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나리 정경부 차장
대구백화점의 경영권이 대구·경북지역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외지업체에 넘어간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진 건 지난달 15일이었다. 이날 대백 최대주주인 구정모 회장 등 7명이 보유한 지분 25.82%를 세경인베스트와 아람코리아에 넘기는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됐다.
그날만큼은 대백에 드리워진 긴 매각의 그림자가 걷히는 듯했다. 새 주인이 정해졌단 소식은 단순한 최대주주 변경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대구의 대표 향토기업이 새로운 주인을 맞고, 장기간 문이 닫힌 동성로 본점도 다시 활용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지역사회에 번졌다.
이런 기대는 40여일 만에 물거품이 됐다. 매수인 측은 2차 중도금 80억원 가운데 10억원만 지급하고 나머지 70억원을 기한 내 납입하지 못했다. 이후 매수인까지 변경되고 대금 지급 일정까지 조정됐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70억원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계약은 해제됐다.
계약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시장과 지역민의 관심은 누가 대백의 새 주인이 되는가에 쏠렸다. 이후에는 인수 이후 어떤 사업을 펼칠 것인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예정된 일정이 재차 조정되고, 돈이 제때 안 들어오고, 급기야 매수인까지 바뀌면서 대백의 새 돌파구가 열렸다는 본질은 흐려지고 회사 주인이 정말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만 커졌다.
이번 지분 매각 거래가 무산된 직접적인 책임은 약속한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매수인 측에 있다. 계약을 체결했다면 그 계약을 이행하는 게 거래의 기본이며 자금 조달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 역시 인수 주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특히 중도금 지급 능력조차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권 인수를 추진했다면, 이는 단순한 투자 판단의 실패를 넘어 자본시장 거래에 임하는 책임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매수인이 애초에 이 거래를 끝까지 완주할 준비가 돼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매수인에게 기업 인수는 한 번 던져보는 사업 아이디어가 아니다. 토종기업의 미래와 어려운 상황에도 애사심을 갖고 묵묵히 대백을 지켜온 직원들의 생계, 지역사회의 숱한 기대가 걸린 거래다.
특히 5년여간 비어 있는 대백 본점에 일본의 대형 할인잡화점 ‘돈키호테’ 국내 1호 매장을 유치하겠다는 청사진도 공개돼 지역사회를 뒤흔들었다. 계약금 10억원과 1차 중도금 14억원만 납부한 상태에서 나온 사업계획이었다.
대백을 둘러싼 거래는 왜 마지막 단계에서 계속 흔들릴까. 시장은 지역사회에서 바라보는 대백의 상징성과 오랜 기억에 가격을 매기지 않는다. 결국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자금을 투입했을 때 회수할 수 있는지,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반면 대백에 얽힌 추억들을 공유하는 지역민들과, 동성로 한복판 빈 공간에 다시 불이 켜지길 바라는 상인들이 있다. 단순히 한 기업의 정상화에 대한 기대라기보다는, 동성로의 상징적인 공간이 다시 살아나고 침체된 도심에 새 콘텐츠가 들어오고, 지역 유통산업에도 변화의 계기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기대였다.
오랜 시간 대백을 일터로 삼아온 직원들에게도 이번 매각은 더욱 남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새 주인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품었을 기대도, 일정이 거듭 미뤄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꼈을 불안도, 결국 거래가 무산됐다는 소식을 접한 착잡함도 외부에선 온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기업의 매각은 주주에게는 투자와 회수의 문제지만, 직원에게는 자신의 일터가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감들이 잠시 살아났다 다시 꺼졌지만, 대백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고 단정하는 건 섣부르다. 오히려 이번 일은 대백의 가치를 더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성을 보여준다. 향토기업이라는 상징성이 투자계약서의 숫자를 대신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 인수에서 중요한 건 ‘누가 샀느냐’가 아니라 ‘사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누가 어떻게 자금을 투입하고, 어떤 사업 모델을 만들며, 장기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낼 것인지가 분명히 확인돼야 한다.
이번 거래에서도 정작 거래를 멈춰세운 건 거창한 사업계획이 아니라 70억원의 중도금이었다. 기업의 미래는 자금력과 실행력, 뚜렷한 인사이트가 더해져야 결정된다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원칙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대백 측에도 숙제가 남는다. 단순히 새 매수자를 찾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어떤 사업을 할 수 있는 투자자인지, 거래를 끝까지 이행할 능력이 있는지, 인수 이후 대백이라는 기업을 어떻게 지속시켜 나갈 것인지까지 더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