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km 해협에 묶인 에너지 생명선, ‘수익자 부담’ 압박 속에 드러난 한국 산업의 취약성
[권의종 칼럼] 지구 반대편의 좁은 해협 하나가 대한민국 경제의 숨줄을 쥐고 있다. 지도 위에서는 점처럼 보이는 호르무즈 해협. 그러나 그곳의 파도가 거칠어질 때마다 한국 경제는 어김없이 몸살을 앓는다. 폭 33km에 불과한 이 좁은 수로는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핵심 관문이며, 동시에 한국 경제의 심장으로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동맥이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값,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의 전력, 트럭이 실어 나르는 물류비용까지. 이 모든 것이 결국 이 해협의 안전에 달려 있다. 호르무즈는 단순한 항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에너지 생명선’이다.
2026년 3월, 중동의 긴장은 단순한 유가 상승을 넘어섰다. 이란의 공습으로 UAE 푸자이라 항 인근 유전이 불타오르고, 보복 공격이 이어지면서 호르무즈 봉쇄 가능성은 더 이상 가정이 아닌 현실적 위협이 되었다. 한국 경제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구조적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동시에 동맹의 ‘비용 분담’이라는 또 다른 압박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았다.
대한민국은 에너지의 90% 이상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원유 도입의 70% 이상이 중동에 집중돼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작년 기준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전체 물동량 가운데 한국행 비중이 12%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산업과 가계, 그리고 국가 경제의 핵심 동력이 사실상 이 33km 해협에 담보로 잡혀 있는 셈이다.
유가·환율·금리 ‘3중 충격’,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계를 덮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 에너지 수혜국을 직접 거명하며 “군함을 보내라”고 압박하고 있다. ‘수익자 부담 원칙’을 앞세운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이 이제 안보 영역까지 확장된 것이다.
과거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했던 선례가 있지만, 이번 상황은 차원이 다르다. 단순한 해상 보호 임무가 아니라 사실상 대이란 군사 작전에 참여하는 다국적군 편입이라는 무거운 선택지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비용이 이제는 군사적 위험과 외교적 부담이라는 훨씬 더 큰 대가로 돌아오고 있다.
호르무즈의 위기는 단순히 주유소 기름값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으로 UAE 원유 적재가 중단되자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유가 상승은 곧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도미노처럼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밀어 올린다.
2026년의 인플레이션은 공급망 충격과 지정학적 갈등이 결합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다. 고유가는 수입 결제를 위한 달러 수요를 폭증시키고 원화 가치를 떨어뜨린다. 원화 약세는 다시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금리 인상 압박으로 되돌아온다. 유가·환율·금리라는 ‘3중 충격’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한국 경제의 체력을 갉아먹는 구조다.
결국 호르무즈에서 발사된 미사일 한 발이 강남의 빌딩 숲부터 지방 산업단지, 그리고 전통시장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우리 경제의 모든 접점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중동 의존 경제의 한계,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수입선 다변화가 거론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순한 공급선 문제가 아니다. 동맹국인 미국이 군사적 기여까지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의 생존 전략은 근본적인 재설계를 요구받고 있다.
첫째,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공급 포트폴리오 재편이 시급하다. 미주와 아프리카 등으로 도입선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특정 항로에 묶인 물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전략적 비축과 대체 운송 경로 확보가 필요하다.
둘째, 에너지 효율 중심의 산업 구조 전환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같은 주력 산업이 외부 에너지 충격에 덜 흔들리도록 에너지 집약도를 낮추고, 수소 경제와 차세대 에너지 기술 투자를 ‘산업 정책’이 아닌 ‘국가 안보 전략’의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셋째, 에너지 안보를 국가 전략의 최우선 의제로 격상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상시화된 구조적 변수다. 미국의 ‘공동 책임’ 요구와 한국의 경제적 실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정교한 외교 전략, 그리고 이를 실행할 민관 협력형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호르무즈 해협의 불길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번영은 과연 얼마나 견고한가. 외부 에너지와 타국의 안보 우산에 과도하게 의존한 성장은 작은 파동에도 쉽게 흔들린다. 에너지 주권은 단순히 원유를 확보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외부 충격 속에서도 국가 경제의 자율성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이다.
호르무즈의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다리는 경제는 결코 강한 경제가 아니다. 안개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가장 절박한 과제다.
필자소개
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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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학박사
- (사)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사)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 전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 전 신용보증기금 전무이사, 신보에이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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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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