.
고크먼은 "5% 금리가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는 아닐 수 있다"면서도 "이미 지친 낙타 등에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을 얹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더 위험한 경우는 성장이 둔화하는데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금리가 내려오지 않는 상황이다. 고크먼은 에너지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경우 2022년처럼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며 포트폴리오 내 원자재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더 오르느냐가 아니라 5%대 금리를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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