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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집단 해고 사태 충격…계급·윤리 등 복잡한 이야기”

세 가족이 차에 탄다. 남편 ‘호석’(설경구)은 아무라도 붙잡고 화를 낼 것 같은 표정이다. 아내 ‘미옥’(전도연)은 그런데도 분위기를 밝게 바꾸려 노력한다. 열 살짜리 아들 ‘철’은 또래보다 행동이 느리다. 주의 깊게 보면 모를까, 유별난 것은 없는 가족이다.

이창동 감독 영화 ‘가능한 사랑’ 국내 첫 언론 시사회

※ 이 기사는 영화 <가능한 사랑>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 가족이 차에 탄다. 남편 ‘호석’(설경구)은 아무라도 붙잡고 화를 낼 것 같은 표정이다. 아내 ‘미옥’(전도연)은 그런데도 분위기를 밝게 바꾸려 노력한다. 열 살짜리 아들 ‘철’은 또래보다 행동이 느리다. 주의 깊게 보면 모를까, 유별난 것은 없는 가족이다. 차는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기껏 왔건만, 호석은 올라가지 않겠다고 한다. 미옥은 한숨을 쉬면서도 몰아붙이지 않는다. 호석과 함께 파업에 나섰고, 같이 해고된 동료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이창동 감독(사진)의 영화 <가능한 사랑>은 이 자리에서 시작한다. 총파업과 강제 진압, 집단해고를 겪은 부부가 이미 패잔병이 된 자리에서.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가능한 사랑>이 21일 언론 시사회로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미리 만난 영화는 차분하고 섬세했다. 때론 웃겼고, 마음이 아렸으며 끝내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호석’(설경구)과 ‘미옥’(전도연), 아들 ‘철’(정섶) 세 가족이 별장을 찾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호석·미옥 부부가 겪은 ‘SP중공업 집단해고 사태’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를 떠올리게 한다. 넷플릭스 제공

해고 노동자 부부·다큐 감독 등

4명의 주인공 이야기 따라가며

쌍용차 정리해고 떠올리게해

전도연·설경구 등 인상적 연기

“타인 고통을 소비…어려운 일”

창작자의 윤리적 고민도 담아

“세계 여러 층위를 같이 봤으면”

이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0여년 전 한 대기업의 집단해고 사태에 충격을 받았다”며 기업을 특정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지만, 한국 관객이라면 호석·미옥 부부가 겪은 ‘SP중공업 집단해고 사태’에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이 감독은 많은 관객에게 과거의 일이 돼버린 사회적 사건을,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를 통해 소환한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예지에게 호석과 미옥은 놓칠 수 없는 ‘특별’한 피사체다. 미옥은 파업 당시 겪었던 감정을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게 말할 줄 안다. 경찰 진압 당시 가장 많이 다쳤는데도 심리 치료를 거부하는 호석이 카메라 앞에서 속내를 털어놓는다면, 그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영상이 있을 수 있을까.

예지는 일단 이 부부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 미옥에게 ‘친구가 되자’고 하고,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가자고 한다. 그의 부유한 남편 ‘상우’(조인성)는 장단을 맞춰 기꺼이 어울려준다. 대대로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투자 전문 펀드의 큰손인 상우가 가진 것들은 극을 계급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예지의 마음이 다 가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미옥이 ‘이야기가 되는 말’을 할 때는 눈을 반짝이면서도 다큐멘터리에 쓰일 것 같지 않은 진심을 이야기할 때는 묘하게 심드렁하다. 그 모습에서는 도리어 이 감독의 윤리적 고민이 보인다.

이 감독은 “예지는 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라며 “제가 영화를 만들 때는 대상으로 하는 사람들의 삶, 그중에서도 대부분 고통이 담겨 있다. 그것을 영화의 재료로 소비하고 있느냐, 다른 무엇을 함께 전달하려고 하느냐의 경계를 찾기란 아직도 어려운 일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에서는 해고 노동자의 삶을 소재로만 빌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읽힌다. 오히려 여름휴가 중 상우와 미옥 사이에 생기는 미묘한 긴장감이 극을 이야기로써 궁금하게 만드는 소재로 이용된다. 그 달콤하고 위험한 표피 아래, 영화는 집단해고가 개인의 존엄성을 어떻게 손상시키는지를 오래 비춘다. 집단상담 장면과 예지의 카메라 앞에서 호석과 그의 옛 동료들은 감정을 토해낸다. 정직하게 일하던 중 해고당했고, 정당하게 싸웠을 뿐인데 ‘귀족 노동자’라느니 ‘빨갱이’라느니 매도당했던 일들에 대해. 회사에 남은 ‘산 자’와 해고당한 ‘죽은 자’ 사이에 생긴 거리를 견디기 힘들어 울분이 쌓이는 나날에 대해.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촬영된 파업 및 강제 진압 현장이 실제 벌어진 사건을 내내 상기시킨다.

배우 전도연과 설경구의 연기가 특히 빛난다. 전도연은 작은 것을 바라볼 때 눈빛을 반짝이며 생의 의지를 잃지 않는 미옥을 표현해낸다. 설경구는 얼굴만으로 울화가 차 있는 호석의 상태를 보여준다. 영화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멋대로 해고되는 일은 대부분 노동자인 우리 모두의 일일 텐데, 왜 이 부부의 고통은 소수의 이야기처럼 취급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감독은 “세계를 단순하고 쉽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여러 층위를 같이 보자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해고 노동자 이야기 같고, 계급 간의 갈등 같기도 하고, 영화 만드는 사람의 윤리나 태도에 관한 문제인 것 같기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인 것도 같은 이야기”라는 감독의 말처럼 <가능한 사랑>은 그 모든 것을 2시간44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찬찬히 곱씹게 한다.

다가오는 23일 일부 극장에서 2주간 개봉한 뒤 오는 11월6일 넷플릭스에 공개된다. 추후 넷플릭스로 보더라도 끊어 보지 않고 한 번에 관람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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