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사물, 새로운 시선…그저 바라보았을 뿐
‘사물의 재발견 재일 작가와 한국 현대미술’
29일까지 광주미술관 하정웅미술관
‘모노하와 단색화’ 예술적 만남
작가 11명 작품 60여점 전시
2026년 11월 01일(일) 19:30
이우환 작 ‘From Line’
자연과 사물을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던 시각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전후 산업화, 환경위기가 가시화되며 한계가 명징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사물을 다스린다는 우월적인 관점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사물과 공간, 행위와 시간의 관계를 살펴보자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사물과 물성을 조명하는 ‘사물의 재발견’전이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광주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지난달 20일 개막해 오는 2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재일 작가와 한국 작가 11명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다.
세키네 노부오 작 ‘허공의 피라미드’
최수연 학예사는 전시 기획에 대해 “60~70년대 재일 작가와 한국 미술이 ‘사물’과 ‘물성’(物性)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과정 등에 초점을 맞췄다”며 “일본에서는 이 시기 대상을 재현하거나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대신 사물이 지닌 성질과 사물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60년대 말에는 돌과 나무, 철판 등 사물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제시하는 ‘모노하’가 나타났다”며 “이번 전시는 한국 단색화와의 연관성과 영향 관계 등을 다각도로 아우르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전시실에서는 곽인식, 세키네 노부오, 이우환, 곽덕준, 김구림, 문승근, 손아유,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최명영의 작품이 관객들을 맞고 있다. 60~70년대를 중심으로 90년대까지의 드로잉을 비롯해 판화, 사진, 회화 등 모두 60여 점이 출품됐다.
곽인식 작 ‘work 81H’
윤익 광주미술관장은 “당시에는 사물을 작가 의도대로 재현하는 방식이 아닌 재료와 사물 자체를 바라보는 변화에 의해 새로운 경향이 출현했다”며 “이번 전시는 재일 작가와 한국 작가의 관계를 일방적 영향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동시대 만남으로 상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사물과 관계, 모노하의 태동’은 60년대 재일 작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사물을 새롭게 발견해 간 미술의 변화를 주목한다. 당시 출현한 ‘모노하’는 가공하지 않은 사물을 제시해, 공간과 관계를 사유하게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리를 깨고 동판을 이어 재료의 성질을 드러낸 곽인식의 ‘Work 63A’와 ‘Work 65B’, 붓질의 선과 여백을 매개로 사유를 작품에 담아낸 이우환의 ‘From Line’이 대표적이다. ‘타임’ 표지 속 미국 대통령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붙여 권위를 풍자한 곽덕준의 ‘대통령과 곽’ 연작도 걸려 있다.
사물에 대한 사유가 개념, 행위로 확장된 것을 다룬 내용도 있다. 2부 ‘개념과 행위, 매체의 확장’은 행위의 흔적을 주목하는데 당시 작가들은 기존 미술의 문법을 벗어난 작업을 활발하게 펼쳤다. 이들은 캔버스와 조각에서 사진, 판화, 영상 등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전시실에는 한자 활자를 박은 공을 종이 위에 굴린 문승근의 ‘활자구’, 연필 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한 손아유의 ‘형태의 소거 또는 거리의 위치’가 소개되고 있다.
마지막 3부 ‘반복과 축적, 단색화의 수행’은 한국의 단색화를 초점화한다. 동일한 행위로 화면을 쌓아 올린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최명영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마르지 않은 물감 위에 연필 선을 그은 박서보의 ‘묘법’ NO. 6-80을 비롯해 캔버스를 접은 뒤 조각을 떼어 내 빈 곳을 메워 완성한 정상화의 ‘무제 85-12-2’, 마포 뒤쪽의 물감을 앞으로 밀어내 표현한 하종현의 ‘접합 85-8’, 연필 획만으로 화폭을 채운 최명영의 ‘평면조건 8240’ 등은 행위를 되풀이해 시간을 축적한 정밀한 미의식을 보여준다.
김지현 하정웅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하 명예관장이 수집해 기증한 작품을 선보이는 ‘2026 하정웅컬렉션전 Ⅱ’로 기획됐다”며 “많은 분들이 전시장에 들러 컬렉션이 갖는 현대미술사적 의미도 생각하고 좋은 작품도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박성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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