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hatGPT.
중동 전쟁 장기화와 글로벌 자금 이동이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이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대규모 이탈까지 겹치면서 원화 약세가 주요국 대비 가장 가파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2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과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7일까지 평균 환율은 1489.3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998년 3월 수준을 넘어서는 수치로 월간 기준 역대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12월과 199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구간이다.
올해 들어 평균 환율도 1464.93원으로 상승해 1998년 1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주간 기준으로도 환율은 1500원선을 돌파했다. 지난주 평균 환율은 1503.4원으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00원대에 진입했다.
원화 약세 속도는 주요국 대비 두드러진다. 이달 들어 28일까지 원화 가치는 달러 대비 4.72% 하락해 주요 통화 중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달러인덱스 상승률은 2.6% 수준에 그쳤다.
유로, 엔, 파운드 등 주요 선진국 통화는 물론 호주달러, 대만달러,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보다도 원화 약세가 더 컸다. 일부 신흥국 통화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취약한 흐름이다.
외환시장 불안의 핵심 요인은 외국인 자금 이탈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약 29조8146억원을 순매도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기록까지 합하면 두 달간 50조원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특히 최근 한 주 동안에만 13조3164억원 규모를 순매도하며 주간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치를 다시 썼다. 시장에서는 단순 차익 실현을 넘어 구조적 리스크 회피 성격이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동 전쟁으로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된 데 더해 AI·반도체 업황에 대한 불확실성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기술 변화가 메모리 수요 둔화 가능성을 키우면서 반도체 중심의 한국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AI와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우리 증시 과열 등이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반도체 전망이 아직 좋지만 중동 전쟁과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 회피 국면에서 외국인들의 포트폴리오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이 코스피를 순매수하면서 주가를 받치고 있는 것도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익 실현을 하기 좋은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의존 구조 역시 원화 약세 요인으로 지목된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유가 상승은 곧바로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중동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와 안전 자산 선호 심리, 원화 약세 우려에 따른 환차손 회피 목적 등으로 외국인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전쟁으로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거나 스태그플레이션이 오면 반도체 사이클도 조정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원화 약세 흐름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기대가 지속되는 한 환율 상승 압력이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낙원 NH농협은행 FX파생전문위원은 환율이 올해 하반기까지 1450원~1510원 범위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군사 개입이 확대될 경우 단기간에 1550원 돌파 가능성도 제기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120~130달러대에서 유지된다면 환율 균형점 자체가 1500원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전쟁이 완화돼도 과거 수준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제한적이고 연평균 환율 역시 1450원대 이상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이코노미스트는 "걸프 지역 에너지 시설 복구와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면서 "1500원대 환율이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신용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