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시골의사’와 필수의료의 비극
류진우 하남성심병원장(일반외과)
2026년 11월 04일(수) 19:10
최근 한 대학병원 소아응급 분야 의료진에 대한 수사 소식을 접하며 문득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시골의사’가 떠오른다. 10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오늘날 우리나라 필수의료 현장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 싶다.
‘시골의사’의 주인공은 한밤중에 위독한 환자를 보러 가야 한다. 그러나 타고 갈 말도 없고, 길은 멀고, 상황은 처음부터 통제되지 않는다. 어렵게 환자에게 도착하지만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의사가 왔으니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니, 해결할 수 없어도 해결해야만 한다고 요구한다.
소설 속에서 그 기대는 거의 폭력의 형태로 드러난다.
“그의 옷을 벗겨라. 그래야 치료할 것이다. 그가 치료하지 않으면 그를 죽여라. 그것이 의사일 뿐이다.”
의사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 환자를 살리지 못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는 냉혹한 명령이다. 카프카가 그려낸 것은 광기 어린 군중이 아니라 의사에게 불가능한 책임을 부과하는 사회의 민낯이다.
카프카가 그린 비극은 질병도, 의사 개인의 무능도 아니다. 그 비극의 본질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지게 하는 구조에 있다.
오늘날 필수의료가 처한 현실 역시 이와 닮아 있다.
의료진은 생명의 경계선에 선 환자들을 매일 마주한다. 현대 의학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다. 의사는 신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전문가이다.
그러나 사회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응급실 문을 통과한 순간부터 사람들은 의사에게 기적을 기대한다. 최선을 다했는지보다 결과가 어땠는지가 먼저 평가된다. 환자가 회복하면 당연한 일로 여겨지지만 사망하거나 중대한 후유증이 남으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그 과정에서 의료진의 판단과 노력, 당시의 의료적 한계는 뒤로 밀리고 결과만 남는다.
물론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은 너무나 크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앞에서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의료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모든 나쁜 결과를 곧바로 특정 의료인의 과실과 동일시할 때 발생한다.
그 순간 의사는 치료자가 아니라 잠재적 피고인이 된다.
카프카의 소설 속 의사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다. 그는 환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노력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가 환자를 구했는지, 구하지 못했는지만 본다.
그래서 ‘시골의사’를 읽고 나면 환자의 병보다 의사의 고독이 더 강하게 남는다.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성공이 보장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모든 책임은 그의 몫이 된다.
어쩌면 오늘날 필수의료 위기의 중요한 원인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보상체계와 인력 부족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최선을 다해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분야에서 결과에 대한 무한책임을 요구받는다면 그 일을 하려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카프카는 작품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외친다.
“속은 거야! 속은 거야! 잘못 울린 야간 비상벨 소리에 덜컥 응했다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들어야 할 것은 의사들을 향한 또 하나의 비난이 아니다. 왜 점점 더 많은 의사들이 그 종소리에 응답하려 하지 않는가, 그리고 왜 응답한 사람들마저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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