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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칼럼] 이순신 백의종군 형상의 오류와 진실

요즈음 유행하는 AI에 물어도 이순신이 죄인인 병졸 신분이 되어 관복이 아닌 평민의 흰옷을 입었고, 걸어서 다녔다고 대답한다. 지난 3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연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시회가...

[칼럼] 이순신 백의종군 형상의 오류와 진실

백의종군의 참모습을 구현하고 복원하자

공창석 이순신 백의종군 숭모회장, (전)경남 행정부지사, 매경안전환경 연구원장(국제뉴스DB)

이순신의 백의종군, 오늘날 고난 극복과 나라 사랑의 상징이 되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잘못 알고 있다. 백의종군(白衣從軍)에서 '백의(白衣)'를 '흰옷'으로 직역하여 장군에서 병졸로 떨어진 초라한 흰옷 차림의 모습이라 한다. 요즈음 유행하는 AI에 물어도 이순신이 죄인인 병졸 신분이 되어 관복이 아닌 평민의 흰옷을 입었고, 걸어서 다녔다고 대답한다.

지난 3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연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시회가 막을 내렸다. 유물, 영상, 체험 등이 어우러져 성황을 이루었다는데, 필자는 아쉬움과 불만이 컸었다. 먼저 아쉬움은 백의종군이 눈에 띄지 않은 거다. 백의종군의 상징성에 비추어 얼마간이나마 전시 공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없었다.

(사진제공=이순신 백의종군 숭모회)(그림 1) 체포되는 이순신

다음 불만은 값이 3만 5000원이나 하는 전시회 도록이다. 여기서도 백의종군은 284쪽에 실린 흰옷 차림으로 포승줄에 묶인 작은 그림 하나뿐이다(그림 1). 이 그림은 유명한 만화가 김용환이 그린 것인데, 사실과 다르다. 조선시대는 죄인의 체포 방식이 양반과 일반 백성이 달랐다.

특히, 정3품 이상의 당상관은 예우와 체면을 고려하여 포승줄로 포박하거나 목에 칼을 씌우지 않는다. 흰옷의 평민 차림도 잘못이다. 체포 당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다. 임금의 명령을 어긴 죄로 체포되지만, 죄가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다. 따라서 계급장을 뗀 무관 차림으로 보는 게 이치에 맞다.

또한 도록에는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총탄을 맞고 죽어가는 그림이 실려있다. 이 역시 만화가 김용환이 그렸는데, 어처구니가 없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순신의 복장이 갑옷 입은 삼도수군통제사 차림이 아니고, 일반 사대부의 흰옷 도포 차림이어서 그렇다.

이것은 노량해전을 왜곡시키는 중차대한 잘못이다.

필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두 그림을 도록에 실은 잘못을 인정하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왜 이런 잘못이 자행될까? 필자는 아산 현충사 본전(사당)의 좌우 벽에 걸려있는 '이순신 십경도(十景圖)' 벽화가 잘못됨의 시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십경도는 이순신의 일생을 소년 시절, 무과 급제, 거북선 건조, 백의종군, 노량해전 등 10개 장면으로 그린 것이다. 1972년 현충사를 성역화로 정비할 때, 한국기자협회가 기증하고, 서울대 미대 교수들이 공동으로 그렸다고 한다.

현충사는 국가(국가유산청)가 직접 관리한다. 십경도는 이순신의 영정을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현충사의 본전 내부의 벽화다. 따라서 이것은 영정과 함께 국가가 공식으로 인정하는 그림이라고 할 것이다.

(사진제공=이순신 백의종군 숭모회) (그림 2) 함거로 압송되는 이순신

그러나 10개 그림 중 3개가 크게 잘못되어서 문제다. 즉 이순신의 체포 압송, 거북선 건조, 한산도 통제영 시기의 그림이다. 특히 이순신이 목에 칼을 쓰고 함거에 실려 압송되는 그림(그림2)은 왜곡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왜곡인가? 당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종2품 당상관이었다. 당상관은 앞에서 언급한 바처럼 포박하거나 목에 칼을 씌우지 않는다. 하물며 그럴진대 함거로 압송하다니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압송하는 거리와 일정으로 검증할 수 있다.

이순신은 2월 26일 여수 좌수영에서 체포되고 3월 4일 한성의 의금부에 투옥된다. 압송에 7일이 걸렸고, 당시 여수와 한성 간의 거리가 약 420km이므로 하루 평균 약 60km 이상을 이동한 셈이다. 이것은 도보로는 불가하다. 빠른 역마를 번갈아 타고 상당한 속도로 이동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순신을 함거로 압송하는 벽화는 근거 없는 상상화와 같다.

또한 십경도의 거북선 건조와 한산도 통제영 시기의 그림도 오류가 심하다. 두 그림에서 이순신은 무관 복장이 아니고 사대부의 도포 차림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처럼 문관을 우대하고 무관을 낮추어보는 의식이 반영된 탓일 수 있다.

현충사 십경도 벽화는 그려진 지 50년이 넘었다. 이순신을 연구하는 학자와 전문가치고 이곳을 다녀가지 않은 자가 없을 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잘못을 지적하는 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TV 드라마, 영화, 만화 등은 이를 준거함으로써, 오류와 왜곡이 진짜로 여겨졌다.

이에는 지자체의 '백의종군 걷기대회', '백의종군 마라톤대회' 등의 행사와 홍보도 한몫한다. 뿐만 아니고 이름난 학자가 펴낸 이순신 전문 서적도 이를 그대로 따르는 실정이다.

(사진제공=이순신 백의종군 숭모회) (그림 3) 이순신의 백의종군 융복(戎服) 차림

지난해 9월 백의종군 모습을 최초로 고증한 "이순신 백의종군 형상화 연구"가 세상에 나왔다. '(사)이순신 백의종군 숭모회'가 순천향대 이순신 연구소에 용역 의뢰한 성과물이다. 고증에 의하면 백의종군의 모습은 '흰옷 입은 평민 차림'이 아니고, '남색 철릭의 융복(戎服) 차림'(그림 3)이다.

당시 이순신에게 내려진 백의종군 명령은 직책 없이 도원수 권율을 도우라는 처벌이다. 이 처벌에는 앞으로 공을 세우면 보상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이순신은 무과에 급제한 무관, 당상관을 역임한 무관의 신분으로 백의종군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순신은 무관 복장을 하고 수행원(5-6명)과 함께 언제나 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전투마를 비롯해 말 4필을 거느리고, 걷거나 말을 타고 다녔다. 결코 병졸이나 평민 신분이 아니었고, 사대부의 도포나 평민의 흰옷을 입고 다니지 않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백의종군의 오류와 왜곡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현충사 본전의 잘못된 벽화는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 국가가 나서서 고쳐야 한다. 물론 지자체의 오도된 벽화와 홍보물 등도 시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백의종군의 참모습이 올곧게 구현되고 복원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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