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의 KAI 생산공장에 있는 무인기 AAP-150(앞)과 유인 전투기 F-16.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전투용 드론 개발의 흐름이 '저가·대량 투입' 중심으로 옮겨가는 분위기지만, 고성능 무인기의 중요성 또한 전장에서 간과하기 어렵다. 중소규모 방산기업들이 저가형 드론 생산을 주도한다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같은 대형 방산 업체는 고성능 무인기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천에 위치한 KAI 본사에서 확인한 다목적 군사용 무인기 'AAP(Adaptable Aerial Platform)-150'은 국방부가 강조하고 있는 유·무인 복합체계의 핵심 전력으로, 저가형 자폭 드론과 달리 고성능·고속 기동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KAI 측 관계자는 "요즘 화두인 '샤헤드-136'(시속 150㎞), '샤헤드-238'(시속 600㎞)보다도 빠르다"며 "이는 국내 무인기 중 최고 수준"이라고 AAP-150을 설명했다.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로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항공부문, 삼성항공이 통합돼 출범한 KAI는 그간 유인기 중심으로 성장해온 기업이다. 기본 훈련기 'KT-1'(1991년)과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2002년)을 시작으로, 이를 기반으로 한 경공격기 'FA-50'(2011년), 소형무장헬기 'LAH'(2019년), 최근에는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2022년)까지 개발하며 국내 유인 항공전력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다.
경남 사천 KAI 무인기 생산공장에서 다목적 군사용 무인기 ‘AAP-150’이 점검 중이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유인기 중심에서 무인기에 1000억 투자
그렇다고 무인기를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인기 산업 태동기였던 1991년 제작한 RQ-101 '송골매'는 2001년부터 본격 양산·전력화되며 K-무인기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무인기사업팀 연구원 A씨는 "2000년대 초 미군의 무인전투기 개념실증 사업을 보면서 'F-35 이후 유인기 시대가 저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2010년대 들어서 미 육군이 MQ-1C '그레이 이글'과 AH-64E '아파치' 간 유·무인 복합체계를 공개하면서 우리도 그 영향으로 LAH 기반 유·무인 복합체계를 준비하는 등 조짐은 조금씩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오랜 기간 KAI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유인기에 있었다. 흐름이 바뀐 것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다. KAI는 2024년 차세대 공중전투체계 핵심기술 개발에 1025억원을 투자했다. 무인전투기 개념연구와 자율비행 실증, 인공지능(AI) 파일럿 편대 운용제어, 데이터링크 통합 등 유·무인 복합체계 기술확보를 위한 것으로, 이는 KAI 출범 이후 역대 단일사업 최고 투자금액이다. A씨는 "예전 무인기사업팀은 인력 유지나 군단급 무인기 사업에 참여하는 정도였다"며 "지금은 말 그대로 무(無)에서 유(有)가 된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KAI의 유·무인 복합체계 ‘MUM-T’에서 후방에 배치될 유인 전투기 ‘KF-21’. photo KAI
고성능·저가 연동해 복합체계 구현
2024년부터 개발 중인 AAP-150은 속도 외에도 최대이륙중량 150㎏, 탑재중량 24㎏, 항속거리 600㎞ 등을 갖췄다. 크기도 길이 3.1m, 날개폭 2.2m로 저가 드론인 샤헤드-136(길이 3.5m, 날개폭 2.5m)보다 작은 편이다. 아음속 고속 비행이 가능해 기존 저속 소형 드론보다 생존력도 높다. KAI는 AAP-150의 임무로 AI 카메라를 이용한 정찰 및 타격, 기만(Decoy·소형 드론을 전투기로 오인하도록 적 레이더를 교란), 재밍(전자파 공격), 중계(최대 62대까지 통신망 연결) 등 다양한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외형은 동일하되 크기와 무게를 줄이고, 용도를 간소화한 저가형 소모성 드론 'AAP-25'도 있다. AAP-25는 동일하게 제트엔진이 적용된 고속형 드론이지만 AAP-150보다 크기가 20% 축소된 모델로, 최대이륙중량은 25㎏에 불과하다. 기만·통신 등 복합 임무를 수행하는 AAP-150과 달리 장비를 덜어내고 보다 단순한 타격·자폭형 임무에 특화된 저비용 드론이다. AAP-25의 가격은 수억원에 달하는 AAP-150에 비해 1억원 안팎에서 구현이 가능하다는 게 KAI 측 설명이다. 여기에 KAI가 자체투자로 개발 중인 AI 기술이 전송되어 상황에 따른 지능적 대응능력도 확보하였다.
그런데 취재진은 이날 현장에서 AAP-25를 볼 수 없었다. KAI의 '하이 앤 로 믹스(High and low mix)' 전략 때문이다. 고성능의 고가 드론은 KAI가 기존 기술력을 활용해 직접 개발하되, 저가형 드론이나 AI·데이터링크 같은 요소기술은 외부 스타트업이나 협력업체와 연계해 확보하는 정책이다. 실제로 KAI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펀진·젠젠AI·코난 등 AI 스타트업과 소형 드론 전문 기업 디브레인의 지분을 일부 매입했다. 2024년 11월에는 위성통신 기업 제노코의 경영권을 인수하기도 했다. KAI 측은 "이를 통해 AI 개발에 필수적인 데이터 축적과 실증도 병행할 수 있어, 대기업이 소형 드론 개발에서 겪는 한계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인기사업팀 연구원 B씨는 "우리의 강점은 유인기 개발 능력과 고속 비행체 기술,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유·무인 복합 및 군집 운용 체계 기술에 있다"면서도 "다만 최근 핵심으로 떠오른 소형 드론 양산 능력과 데이터링크 기술 경험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이미 트렌드로 자리 잡은 저가형 드론을 아예 외면할 수는 없다"며 "국내 드론 기술은 하드웨어 측면만 보면 이미 세계적 수준이기에, 앞으로는 AI와 소프트웨어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KAI는 궁극적으로 유·무인 복합체계 'MUM-T(Man-Unmanned Teaming)'의 완전한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MUM-T는 무인기를 전방에 배치한 후 선제침투시켜 정찰·기만·직접타격 등 고위험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후방의 유인기가 이를 통제하며 정밀 타격을 이어가는 개념이다. 이를 구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과 고가 전력을 직접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전장 인식과 타격이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데이터링크를 표준화해 유·무인기 간 정보 공유가 실시간으로 가능해 임무를 즉각 수정·재배분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그에 따라 기체가 개별로 운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지연이나 지휘 단절 문제를 줄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최전방에 소형·소모성 드론 'SUCA(Small Unmanned Collaborative Aircraft·전투기협업다목적무인항공기)', 그 뒤에 스텔스 무인전투기 'MUCCA(Medium Unmanned Combat Collaborative Combat Aircraft·전투기협업무인전투기)', 최후방에 유인기가 배치되는 구조다. SUCA는 가장 먼저 위협 지역의 통합방공체계(IADS)에 침투해 주요 위협을 탐지한 후 기만·타격한다. 이날 취재진이 확인했던 AAP-150 등 AAP 계열 기체도 SUCA에 포함된다. 1차로 전체 편대의 생존성이 보장되면 MUCCA가 필요에 따라 공대공 혹은 공대지 미사일 등을 발사해 적진 핵심 노드를 정밀 타격한다. MUCCA는 최대 시속 약 950㎞로 크기는 FA-50(길이 약 13m, 날개폭 약 9m)과 유사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유인기는 후방에서 이들 무인기를 통제하며 전체 작전을 지휘한다.
유인기가 무엇인지에 따라 복합체계의 운용 방식도 달라진다. KF-21, FA-50 등 공군 전투기가 지휘할 경우 작전 고도와 속도가 올라간다. 작전반경 역시 넓어진다. 이 경우 무인기는 전투기의 레이더 시야를 확장하거나 선제침투해 미사일 발사 등으로 적진 방공망을 교란·제압한다. 반대로 LAH 등 육군 헬기가 후방에 배치되면 저고도·험지에서의 근접전이 주가 된다. 무인기는 은폐한 적들의 지대공 위협을 사전 탐지하거나 근접항공지원(CAS)을 위한 레이저 표적 지시 역할을 주로 수행한다. LAH에 탑재될 자폭 드론 'ALE(Air-Launched Effects)'는 정찰 중 위협 식별 시 타격을 동시 수행할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드론 개발의 현실적 과제
KAI 연구진이 드론과 복합체계를 개발하면서 꼽은 가장 큰 딜레마는 '조종사에게 과중되는 업무부담'이다. 조종사는 마하 1(시속 약 1225㎞)에 이르는 고속 비행 상황에서 무인기까지 동시에 통제해야 하고, 무인기가 오폭할 경우 그 책임까지 져야 한다. 연구진 설명에 따르면 탐지·식별 단계는 무인기가 스스로 해낼 수 있지만, 타격은 오폭 위험 때문에 여전히 인간이 최종 결정해야 한다.
B씨는 "그래서 무인기에 자율성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자 하는데, 이는 안전성 문제로 허가될 확률이 낮다"며 "최근 연구진들은 조종사와 무인기의 역할 범위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장기적으로는 지휘부가 인간과 무인기의 중간에서 상황을 정리하고, 조종사는 최종 결정만 내리는 체계가 확립되기를 기대한다"며 "일단 모든 가능성을 믿고 단순 기동부터 AI를 활용한 타격까지 전방위적 기술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개발 못지않게 시장 확보가 업계에서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B씨는 "정부 지침에 따라 '50만 드론전사'를 양성하고 전면 국산화를 실현하려면 실 전장상황 활용 모델 등 시장을 개척해 수요를 확보한 후 양산에 돌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탄약·폭발물 관련 규제가 엄격해 기업 참여가 제한적이고, 기체 시험평가 기준이 경직돼 신속한 전력화가 어렵다"며 "기술 변화 속도에 맞게 빠르게 전력화를 허용한 후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선해 나가는 '진화적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진들은 결국 국내 드론 산업의 경쟁력이 개별 기업의 기술력이 아닌 생태계 전반의 결합에 달려 있다고 평가한다. KAI 측은 "해외 업체들은 이미 풍부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며 "국내 무인기 기술력은 이미 뛰어나지만, 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각자 강점을 결합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KAI도 국내 드론 생태계의 상생과 협업을 이끄는 역할에 동참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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