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엽에 시작된 영국 축구클럽은 대다수 영국인들이 숨 쉬고 사는 ‘모든 이유’가 압축된 곳이다. 성인 남성들에게 이곳은 사회적 삶을 영위하고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핵심이다.
원래 영국 노동계급 문화는 도제(徒弟) 시스템 아래 전통적 통과의례를 가지고 있었는데, 산업사회가 정착되면서 이것이 사라진 대신 그 자리를 스포츠팀이라는 ‘남성 연합’이 차지했다. 경기장에서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과 일체감을 느끼고 술집에서 공통된 화젯거리를 나눈다는 건 건조한 일상을 버티는 힘이다. 이 시스템은 영국 최고의 수출품 중 하나다.
영국은 같은 시기 축구를 비롯한 단체 스포츠를 통해 엘리트 정신도 발전시켰다. 유명 사립학교 해로우의 교장 웰던은 1895년에 “영국인들이 발휘하는 힘은 위대한 사립학교의 크리켓 경기장과 축구 경기장에서 길러졌다”고 큰소리쳤다.
그는 여기서 획득된 용기, 에너지, 끈기, 기율, 협동 같은 덕목이 국제관계에서 승리를 불러오는 자질이라며 대영 제국의 역사는 상당부분 이 같은 스포츠 정신에 기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국주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과도한 스포츠 찬양이지만 사실 그렇게 틀린 말도 아니다.
그리고 영국의 국력에 경도된 많은 나라가 근대 이후 웰던이 말한 ‘엘리트 정신 따라잡기’에 몸부림친 것도 사실이다.
현대 축구는 이 같은 고전적 함의에 더해 월드컵이라는 ‘국뽕 생산’ 국가 대항전까지 만들어 다른 스포츠를 압도하는 위상을 구축했다. 월드컵이란 말 속에는 현대 민족국가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복잡미묘한 정념이 통째로 녹아들어 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32강 탈락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기록한 후 국민들의 분노가 임계치를 넘고 있다. 최고의 선수들을 데리고 최악의 성적을 거둔 축구협회와 감독은 현대 축구의 역사와 본질을 아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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