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hatGPT
퇴직연금 시장 경쟁이 전 금융권으로 확산되면서 은행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적립금 규모에서는 여전히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익률과 운용 편의성을 앞세운 증권사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긴장감이 감지된다. 은행들은 자산관리(WM) 역량과 장기 안정성을 강조하며 방어에 나섰으나 수익률 경쟁력 확보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1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BNK경남·BNK부산·IBK기업·NH농협·iM뱅크·광주·산업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총 264조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 260조원에서 약 4조원 가량 증가한 셈이다.
적립금 규모에선 신한은행이 1위다. 전 금융권을 통틀어도 1위다. 1분기 말 기준 신한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은 54조7391억원이다. 지난해 말 대비로는 8648억원 증가했다.
성장세에선 하나은행이 두각을 드러냈다. 하나은행의 적립금은 지난해 말 대비 9224억원 늘어나며 가장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1분기 말 기준 적립금 총액은 49조3037억원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대비 8974억원 늘어나면서 49조3513억원의 적립금을 보유했다. 우리은행은 31조7123억원을 기록했다.
연금 시장 파고드는 증권사들…통합 WM으로 맞서는 은행
퇴직연금 시장은 최근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가입자들의 시선은 확정급여(DB)형 중심에서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옮겨가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에서 IRP 비중은 40% 수준까지 늘어났다.
여기에 지난해 실물이전 제도 도입으로 금융사 간 이전이 간편해지면서 이동 현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퇴직연금을 향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직접 운용 여부와 수익률에 따라 사업자를 바꾸는 흐름이 주가 됐다는 평가다.
은행권에는 이전보다 훨씬 직접적인 경쟁 압력이 가해지는 모습이다. 여전히 규모에서는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지속적인 성장 측면에선 불안감이 감지된다. 원리금보장형 중심의 보수적 운용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 전략이 수익률 경쟁에서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연금 셈법을 더욱 꼼꼼히 따지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규모 확대만으로는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평가다.
증권업계는 수익률과 기동성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공격적인 운용에 기반한 수익률과 함께 실시간 ETF 매매로 변동성 장세에서 상대적으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이에 은행권은 전략의 축을 전문성과 관리로 세웠다. 단기 매매 중심의 투자보다 장기 자산 배분을 강조하면서 TDF와 AI 기반 포트폴리오 관리 서비스를 전면에 배치했다. 기술적 한계를 보완하기보다 자산관리 전문성으로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은행권의 상품 전략도 이 같은 판단과 보폭을 맞춘다. ETF와 TDF 라인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실적배당형 상품 비중을 높이며 수익률 개선을 노리고 있다. 상품권 충원과 함께 고객별 위험 성향에 맞춘 포트폴리오 설계와 장기 운용 전략을 결합해 전문 관리 모델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이외에도 △기업금융 연계 영업 △시니어 케어 서비스 △WM 서비스 결합 등으로 고객 이탈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부산은행·iM뱅크, 보수적 운용 한계 탈피…은행권 수익률 고민 깊어져
반면 더 이상 수익률에서 안주할 수 없다는 지적도 고개를 들었다. 그간 은행권은 적립금 규모에 기반한 안정적 성장에 주력했다. 안정성에 집중해 증권업계 대비 공격적인 운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퇴직연금 시장의 판도가 빠르게 바뀌면서 은행권도 안정성을 전제로 한 수익률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최근 일부 지방은행에서 일궈낸 수익률은 은행권의 운용 역량이 구조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모습이다. BNK부산은행은 1분기 말 기준 IRP 부문 1년 수익률 30.32%를 달성했다. iM뱅크도 같은 기준 28.5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융권은 이를 고무적인 결과로 보고 있다. 은행권 전반에서 더욱 기민하고 탄력적인 운용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근거다.
다만 시중은행이 지방은행의 운용 전략을 동일하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중은행은 적립금이 수십조원에 달해 보수적인 운용이 불가피한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은 유연한 운용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기가 수월하다는 설명이다. BNK부산은행과 iM뱅크의 적립금 합산액은 각각 3조5982억원, 2조9819억원이다. 시중은행과 10배 수준 차이나는 규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연금 운용에 긍정적인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라며 "유의미한 수치"라고 평가했다. 이어 "지방은행과 시중은행의 수익률 차이는 모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수익률은 숫자로 나타나다 보니 가입자들 입장에선 직관적인 비교 지표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산운용 역량을 높여 안정성을 겸비한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은행권의 공통된 고민이다. 증권업계의 추격세와 함께 은행권 내에서도 수익률 경쟁이 뚜렷하다. 장기 안정성은 여전히 유효한 경쟁 요소지만 일정 수준 수익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연금 시장 전반의 목소리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연금 시장이 커지는 만큼 투자자들이 원하는 기본적 수익률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며 "IRP형 이외에 DC, DB형에서도 어느 정도 수익률이 올라가는 게 이상적"이라고 귀띔했다. 이어 "안정적 고수익이라는 목표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며 "다만 시장이 확대된 만큼 은행권 전반적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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