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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33] 사평초등학교, 사평역에 가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상) [남도 학교기행]

‘용봉문학’이라는 동아리가 여태 버티고는 있을까. 중고교 시절 씀벅씀벅 교내 문학상을 수상하곤 했던 나로서는 의젓한 문학적 청년이고 싶었다.

[33] 사평초등학교, 사평역에 가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상) [남도 학교기행]

교 100주년을 맞은 사평초등학교 전경.

‘용봉문학’이라는 동아리가 여태 버티고는 있을까. 중고교 시절 씀벅씀벅 교내 문학상을 수상하곤 했던 나로서는 의젓한 문학적 청년이고 싶었다. 캠퍼스에는 사복 경찰, 최루 가스, 페퍼포그, 지랄탄 등이 익숙하게 진설되곤 하였지만, 누구는 사회 변혁에 열을 올리며 지하 조직이나 이념 써클에 몸을 담았다고도 하였지만, 나는 스스로 문학적 유폐를 선택했다. 내가 역사를 전공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념적이었으므로.

해묵은 기억이어서 그때의 얼굴들은 봄날 오후 햇살처럼 엷어지고 말았다. 김용복이라는 선배와 사철 바바리를 걸친 일문학과 아무개 선배를 포함 회원들이 열 서넛이나 되었다. 초승달 모양의 눈웃음을 헤프게 만들곤 했던, 혜진인가 하는 애를 비롯한 여자아이 서넛 그리고 말도 짧았고 문예 소양이라야 산도적에게 홀딱 빼앗긴 듯했던 나는, 그러니까 문학적 서자였다. 그렇다고 막걸리마저도 마시지 못하는, 그런 녀석은 아니었다.

붉은 벽돌 학생회관 건물 모퉁이 공간에 자리한 동아리실, 여자 아이들은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았다. 그들의 입회 목적은 달변의 선배들과 어울리려는 것, 이런 의심을 품기도 하였다. 삶은 심상치 않구나! 어두운 날들이었고, 독립군이 본능적으로 몸에 습득했을 법한 철칙 같은 것을 은밀히 갖춰나가고 있었다. 슴슴한 헛맛이어도 좋으니, 삶이여, 쓴맛만은 아니기를! 바랬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 팔자 늘어지게 된 것은, 모름지기 1980년대 뼈저리게 터득한 조신하고 규범적인 행위 철학 덕분이 아닌가, 뿌듯하여 자찬하고 싶은 마음이다.

말투나 허투루 표정까지 닮고 싶었던 선배들 중에 영문과 임철우 선배 그리고 가끔 이름이 들리곤 했던 국문과 곽재구 선배가 있었다. 그들은 동아리실이나 모임에는 나타나지 않은 신비스러운 존재였지만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들 모임의 구심이 되기도 하였다. 문학적 족보를 따지자면 단순히 형이나 선배는 아니었을 테고, 삼촌 또는 오촌 당숙뻘은 되었을 것이다. 가끔 그 선배들의 습작 복사본을 탐독할 기회가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그중 임철우 선배의 미발표작인가 뭐라곤가 하는 작품을 동아리 회장이 사뭇 진지하게 낭독을 하였고, 나머지는 돌아가면서 소감 발표를 하였지만, 나의 목소리는 신음보다 더 겸손하였고, 연기보다 쉬이 흩어지고 말았던, 그런 창백한 기억이 있다.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은 어찌 그리도 군침 돌게 말들을 잘하던지.

사평기정떡을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주)사평기정떡 구경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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