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의 독선...이번 선거가 외눈박이 정치의 동굴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어야
[윤영호 칼럼] 대한민국 정치가 ‘전설 속의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의 성채(城砦)가 되어가고 있다. 하나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니 거리감은 상실됐고, 입체적 진실은 평면적 선동에 자리를 내주었다. 상대를 악(惡)으로 규정해야만 나의 선(善)이 증명되는 이 지독한 양극화의 늪에서 국민은 정치권이 그어 놓은 극단적 이념의 참호 속에 갇혀버렸다.
코 앞으로 다가온 6·3 지방선거는 단순히 지역 일꾼을 선출하는 행정 절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이 ‘외눈박이 정치’의 동굴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묻는 시험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여전히 진영의 구호에만 반응한다면 정치권은 계속 같은 방식을 반복할 것이다. 반대로 유권자가 냉정하게 후보의 능력과 비전을 따진다면 정치의 언어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정치 지형은 좌우의 건강한 날개짓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증오를 동력 삼아 굴러가는 적대적 공생의 수레바퀴다. 보수와 진보라는 전통적 가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갈라치기’라는 저열한 통치 기술만 남았다.
대립구도를 만들어 표를 얻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승리를 가져다줄지 모르나, 국가라는 공동체의 근간을 뿌리째 썩게 한다. 정치권이 던져주는 자극적인 언어에 매몰되어 상대 진영을 섬멸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사이, 정작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시대적 파고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세계는 거대한 격랑 속에서 패권전쟁이 일상이 되고 있다. 공급망은 블록화 되고, 자유무역의 규칙은 무력화되었다. 동시에 인공지능(AI)은 산업과 노동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문명사적 전환을 일으키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국가는 생존 전략을 고민하기에도 바쁘다.
에너지 안보가 무너지면 국민의 삶 전체가 도미노처럼 쓰러질 위기
중동의 화약고가 터지며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당한 작금의 현실은 공포에 가깝다. 원유 수입의 동맥이 끊기며 치솟는 에너지 가격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국가 기간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넘어, 당장 서민들의 냉난방비와 바구니 물가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만약 호르므즈 해협이 통관료를 받게 되면 불법적 해상톨게이트가 되어 여타 모든 해협에 비관적인 선례를 낳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에너지 안보가 무너지면 국민의 삶 전체가 도미노처럼 쓰러질 위기임에도, 우리 정치는 어떤가. 외눈박이 정치가 만든 가짜 전선(戰線)에 눈이 멀어, 정작 국가라는 배가 거친 파도 속 어디로 흘러가는지 살피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지방선거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지역 소멸’이라는 현실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은 지방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광역 협력과 메가시티 전략 같은 과감한 행정 혁신이 필요하다. 유권자가 깨어있지 않으면 지방자치는 중앙정치의 대리전장으로 전락하고, 지역 주민의 삶은 정당의 전리품으로 전락할 뿐이다.
정치가 바뀌기를 기대한다면 먼저 유권자가 변해야 한다. 정치가 국민을 계몽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국민이 정치를 계몽해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주장이라도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민주주의는 성숙한다. 진영의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확증편향적 구호 대신, 정책의 실질적 내용과 후보의 실체적 인격을 따져 묻는 유권자가 늘어날 때 정치의 수준도 함께 올라갈 수 있다.
한 눈을 감고 세상을 보면 편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눈을 뜨면 불편한 진실이 함께 보인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자세다. 비판적 지지는 내 편에게도 책임을 묻는 태도이며, 민주주의의 가장 건강한 에너지다.
유권자의 힘은 분노의 크기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에서 나오는 법
6·3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행사할 한 표는 단순한 정치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증오의 정치’를 거부하고 ‘책임의 정치’를 요구하는 선언이어야 한다. 갈라치기의 언어가 아니라 통합의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 지역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능력을 실질적으로 가진 후보,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공사 구분 능력을 갖춘 후보를 냉정하게 가려내야 한다.
말의 질서가 무너지면 정책은 길을 잃는다. 여기서의 ‘민주’와 저기서의 ‘민주’가 다르고, 여기서의 ‘공정’과 저기서의 ‘공정’이 충돌한다. 개념이 흔들리면 행정은 사사로운 이해에 휘둘리고, 시민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혼란에 빠진다. 결국 피해는 지역 공동체가 떠안는다. 분열의 언어는 잠시 통쾌할지 모르나, 도로 하나, 학교 하나, 복지 하나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
유권자의 힘은 분노의 크기가 아니라 사유의 깊이에서 나온다. 옛사람들이 곡식의 양을 잴 때 고봉으로 쌓인 부분을 깎아내 정확한 양을 재던 도구(평미래)가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정확한 팩트체크와 개념이해를 위해 모호함의 거품을 제거하는 저울이다.
후보가 쏟아내는 감정적 호소와 자극적 공약의 고봉을 냉정하게 덜어내는 판단의 저울 말이다. 남는 것이 무엇인지, 재원은 있는지, 법적 권한은 갖추었는지, 실행의 경로는 분명한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정치는 결국 사회의 거울이다. 정치 수준이 낮다면 그 정치가 가능하도록 방치한 국민의 책임도 작지 않다.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이 외눈박이 정치의 동굴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균형 잡힌 안목을 가진 시민만이 눈먼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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