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서버 D램 수요에 ‘성장률 상향’ 기대
삼성·SK, 메모리 주도권 재편 경쟁 본격화
TV·생활가전, 원가 상승, 수익성 방어 비상
우리나라는 탄핵 정국에 이어 대선을 거치면서 새로운 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 폭탄’이 현실화되면서 국제적 자유무역거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중동전쟁까지 이어지면서 경제 불확실성의 시대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반영하며 유연하게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 이에 이뉴스투데이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격랑속에 빠진 국내 경제 여건을 분석하고 2026년 하반기 기업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인공지능(AI) 투자 확대가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반등을 이끈 반도체 수출은 하반기에도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를 바탕으로 수출과 설비투자, 경상수지 개선 흐름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TV와 생활가전은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와 물류비·부품 가격 상승, 글로벌 수요 둔화가 겹치면서 수익성 방어가 주요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모양새다.
◇AI가 끌어올린 반도체 호황···성장률 상향 기대도 커져
올 하반기 국내 전자산업은 반도체와 가전의 흐름이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는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고성능 메모리 수요를 바탕으로 호황 국면을 이어갈 전망이다. 반면 가전은 하드웨어 판매 중심의 성장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사업 구조 재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같은 전자산업 안에서도 부품 사업과 세트 사업 간 실적 온도 차가 확대되는 분위기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도 반도체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2.5~2.6% 수준으로 높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1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1.7%를 기록하며 예상치를 웃돈 데에는 반도체 수출 회복세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AI 서버 투자가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리면서 수출과 생산, 설비투자 전반으로 효과가 확산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과거 메모리 업황 반등과는 결이 다르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기존 메모리 호황이 PC와 스마트폰 수요, 재고 조정 흐름에 따라 반복됐다면, 이번에는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고성능 메모리 수요를 이끄는 구조다. HBM과 서버용 고성능 D램은 공급 업체가 제한적인 데다 고객사 인증과 수율 확보에도 시간이 필요한 제품이다. 이에 하반기에도 수급 불균형이 이어지며 가격 상승 압력이 유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하반기가 실적 회복을 넘어 메모리 경쟁 구도가 다시 짜이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선점 효과를 바탕으로 수익성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 경쟁력 회복과 범용 D램 가격 상승효과를 동시에 노리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AI 확산으로 메모리 수요와 공급 구조가 달라진 만큼, 하반기 전 제품군에서 공급 부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다만 반도체 호황이 그대로 안정적인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내년 하반기 이후 공급 확대와 가격 조정 가능성을 변수로 보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는 데다, 글로벌 빅테크의 AI 투자가 실제 수익화로 연결될지도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슈퍼사이클이 길게 이어지려면 AI 인프라 투자가 단순한 설비 경쟁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서비스 수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사 변수도 하반기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삼성전자는 총파업은 피했지만, 성과급과 보상체계를 둘러싼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반도체는 경기 변동성이 큰 사이클 산업인 만큼 초호황기에 확보한 현금을 차세대 공정, HBM, 첨단 패키징,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에 재투자할 필요성이 크다. 때문에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고정하는 방식은 향후 투자 여력을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전은 수익성 방어전···中 공세 속 사업 재편 속도
반도체가 하반기 성장의 버팀목으로 꼽히는 반면, 가전은 수익성 방어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생활가전 사업은 중국 업체의 추격, 원가 상승, 수요 둔화가 맞물리며 실적 압박을 받고 있다. TCL, 하이센스 등 중국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TV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히고 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한국 업체들이 브랜드와 기술력을 기반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와의 가격 경쟁 부담이 커지는 흐름이다.
삼성전자는 TV와 생활가전 사업의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영상디스플레이와 생활가전 사업은 지난해 적자 전환 이후 올해도 수익성 부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부품 가격 상승과 물류비 부담, 관세·지정학 리스크가 겹치면서 하반기 실적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일부 해외 비주력 생산 거점 폐쇄와 저수익 법인 통폐합, 전자레인지·식기세척기 등 일부 중소형 가전을 외주 생산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수익성 개선 전략의 일환으로 거론된다.
TV 사업은 단순 하드웨어 판매만으로 과거와 같은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마케팅실장을 맡았던 이원진 사장을 VD사업부장 겸 DX부문 서비스비즈니스팀장으로 선임한 것도 이 같은 사업 전환 기조와 연결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TV 사업의 무게중심을 기기 판매에서 광고·콘텐츠·서비스 기반 플랫폼 사업으로 넓히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광고 기반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인 ‘삼성 TV 플러스’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LG전자도 원가 부담과 수요 둔화에 대응해 프리미엄과 중저가 시장을 함께 공략하는 투트랙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생활가전 사업은 매출 증가에도 영업이익이 줄어들면서 수익성 방어 필요성이 커졌다. AI 서버 수요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르면서 TV, 모니터, PC 등 완제품의 원가 부담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원가 부담이 커지면서 LG전자도 일부 제품군의 판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하반기 가전 사업의 초점은 판매량 확대보다 수익성 확보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핵심 제품군과 서비스 플랫폼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정비하고 있고, LG전자는 프리미엄 제품과 볼륨존을 병행하면서 공급망과 제조원가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업체와의 정면 가격 경쟁보다는 수익성이 낮은 제품과 지역을 조정하고, 브랜드 경쟁력과 서비스, 프리미엄 제품 경험을 강화하는 전략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가전 부진은 반도체 호황 속에서도 국내 전자 대기업의 포트폴리오 부담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가 한국 경제 전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가운데, 세트 사업은 수익성 방어 압박을 받고 있어서다. 반도체 가격 상승은 메모리 업체에는 실적 개선 요인이지만, TV·PC·가전 업체에는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같은 그룹 안에서도 반도체 부문은 호황의 혜택받지만, 완제품 부문은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
전자산업은 반도체와 가전의 대응 전략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는 호황기에 확보한 현금을 차세대 공정과 HBM, 첨단 패키징 등 미래 투자로 얼마나 연결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가전은 중국 업체의 공세 속에서 하드웨어 판매 중심 수익모델을 서비스·플랫폼·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AI가 만든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세트 산업에는 원가 상승과 경쟁 심화라는 부담도 함께 주고 있다.
한 관련 업계 관계자는 “2026년 하반기 전자산업은 반도체와 가전의 체력 차이가 뚜렷해지는 시기가 될 수 있다”며 “반도체는 AI 인프라 확산을 바탕으로 수출과 실적을 이끌고 있지만, 가전은 저성장·저수익 환경에서 구조조정과 수익모델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하반기 전략은 단기 실적 방어를 넘어 다음 사이클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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