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찾은 광주송정역에는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를 적극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박지우기자
광주 군공항 인근에 위치한 1호선 공항역. 박지우 기자
이달 10일 오전 도착한 KTX 광주송정역 일대는 거리를 걷는 사람 한 명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역 근처 상권인 1913송정역시장 내에도 식당과 상점 어디든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연신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 딱 한 곳 있었으니 바로 일대 주택과 토지를 거래하는 부동산 중개업소였다.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 부지로 확정된 광주 군공항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떨어진 이곳 금호윤부동산에는 매수 문의 전화와 방문객의 발길이 집중되고 있었다. 실제 기자가 이곳에 머무른 약 30분간 송정동 단독주택을 사려는 매수자와 토지 매각을 묻는 매도자가 번갈아가며 가게를 찾았다.
윤병하 금호윤부동산 대표는 “지역 상권이 침체돼 그동안 부동산 손님도 거의 없었는데 군공항 부지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지로 확정된 6일 이후부터 주택이나 새 건물을 올릴 땅을 찾는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방문하는 사람들은 주로 지역 주민이지만 전화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걸려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 바로 앞 핵심 상업지역임에도 그동안 많이 슬럼화돼 있었던 만큼 이번 반도체 팹 조성과 광주송정역세권 개발이 함께 맞물려 전반적인 지역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추진되면서 지역 경제 전반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남권에 반도체 팹 구축 등 총 800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이달 6일 광주 군공항 부지를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지로 선정했다. 인구 유출과 미분양 등으로 위축됐던 호남이 산업 발전과 국토균형발전의 새로운 축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지역 내외부적으로 부풀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역시 부동산이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광주 군공항에서 영산강 건너편에 자리한 서구 서창동에서는 이달 6일 이후 매도자의 절반 이상이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거래가 잇따라 무산됐다. 가격 상승을 기대한 매도자들이 계약을 취소하면서 4~5건 이상의 거래가 파기됐다는 것이다. 서창동의 A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곳은 농지가 많은데 발표 직후 매도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급격히 올렸다”며 “매도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기다려보자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계약 직전까지 갔던 거래들도 취소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군공항 인근 부지 모습. 박지우 기자
침체됐던 주택 시장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광주는 올해 5월 기준 민간 아파트 미분양이 총 1259가구로 지난해 말(1400가구) 대비 줄어들고는 있었지만 공급과잉에 대한 부담이 여전했다. 하지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인구 유입 기대감이 커지면서 시장 분위기는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일례로 반도체 클러스터의 배후 주거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첨단3지구의 경우 분양권 거래가 늘어나며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이 자취를 감췄다. 올해 10월 입주 예정인 장성군 ‘힐스테이트첨단센트럴’은 6월에만 65건의 분양권 거래가 이뤄졌다. 이는 직전 달 30건의 거래가 이뤄졌던 것과 비교해 2배 이상 거래가 늘어난 것이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관련 소식이 전해진 직후에는 부동산에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손님이 몰렸었다”며 “그동안 팔리지 않아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었던 분양권들이 상당수 소진됐고 매도자들이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거래 가능한 물건도 급격히 줄었다”고 말했다.
첨단3지구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첨단제일풍경채그랑포레 전경. 박지우 기자
북구 임동 챔피언스시티 조성 부지 전경. 박지우 기자
광주 지역 아파트 매물이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부동산 빅데이터 기업 아실에 따르면 이날 광주 아파트 매물은 2만 5968건으로 집계돼 약 4일 만에 970건이 사라졌다. 정부가 투기 수요와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14일부터 2028년 7월 13일까지 2년간 군공항 부지와 인근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실수요자 중심의 관심은 이어질 것이라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인근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개발 사업들도 반도체 클러스터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옛 광주광역시 전방·일신방직 부지에 들어서는 복합개발 사업인 ‘챔피언스시티(4315가구)’는 올해 하반기 분양을 앞두고 있다. 광천터미널 복합화 사업도 최근 교통영향평가를 통과하는 등 2030년께 완공을 목표로 인허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송정역 KTX 투자선도지구 개발 사업 또한 이달 6일 보상 계획을 공고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진희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특임교수는 “그동안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국 사람은 산업과 일자리를 따라 움직였다”며 “기업과 일자리·인재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성장 축을 만드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각종 인허가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특별법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 역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에서도 대규모 인력 수요가 발생해 지역 대학과 산학 협력 등을 통한 인재 양성 체계를 함께 구축해야 사업이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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