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의 딜링룸 ‘하나 인피니티 서울’ 전경.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저희가 거래하는 최소 단위가 자그마치 100만달러입니다. 우리돈으로 14억원이 넘죠. 긴장을 늦추면 큰일납니다."지난 3월 11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의 딜링룸(dealing room) '하나 인피니티 서울'에서 만난 이석진 FX플랫폼사업부 외환딜러는 이같이 말했다. 외환 거래를 통해 자금 운용이 이뤄지는 딜링룸에서는 무엇보다 '딜러들의 팀워크'가 생명이라는 설명이다. 이향림 외환파생상품영업부 외환딜러는 "고객과 거래를 체결하려는 순간 화면에 보이는 가격이 급변할 때가 있다"며 "그 사이 이석진 딜러가 시장에서 사고 팔아야 하는 타이밍이 어긋나면 은행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숫자로 다투는 전쟁터딜링룸은 요즘 국내에서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월 25일 국내 주가지수인 코스피(KOSPI)가 6000선을 돌파한 데 이어, 사흘 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습 여파로 환율이 급락하는 악재까지 겹쳐서다. 올해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는 사이드카(매매 체결을 5분간 지연시키는 것)는 8차례, 서킷브레이커(모든 주식거래의 전면 중단)가 2차례나 발동됐고, 원·달러 환율은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 장기화 우려 속에 1480원대로 뛰었다. 하루 걸러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금융 시장 속에서 딜러들은 손실을 막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1개 보트 40!"지난 3월 11일 장 마감을 앞둔 오후 3시20분. '딩동' 하는 체결음과 전화벨 소리만 울리던 딜링룸에서 한 여성 딜러가 크게 소리쳤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곳곳에서도 거래 상황을 알리는 짧은 외침이 이어졌다. 이석진 딜러는 "'1개 보트 40'은 '환율 1479.4원에 100만달러를 팔아달라'는 의미"라며 "딜러들은 짧은 용어를 육성으로 주고받으며 거래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고 말했다. 딜링룸 직원들이 공유하는 약어 체계에 따르면 100만달러는 '개', 1억달러는 '장'으로 부른다. '솔드(sold)'는 "사 달라", '보트(bought)'는 "팔아 달라"를 뜻하며, '던(done)'은 체결, '낫싱(nothing)'은 미체결을 의미한다. 예컨대 한 딜러가 "7.5에 2개 솔드"라고 외친다면, '1467.5원에 200만 달러를 사 달라'는 소리다.2024년 4월 리모델링한 국내 최대 규모의 딜링룸 '하나 인피니티 서울'에는 약 110명의 부서원 중 20명 내외의 딜러가 근무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024년 10월 정부의 외환시장 구조 개선에 따라 딜링룸 조직을 개편했다. FX플랫폼사업부·증권운용부·파생상품운용부·외환파생상품영업부 등 4개 부서가 운영 중이다. 이 때문에 '딜링룸'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근무해도 각자 역할은 천차만별이다. FX플랫폼사업부의 이석진 딜러는 원·달러 등 통화를 직접 운용해 수익을 내는 일을 맡고 있다. 반면 외환파생상품영업부의 박태현 딜러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기업 고객에게 외화를 조달하거나 거래를 중개한다. 같은 부서의 이향림 딜러는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헤지(hedge) 파생상품을 기업에 제안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그러나 환율이 급변하는 장세에서 딜러들은 모두 같은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박태현 딜러는 그중에서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 환경'을 가장 큰 난점으로 꼽았다. 박 딜러는 "미국 정치권 발언이나 지정학적 이슈 등 예상치 못한 변수로 국제 금융시장이 단기간에 크게 요동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외환을 주로 다루는 FX플랫폼사업부의 이석진 딜러는 퇴근 후에도 단말기를 손에서 놓지 않고 밤늦게까지 환율 흐름을 확인하곤 한다.특히 환율의 등락폭이 심해질 때마다 딜링룸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타격하면서 중동발 쇼크가 국내 금융시장에 번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습 직후 환율은 단숨에 1400원대를 넘어섰고, 지난 3월 12일 오후 4시 기준 1481.10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이향림 딜러는 이와 관련해 "주말부터 대응반을 가동해 출근 근무와 비대면 회의를 병행하며 시장 상황을 점검했다"고 말했다.역할에 따라 대응 방식도 달라진다. 환율이 급변하면 세일즈 딜러는 쏟아지는 고객들의 거래 주문과 환율 전망 문의 속에서 정확하게 시장 분위기를 파악해 전달해야 한다. 반면 다른 은행의 딜러와 거래하는 인터뱅크 딜러는 판단 착오가 곧바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거래 한도와 손실 한도를 기준으로 한 리스크 관리에 집중한다. '세일즈 딜러'에 속하는 박태현 딜러는 "국제 정세와 주요 경제 지표를 수시로 점검하며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이석진 FX플랫폼사업부 외환딜러(왼쪽), 이향림 외환파생상품영업부 외환딜러(가운데), 박태현 외환파생상품영업부 외환딜러(오른쪽). photo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카메라 앞에 서는 딜러들딜링룸은 '금융의 심장부'로 기능할 뿐 아니라, 각종 언론사와 방송국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기자들은 이곳에서 환율과 코스피, 코스닥이 한꺼번에 표시되는 대형 전광판을 배경 삼아 딜러들을 찍곤 한다.이날 오후 3시30분, 장 마감이 완료되자 이정희 외환파생상품영업부 대리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스피가 '5609.05'로 큰 등락 없이 장을 마감한 상황이었다. 한 손에 수첩을 든 그는 대형 전광판 앞을 서성이다가 환율과 코스피 지수가 표시된 지점 사이에 멈춰 섰다. 잠시 뒤 미소를 짓자 여러 대의 카메라가 일제히 셔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딜링룸은 대중에게 상징적인 공간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치권이나 해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 지난 3월 10일 국민의힘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하나은행 딜링룸을 찾아 외환시장 동향을 점검했다.딜링룸에서 진행되는 사진 촬영에는 일종의 암묵적인 '공식'이 존재한다. 상승장에는 보통 여성 딜러가 등장해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연출하고, 하락장에는 남성 딜러가 등장해 무거운 분위기를 강조하는 편이다. 촬영에 익숙한 딜러들은 볼펜이나 수첩을 들고 딜링룸을 거닐거나,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장면을 연출한다. 하락장 국면에 자주 모델로 등장하는 박태현 딜러는 "'내 주식이 물렸다'는 진솔한 마음으로 턱을 괴거나 뒷목을 잡는다"고 했다. 이석진 딜러 역시 "사진을 빨리 찍어야 할 때는 '이것 좀 보고 있어봐'라며 서로 의논하는 척하기도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딜러들 역시 딜링룸이 지닌 위상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이석진 딜러는 "지난해 우리 부서가 리그 테이블(금융 시장에서 투자은행, 증권사, 딜링룸 등이 거둔 실적을 순위로 매긴 성적표)에서 수익이나 거래량 1위를 기록한 것과 함께 언론에 비치는 모습도 중요하다"며 "금융시장의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2월 25일 코스피가 6000선을 돌파했을 당시 딜링룸에서 진행된 '축포 세리머니'도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기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향림 딜러는 "회사에서 일하는 모습이 기록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금융시장의 중심에서 기록으로 남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1개 보트 40!" 외치면 14억 오간다…딜링룸 '숫자 전쟁' 24시
반면 외환파생상품영업부의 박태현 딜러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기업 고객에게 외화를 조달하거나 거래를 중개한다. 같은 부서의 이향림 딜러는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한 헤지(hedge) 파생상품을 기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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