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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계의 시, 시의 세계]카프카의 시계 -어떤 편지에서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단편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시집도 여러 권 냈다. 완역된 시전집 (고영범 옮김)에는 가난, 알코올중독, 이혼 등 파란만장했던 삶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시들이 가득하다.

[세계의 시, 시의 세계]카프카의 시계 -어떤 편지에서

난 겨우 팔십 크라운이라는 적은 월급을 받으며

여덟시부터 아홉시까지 끝도 없이 일합니다.

나는 사무실 밖에서의 시간을 야수처럼 탐합니다.

언젠가는 외국에 나가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사탕수수밭이나 무슬림들의 공동묘지를

내다보고 싶습니다.

괴로운 건 일 자체보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늪 같은 시간입니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쪼개지질 않아요! 하루의 마지막 삼십 분에도

여덟 시간이나 아홉 시간 전체의 압력을 느껴요.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히

무너지는. 더 이상 엔진의 힘에 대해서도, 구릉이나

들판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오로지

시계에만 의존해 판단하게 됩니다. 늘 손안에 쥐고 있는

그 시계. 그러고는 흔들어댑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어하며

그걸 천천히 귓가로 가져가는 겁니다.

- 레이먼드 카버(1938~1988)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 단편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시집도 여러 권 냈다. 완역된 시전집 <우리 모두>(고영범 옮김)에는 가난, 알코올중독, 이혼 등 파란만장했던 삶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시들이 가득하다. 카버는 단편소설이 장편소설보다 시와 더 가까운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시는 카프카가 연인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를 끌어와 지루하고 고단한 노동의 시간에 갇혀 있는 일상을 보여준다. 카버의 아버지는 제재소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웨이트리스로 일했다. 카버 역시 소설가로 성공하기 전까지 주유소 직원, 경비원, 접시닦이 등 저임금 노동을 전전하며 글을 썼다. 카프카가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격무와 야근에 시달리며 관료체제에 대한 피로와 환멸을 작품에 담아냈던 것처럼. 그러니 이 시의 화자는 카프카인 동시에 카버다. ‘나’는 “사무실 밖에서의 시간을 야수처럼” 탐하며 이국적 풍경으로의 여행을 꿈꾸지만, “느릿느릿 기어가는/ 늪 같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분절되지 않는 시간은 도통 흘러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히/ 무너지는”이라는 대목에서는 마흔 살에 폐결핵으로 죽은 카프카와 오십 살에 폐암으로 죽은 카버의 모습이 고스란히 겹친다. 근대적 시간의 표상인 시계를 흔들어대며 귓가로 가져가는 것은 시간에 갇힌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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