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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칼럼] '손절'의 시대, 우리는 왜 더 외로워졌을까

최근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직장에서 힘든 동료를 차단하고, 오래된 친구의 연락처를 지우고, 가족 단체 대화방까지 나왔다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마음이 후련했다고 한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아도 되고, 신경 쓸 일도 줄어든 것 같았다.

[칼럼] '손절'의 시대, 우리는 왜 더 외로워졌을까

행복을 여는 창

박지현 서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안 보면 되죠. 어차피 의미 없는 관계잖아요.”

최근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직장에서 힘든 동료를 차단하고, 오래된 친구의 연락처를 지우고, 가족 단체 대화방까지 나왔다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마음이 후련했다고 한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아도 되고, 신경 쓸 일도 줄어든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찾아왔다.

“편해지긴 했는데, 이상하게 더 외로워졌어요.”

요즘 ‘손절’, ‘인간관계 디톡스’, ‘인간 다이어트’, ‘연락 끊기’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는 과감히 관계를 끊으라는 조언도 흔하다. 물론 반복되는 폭언이나 폭력,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은 꼭 필요한 선택이다. 그러나 모든 불편한 관계를 끊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경계(Boundary)​’와 ‘관계 회피(Avoidance)​’를 구분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건강한 경계란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지키는 능력이다. 무리한 부탁에는 “이번에는 어렵습니다.“라고 말하고, 상처를 받았다면 솔직하게 표현하며, 필요하면 잠시 거리를 둘 수도 있다.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반면 관계 회피는 갈등을 견디기 어려워 관계를 끊어 버리는 방식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손절‘에 익숙해졌을까?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를 ‘액체현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액체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듯 현대인의 삶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직장과 거주지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오래 유지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쉽게 맺고 쉽게 끝나는 형태로 변했다. 스마트폰에서는 친구를 추가하는 것만큼 차단도 쉽고, 메신저에서는 대화방을 나가기만 하면 관계가 단절된다. 관계를 회복하기보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더 쉬운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부당한 관계를 무조건 참고 견디기보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고,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에서 벗어날 용기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지키는 것과 관계를 회피하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머레이 보웬은 건강한 관계를 설명하며 ‘자아분화’​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자아분화란 상대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잃지 않는 능력이다. 갈등이 생겼다고 상대에게 휘둘리지도, 그렇다고 관계를 쉽게 끊지도 않는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관계를 이어 가는 힘이다.

반대로 보웬은 갈등이 생길 때 관계를 끊어 버리는 행동을 ‘정서적 단절’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을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는 방식이다. 물론 단절이 필요한 관계도 있다. 하지만 갈등이 생길 때마다 관계를 끊는 것이 반복된다면,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다른 관계에서도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내담자는 “좋은 관계보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처 없는 관계는 존재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없느냐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혹시 요즘 누군가를 ‘손절’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잠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두려는 것일까, 아니면 갈등이 두려워 관계를 피하려는 것일까?’

그 질문 하나가 우리의 선택을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들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손절’이 아니라 관계를 조율하는 힘일지 모른다. 관계는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가장 깊은 회복 역시 관계 안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박지현 서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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