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불편함은 스스로 견딜 수는 있으나 손쉽지 않고 무엇인가 편안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즉 ‘불편함’은 편하지 못하거나 혹은 쉽게 되지 않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무언가 힘겹거나, 익숙한 환경이 아닐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피하려 한다. 그러나 불편함이야말로 창조와 혁신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역사가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인류 문명과 기술의 발전 대부분은 불편함을 해소하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출발하였다. 인간의 습성상 편안함에서는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불편함은 지금 주어진 현실을 생각하며 그 이유를 찾아 움직이게 하며, 더 나은 상황으로 개선할 것을 궁리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물질, 문명을 개선 해 왔다. 이동할 때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물건을 쉽게 그리고 한 번에 많이 그리고 쉽게 옮기기 위해 바퀴가 달린 마차를 발명하였고 말이 끄는 수단을 생각하였으며 이에 더하여 더 빠르고 말이 필요 없는 자동차 등을 고안하였다. 느림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더 빠른 철도와 비행기를 만들어 불편을 덜어내고 있다. 아프면 누구나 불편하고 언짢다. 질병에 의한 불편과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각종 약을 개발하고 의술을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동양에서는 한약이 발전하게 되고 서양에서는 과학에 기반을 둔 화학약품의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인간 감정의 기본인 호기심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좋은 예가 항생제의 탄생이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은 우연히 곰팡이가 세균을 죽이는 현상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호기심이 세계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개발하는 시초가 되었다. 주어진 현상을 예리하게 관찰한 결과,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정보통신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 차이로 인한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전화이며 전화도 불편하고 느리다고 느껴 인터넷이며, 스마트폰이 나타나더니 여기서 더 나아가 AI가 인간의 사고 능력까지 넘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모두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불편함 혹은 더 나은 것을 향한 인간의 무한 도전의 결과이다.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은 전화기, 음악기기, 카메라, 인터넷 기기를 하나로 묶어냈고, 사용자 중심 디자인을 통해 디지털 생태계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불편함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는 이들을 위한 보조기기와 유니버설 디자인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선 사회적 평등의 문제다. 휠체어 진입로, 자동문, 점자 블록은 특정 집단을 위한 장치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사용하는 보편적 시스템이 되었다. 불편함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에 응답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도 예외는 아니다. 1960~70년대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심각한 에너지 부족과 교통 문제, 식량난을 겪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은 곧 국가 발전을 위한 전략적 투자로 이어졌다. 한강 다리 건설, 고속도로 개통, 전력 인프라 구축 등은 오늘날 대한민국 산업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불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선하려는 도전으로 전환한 선택이 오늘의 성장을 이끈 것이다. 물론 이렇게 도전 할 수 있게 동력을 유발한 훌륭한 지도자와 우리 민족의 불굴의 창조와 개발 정신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일상의 불편도 새로운 창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다가 얼굴에 떨어뜨리는 불편함에서 착안된 목걸이형 거치대, 휘발성 냄새가 나는 쓰레기봉투를 탈취 처리한 기능성 제품을 개발한 것은 우리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든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불편함을 문제로 삼고, 기술과 아이디어로 해결책을 제시하며 미래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오히려 지나친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있다. 불편함을 ‘불필요한 스트레스’로 간주하며, 그것을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자동화, 인공지능, 배달과 예약 시스템 등은 물론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기술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감각과 문제 인식 능력을 무디게 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불편을 불편이 아닌 기회로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느끼는 학습의 어려움,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불편함은 단순히 ‘힘듦’이 아니라 성장의 신호다. 핀란드는 이러한 불편함을 교육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대표적 국가다. 그들은 실패나 어려움을 ‘탐색의 과정’으로 여기고,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결국 창의성과 자율성의 뿌리가 된다.
불편함은 단순한 불편함이나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질문의 시작이고, 개선을 요구하는 신호이며, 우리를 깨어 있게 만드는 자극이다. 중요한 것은 불편함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느냐에 있다. 회피가 아닌 마주함, 불평이 아닌 개선을 위한 실천, 고통이 아닌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시도야말로 진정한 창조의 기초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불편함 속에 살고 있다. 그 불편함을 기꺼이 껴안고, 그 속에서 새로운 해결의 답을 찾는 개인, 사회, 국가가 결국 미래를 주도할 것이다. 불편함은 단지 감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열쇠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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