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 수호아이오 대표/사진=최이담 기자
서울 강남의 한 카페. 해외 여행객이 스마트폰을 꺼내 가맹점 큐알(QR)코드를 스캔한다. 환전소를 찾아 헤맬 필요도 국제카드 수수료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몇 초 만에 결제가 완료된다. 블록체인 핀테크 기업 수호아이오(SOOHO.IO)가 올해 3월 선보인 티코 페이(Tiko Pay)가 그리는 장면이다.
이달 초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수호아이오 사무실에서 와 만난 박지수 대표는 "수호아이오가 출범한 지 벌써 8년 차가 됐다"며 "금융기관들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 있게 나서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금융 배관공'이 나타나기까지
박 대표는 두나무에서 개발자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주식 서비스 '증권플러스'에서 가상자산거래소로 사업을 넓혀가는 과정을 몸소 경험하며 핀테크에 눈을 떴다. 창업의 씨앗은 그 무렵 접한 무역협회의 페이팔(PayPal) 성공 분석 보고서에서 싹텄다.
박 대표는 "페이팔이 원 클릭 결제를 구현할 수 있었던 건 가짜 카드와 분실 카드를 걸러내는 '매입 처리' 기술 덕분이었다"며 "핀테크를 제대로 하려면 결국 보안이 생명이라는 확신을 그때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확신을 바탕으로 그는 고려대학교 창업연구실에서 연구를 이어갔고 교수와의 논의 끝에 2019년 수호아이오를 창업했다. 회사가 블록체인 보안으로 출발한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처음부터 정체성을 '핀테크 기업'으로 규정해왔다. 그는 "외부에선 보안 회사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지만 초기 투자자(IR) 자료에도 '우리는 페이팔을 지향한다'고 명시했을 정도"라며 "보안은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보안에서 쌓은 역량은 자연스럽게 다음 사업으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 네트워크 간 자산을 이동시키는 브릿지 기술이 대표적이다. 이더리움에서 솔라나로 자산을 보내려면 한쪽 데이터베이스를 줄이고 다른 쪽을 늘리는 정교한 동기화 작업이 필요하고 보안이 뚫리는 순간 수백억 원이 증발할 수 있다. 박 대표가 '금융업의 배관공'을 지향하는 이유다. 이 브릿지 기술을 국경을 넘는 결제의 비효율에 적용한 것이 외환(FX) 정산 인프라 '이지스(Ezys)'다. 티코 페이는 이지 인프라 위에 얹힌 소비자용 서비스다.
박지수 수호아이오 대표가 이달 초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진행된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최이담 기자
외국인 결제 시장을 두드리다
티코 페이가 겨냥한 시장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다. 특히 국제 신용카드 보급률이 낮거나 기존 결제 수단이 막혀 있는 동남아시아·중국 관광객이 주된 타깃이다. 목적연동화폐(PBM, Purpose Bound Money) 기술 기반의 디지털 바우처를 앱으로 구매하면 제휴 가맹점에서 큐알코드 하나로 즉시 결제가 가능하다. 한국 전화번호나 은행 계좌 없이도 쓸 수 있고 수수료는 기존 환전소 대비 3.5% 수준으로 낮췄다.
가맹점 확보는 지역 상권 기반 리워드·쿠폰 플랫폼 블루프로그(Bluefrog)와의 협력으로 풀었다. 블루프로그가 가맹점 영업을 맡고 수호아이오는 결제 인프라를 제공하는 역할 분담이다. 블루프로그는 3월 말까지 50개 이상의 제휴 가맹점 바우처를 공급하기로 했다. 가맹점 영업 현장에서도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는다. 박 대표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사장님께는 수수료 없이 외화 매출을 늘릴 수 있다는 사업 기회로 접근한다"며 "기술보다 실익을 먼저 보여드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가맹점 업주가 동의해도 현장 직원이 사용법을 모르는 경우가 잦았고 결제 승인 화면이 낯설어 불안해하는 외국인 고객도 적지 않았다. 박 대표는 "같은 화면도 문화권에 따라 직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걸 실감했다"며 "태생적으로 글로벌 서비스인 만큼 사용자 경험(UX)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게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이 경험은 성장 전략의 수정으로 이어졌다. 자체 앱으로 이용자를 직접 확보하는 기업·소비자간거래(B2C) 방식 대신 이미 수십만 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지갑 앱 안에 티코 페이 기능을 탑재하는 기업간거래(B2B)·기업간소비자간거래(B2B2C) 방식으로 무게추를 옮겼다.
박 대표는 "처음부터 인프라를 지향한 회사인 만큼 직접 이용자를 모으는 것보다 이미 고객이 많은 곳과 연결되는 방식이 우리 성격에 더 맞다"고 말했다. 현재 이용자 100만~500만 명 규모의 앱들과 제휴 협의를 진행 중이다.
수호아이오는 올해 3월 글로벌 여행객을 위한 혁신적인 결제 솔루션 'Tiko Pay(티코페이)'를 선보였다./사진=수호아이오
산업 전반으로, 배관은 계속된다
인프라 기업으로서의 확장은 외국인 결제에 그치지 않는다. 수호아이오는 최근 케이팝(K-POP) 아이피(IP) 기반 리듬게임 기업 달콤소프트, 싱가포르 소재 엔트웬티원(NOONE21)과 게임 포인트 자산화를 위한 3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핵심은 회계상 '계약부채'로 잠들어 있는 유휴 포인트를 디지털 자산과 연계해 실제로 순환시키는 구조다. 결제와 금융 기능을 결합하는 페이파이(PayFi) 개념을 게임 산업에 적용한 실험으로 업계에서는 국내 포인트 시장이 상당한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에이전트 결제까지 더해진다. 퍼플렉시티(Perplexity)나 제미나이(Gemini) 같은 AI 검색 서비스에서 상품을 찾은 뒤 결과 화면에서 바로 달러 스테이블코인(USDC)으로 결제하는 방식이다. 올 하반기 코리아블록체인위크(KBW)에서 시연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인공지능 검색을 통해 나온 결과에 대한 이용자 신뢰도가 다른 채널보다 높고 구매 전환율도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며 "결제 인프라가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연결되는 흐름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올해 거래액 1조원, 결제·송금·포인트·AI 에이전트 결제 등 7개 섹터 적용, 직간접 이용자 10만명을 목표로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물류, 의료 등 데이터가 파편화된 산업 전반으로 인프라를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기관이나 기업이 직접 구축하려면 1~2년은 족히 걸리지만 우리와 협력하면 내일 당장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며 "어느 분야든 시스템이 연결되는 순간 새로운 서비스가 나온다. 우리가 '배관'을 놓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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