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가동이 중단된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NCC 2공장. photo 뉴스1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전 세계적 경제 위기는 국내 지역 산업 상태계에도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중에서도 지역 내 경제의 70% 이상을 석유화학산업으로 감당하는 전남 여수시는 국내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해 나프타 수급에 비상이 걸렸고, 공장 문이 닫히게 된 석유화학단지 근무자들은 대거 실직 후 도시를 떠났다. 이처럼 특정 산업에 기댄 채 사실상 지역 전체의 재정을 유지해야 하는 기초자치단체들은 작은 변화에도 큰 역풍을 맞게 된다. 때문에 지역 내 경영전문가들은 "도심 경제가 단순화될수록 자치단체장의 경영자적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더해 특정 정당이 지역 헤게모니를 독점하는 구조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수는 중동 사태로 인해 지역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지역 내 인사들은 이번 여수 석유화학단지의 위기는 전쟁 전부터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2022년부터 여수 산단에 입주한 약 300개가량의 주요 기업과 협력업체들은 지속적으로 매출 감소를 겪어왔고 공장 가동률 역시 크게 저하됐다. 지난해에는 전남도청 차원에서 여수 산단의 위기 대응을 별도 과제로 거론했고, 올해 여수시는 '석유화학 산단 신산업 전환'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여수 산단 내 한 기업 대표는 "여수시의 지역경제를 관광이나 해양 항만이 먹여살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석유화학산업이 전체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 내 민심은 자연스럽게 지역 국회의원들이나 자치단체로 쏠리고 있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여수시장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한 지역 내 인사 A씨는 주간조선에 "여수 산단이 망해가고 있는 이유는 경영감각이 없는 법률가, 행정가 출신 인물들이 시장을 맡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 열리는 여수세계섬박람회도 간판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며 "시정에 있어서 일종의 부실 경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 내 정치권에서도 성토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여수시의회 소속 의원 B씨는 "경기 침체 국면에서 시장은 책임 있는 리더십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시민 불안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도시의 수장으로서 무책임한 모습"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역 정치인들의 무관심이 원인
실제로 여수는 2022년부터 지역경제 침체가 심화되기 시작했다. 여수상공회의소 지역경제동향보고서에 따르면 여수 산단의 2023년 연간 생산실적은 전해에 비해 16.1%가량 감소했다. 수출액은 17.2%, 고용률은 4.2%가 줄었다. 물론 중국발 석유화학산업 저가 공세와 전국적인 경기침체가 주된 원인으로 꼽히나, 지역 내 인사들은 '위기에 대한 별다른 대응책 마련 없이 방치만 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A씨는 "석유화학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면 다른 차원의 산업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 여수 정치인들은 그런 노력이 안 보인다"며 "같은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울산은 다른 첨단산업 개발을 통해 대응책을 세우는데, 여수는 그저 인구가 빠져나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다"고 말했다. 여수 산업단지 내 업체 대표를 겸임 중인 김창주 전 여수경영인협회 회장은 "지금의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재정적·경영적인 해결책을 찾는 지역단체장이 필요하다"며 "멈춰 있는 공장을 보고도, 텅 빈 식당 거리를 보고도 아무 생각이 없는 지역 내 정치인들이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
여수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수와 함께 대표적인 전남 내 산업도시로 꼽히는 광양시 역시 비슷한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광양은 지역 내 생산의 88% 이상, 수출의 97% 이상을 철강산업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여수와 마찬가지로 철강산업이 흔들리면 도시 경제 전체에 위기가 찾아온다. 2024년부터 광양제철소를 중심으로 한 철강 생산액과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전남도는 광양을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인구가 급격히 감소 중인 군 단위의 기초자치단체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자치단체장들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은 다르지만 여수나 광양보다 앞선 사례로 경상북도 구미를 꼽는 지적도 나온다. 경상북도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였던 구미는 삼성과 LG전자의 생산공장이 있는 곳으로 국내 전자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최대 수혜지역으로 꼽혔던 곳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나 가전 등 산업이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인해 쪼그라들면서 지역경제도 역풍을 맞았다. 젊은층의 이탈도 가속화됐다. 다만 최근 들어 반도체 소재·부품 특화단지와 방산 혁신 클러스터로 지정되면서 SK실트론, LG이노텍 등의 대규모 투자가 다시 시작되며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수나 광양도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을 유치해 지역경제의 성격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역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공천이 곧 당선… "정책 토론 적어"
호남의 고질적인 정치 구조가 지역경제 침체를 가속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남은 매 선거마다 더불어민주당이 9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대표적인 민주당의 텃밭이다. 이 때문에 현 전라남도 민선 8기 기초자치단체장 22명 중 16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나머지 6명도 무소속 출마와 탈당 이전까지는 모두 민주당 출신인 인사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법률가나 공무원 출신으로 지역 내에서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전남 지역 내 한 여당 인사는 "호남에서는 다양한 정책 토론과 변화가 나오기 어렵다"며 "공천을 받으면 당선되는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선거학회장을 지낸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호남만의 고질적 현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일당 우위 체제 속에서 고인물화 현상이 심해진다"며 "중앙에서 엘리트들이 정치를 하기 위해 지방으로 내려오거나 단편적인 단체장 선출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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