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에 합의하며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최악의 국면인 '전면전'으로 치닫을 가능성은 낮아졌으나, 그로 인한 경제적 후폭풍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고유가와 물가 상승 압력이 원화 가치를 끌어내리면서 이달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 중반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경계감도 나온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달러당 24원 내린 1479원에 거래를 시작해 오후 2시 기준 147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외환시장에선 중동 정세가 추가 확전으로 번지지 않더라도 환율이 빠르게 안정을 찾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쟁 충격이 국제유가와 공급망, 미국 물가와 금리 전망으로 옮겨가며 달러 강세 압력을 키우고 있어서다. 안전자산 선호가 다소 누그러져도 유가와 물가가 다시 시장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면 원화 반등 폭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화투자증권은 이달 원·달러 환율이 1460~1530원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 충돌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전쟁 여파가 유가와 물가, 통화정책 불확실성으로 번지면서 환율 상단이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난달처럼 공포가 한꺼번에 반영된 급등장이 다시 펼쳐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고 환율이 곧바로 하락 추세로 돌아설 여건도 아직 충분하진 않다.
시장 참가자들이 더 예민하게 보는 변수는 전쟁 자체보다 전쟁 뒤에 남을 비용이다. 중동 내 주요 에너지 시설이 타격을 입으면서 공급망 정상화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이어지면 유조선 운항 차질과 물류비 상승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진정되더라도 국제유가 하락 속도는 더딜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고유가는 미국 물가를 다시 자극하는 변수다. 유가 상승분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 2분기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시 3%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미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질수록 달러 강세는 이어지고 원화 부담은 커진다. 연준의 금리 동결 기조가 길어질수록 원·달러 환율도 높은 수준에서 출렁일 공산이 크다.
원화 약세를 완화할 재료도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은 대표적인 방어 요인으로 꼽힌다. 3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1.4% 증가했다. 수출 단가와 물량 등 교역조건도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자금 유입 기대를 떠받치는 요인이다. 정부의 유가 안정 조치 역시 환율 상승 압력을 일부 완화하는 변수로 거론된다.
원·달러 환율이 단기간에 추세 하락으로 돌아서긴 쉽지 않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전쟁이 조기에 마무리되면 환율이 단기적으로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유가와 물가, 미국 금리 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만큼 하락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이란 협상 흐름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변동성 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며 "상황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은 크지 않아 지난달 같은 급등세가 재연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면 환율이 단기 급락할 수 있지만, 유가와 물가, 통화정책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추세 하락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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