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버티는 창업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로에서 창업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막대한 자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청년 창업의 5년 생존율은 여전히 30%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 실패의 책임을 창업가 개인의 '간절함 부족'으로 치부하며 그들을 정서적 고립으로 내몰았습니다.
이에 이로운넷은 창업학 전문가 김종진 교수와 함께 '구조적 실패'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특집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개인의 영웅적 분투가 아닌 팀 기반의 협력, 학습 중심의 평가 체계, 지역과 공공이 결합된 생태계 구축을 통해 '함께 만드는 창업 경제'의 비전을 제시합니다. 고립된 청년 창업가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생적 활력을 어떻게 불어넣을 것인지, 매주 목요일 그 실천적 해법을 공유합니다. 편집자
돈을 버는 창업에서 가치를 만드는 창업으로
창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창업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2000년대 벤처 붐 이후 한국 사회에 깊이 각인된 명제다. 유니콘 기업의 신화, IPO 성공 스토리, 엑시트로 수백억을 벌어들인 창업가들의 이야기가 청년들을 창업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창업 기업의 5년 생존율은 30%대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청년 창업가들은 극심한 경쟁과 자본 압박 속에서 좌절을 경험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과연 '빠른 성장과 높은 수익'만이 창업의 유일한 목표인가? 기후위기, 불평등 심화, 지역 소멸, 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 창업은 단지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에 그쳐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등장한 것이 사회연대경제와 청년창업의 만남이다. 사회연대경제란 이윤 극대화가 아닌 사회적 가치 실현을 우선으로 하는 경제 활동을 의미한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소셜벤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언뜻 보면 '수익성'을 추구하는 창업과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연대경제는 서로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이 둘은 놀라울 만큼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청년 창업가에게는 더 지속가능한 모델을 제시한다.
구조적 유사성: 닮은꼴의 발견
청년창업과 사회연대경제는 본질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째, 성공적인 스타트업은 기술, 마케팅, 영업, 재무 등 다양한 역량을 가진 팀원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다. 사회연대경제 조직 역시 민주적 의사결정과 협력을 기본 원리로 한다. 협동조합의 1인 1표 원칙, 사회적기업의 이해관계자 참여 구조는 모두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둘째, '장기적 관점'을 견지한다. 단기 수익에 집착하는 창업은 대부분 실패한다. 시장을 이해하고, 제품을 개선하며, 고객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연대경제 역시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적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빈곤 퇴치, 환경 보호, 지역 재생은 분기별 실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셋째, '공동 의사결정'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성공하는 스타트업들을 보면 수직적 위계보다는 수평적 협업, 독단적 결정보다는 데이터 기반 집단 의사결정이 일반화되어 있다. 애자일 방법론, 스크럼, OKR 등 현대 스타트업의 경영 기법들은 모두 구성원의 참여와 투명성을 강조한다. 이는 사회연대경제 조직의 민주적 거버넌스와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이다.
이러한 구조적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 21세기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천재성보다 집단의 지혜가, 단기 성과보다 장기 지속가능성이, 독점적 통제보다 개방적 협력이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양쪽 모두 깨달은 것이다.
생존 가능성이 높은 이유: 새로운 경쟁 우위
사회연대경제 모델을 택한 청년 창업이 실제로 더 높은 생존율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공공조달 시장과의 연계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에 우선 구매 기회를 제공한다. 사회적기업 제품 우선구매제도, 혁신제품 지정제도, 사회성과 연계채권(SIB) 등 다양한 제도적 지원이 존재한다. 일반 스타트업이 치열한 경쟁 입찰로 공공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것과 달리, 사회연대경제 기업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첫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특히 초기 생존이 중요한 청년 창업가에게 결정적 도움이 된다.
둘째, ESG 투자와 임팩트 투자의 급성장이다.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규모는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임팩트 투자 전문 펀드가 속속 등장하고, 주요 벤처캐피탈들도 임팩트 투자 부문을 신설하고 있다. 사회 문제 해결과 수익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셜벤처는 이러한 자본의 새로운 수혜자가 되고 있다. 단순히 성장성만 보는 전통적 VC 투자와 달리, 임팩트 투자는 사회적 가치 창출을 함께 평가하기 때문에 더 인내심 있는 자본이 유입된다.
셋째, 시장 변동성에 대한 완충 효과다. 일반 스타트업은 경기 침체기에 극도로 취약하다. 소비가 위축되고 투자가 마르면 바로 생존 위기에 직면한다. 반면 사회연대경제 기업은 다층적 수익 구조를 가진다. 시장 판매뿐 아니라 공공 용역, 기부금, 정부 지원사업 등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돌봄, 교육, 환경 등 필수적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경기 변동에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다.
실제 사례를 보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많은 스타트업이 문을 닫았지만, 지역 먹거리를 연결하는 협동조합, 비대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들은 오히려 성장했다. 사회적 필요가 명확한 비즈니스는 위기 상황에서도 수요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적합한 창업 모델: 가치와 수익의 양립
청년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70% 이상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적정한 소득을 얻기를 원한다. 이러한 가치관은 사회연대경제 모델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사회연대경제 기반 창업은 '혼자 성공'에서 '함께 지속'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협동조합 모델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다. 이익을 독점하지 않고 공정하게 분배한다. 경쟁자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동료 조직과 협력하며 생태계를 키운다. 이는 과도한 경쟁과 성과 압박에 지친 청년들에게 더 건강한 창업 문화를 제시한다.
또한 '단기 수익'에서 '장기 가치'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벤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빠른 성장 압박에 시달린다. 3년 안에 빠른 성장을 달성하지 못하면 실패로 간주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창업가들이 번아웃을 경험한다. 반면 사회연대경제 모델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 매년 꾸준히 성장하며, 구성원이 행복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된다.
가치를 만드는 창업이 살아남는다
창업 생태계의 미래는 '가치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기후위기, 인구 구조 변화, 기술 격차 등 21세기의 거대한 도전 과제들은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한 혁신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나온다.
청년 창업가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창업하는가? 단지 부자가 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인가? 이 둘이 반드시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연대경제는 두 가치를 모두 추구할 수 있는 길을 보여준다.
물론 사회연대경제가 만능은 아니다. 명확한 사업 모델 없이 좋은 의도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돈만 좇는 창업보다 가치를 만드는 창업이 더 오래 살아남고,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창업가 본인에게도 더 큰 만족을 준다는 사실이다.
청년창업과 사회연대경제의 만남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면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구축하려는 청년들이야말로 사회연대경제의 미래이자, 창업 생태계의 희망이다.
김종진 교수
김종진 | 건국대학교 교수
창업학 박사 · 창업지원본부 메이커스페이스센터/혁신공유대학 에코스마트시티융합전공 교수
필자 김종진 교수는 창업학 박사로 20년 이상 창업 지원 현장에서 이론과 실무를 축적해 온 전문가이다. 현재 건국대학교에서 메이커교육과 창업교육, 지산학연 협력을 수행하며, 한국벤처창업학회 이사, 한국산학협력정책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과거 경기콘텐츠진흥원 이사, 한국창업진흥협회 부회장, 한국기술거래사회 이사, 서울창업포럼 위원, 동국대학교 외래교수 등을 역임했다. 학회에서 10여년간의 활발한 연구 활동과 더불어, 직접 창업과 기업 경영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 기반 역량을 바탕으로 학생·소상공인·사회연대경제·여성·청년·시니어 창업 등 다양한 영역의 창업 지원을 실천해 왔다.
김종진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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