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통영 문화공간 ‘사사로운 덕담’
아쉬움 크지만, 또 다른 공간 생겨날 것
‘힙(hip)하다’는 건 남다른 개성과 감각을 지녔다는 뜻이다. 지역에서 힙한 공간이란 단순히 멋진 인테리어나 유행을 좇는 장소가 아니라, 자기만의 취향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곳이다.
“통영에 힙한 사람들 여기 다 모였네.”
지난달 30일 늦은 밤 통제영주차장에서 도로 바로 건너면 있는 통영 위스키바 ‘사사로운 덕담’에 들어서면서 든 생각이다.
이날 분위기는 유달리 왁자했다. 내부는 단골과 주인 지인으로 가득 차 앉기보다 서 있는 게 편할 정도였다. 주인은 술만 내놓을 뿐 안주는 각자 가져왔다. 평소에는 가득 차 있을 술 찬장이 거의 비었다. 냉장고에도 술이 거의 사라졌다. 이날은 사사로운 덕담 마지막 영업일이었다.
김호진(43) 사사로운 덕담 대표는 바에서 주문한 술을 준비하느라, 찾아온 손님들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김 대표는 ‘통영이 낳은 걸출한’ 공연기획자다. 굳이 따옴표로 표시한 이유는 앞으로 더 ‘걸출’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영 동피랑 출신으로 서울에서 IT 관련 회사를 다니던 김 대표는 2010년 KT&G ‘상상마당’ 기획자 교육 참가를 계기로 공연기획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3년 튜나레이블을 설립하고, 그만의 색채를 담은 공연 기획으로 홍대 음악씬에서 주목받았다.
2021년 말 고향으로 돌아온 김 대표가 기획한 첫 공연이 2022년 8월 열린 ‘2022 통영 사운즈 쇼케이스(일명 통사쇼)’다. 통영이 거점이 되는 공연, 지역 음악가 발굴·소개가 목적이었다. 당시 ‘통영에서 누가 이런 공연을 기획했지’하고 무척 궁금해하며 찾았던 기억이 있다.
‘통사쇼’는 지난해까지 이어지며 공연과 함께 포럼, 전시까지 함께하는 행사로 발전했다. 2022년 김 대표는 1935년 지어진 적산가옥을 그대로 살려 사사로운 덕담을 열었다.
사사로운 덕담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위스키바이면서도 지역 문화공간이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공연을 봤고, 누군가는 작가를 만났고, 누군가는 낯선 사람과 취향을 나눴다. 지역 예술가들이 모였고, 여행자들이 들렀고, 지역 이야기가 오갔다. 일찍 불 꺼진 관광지 어두운 거리를 밝히던 유일한 불빛이었다.
잠시 후 사사로운 덕담 마지막 영업을 기념하는 밴드 공연이 열렸다. 단골 손님들이 이날을 위해 한 달 전에 구성한 밴드다. 한때 직장인 밴드에서 활동하던 김 대표도 오랜만에 베이스를 잡았다. 연주 신났고, 분위기는 잔뜩 고취되었다.
“통영에 힙한 사람들 여기 다 모였네.”
한 10년 전 통영 강구안 뒷골목에 있던 ‘커피로스터즈 수다’를 처음 찾았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수다 역시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지역 청년이 취향을 나누는 문화공간이었다. 수다는 사라졌지만, 그 정체성은 ‘삼문당 커피컴퍼니’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사사로운 덕담은 사라지지만, 김 대표 역시 여전히 통영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공연 기획할 예정이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 어딘가에서, 새로운 문화 공간의 불을 켤 것이다. 아니, 이미 켜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지역마다 소소하게 밝혀지는 이 불빛을 잘 지켜내 주면 좋겠다. 취향을 나눌 만한 문화의 작은 불빛들이 살아 있는 한 지역은 사라지지 않으며, 설사 넘어지더라도 다시 살아진다.
/이서후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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