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장 커피’에 세대간 가치관 충돌
격식의 공간 지나가고 유연한 새무대
변하는 시대에 따라 극본 수정될수도
▲ 최진숙 UNIST 교수·언어인류학
최근 미국에서 직장 면접장에 아이스 커피를 들고 들어간 지원자의 행동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기성세대는 이를 두고 "면접을 ‘가벼운 일정 중 하나’로 여기는 듯한 캐주얼한 인상을 준다"라며 비판했고, 젊은 세대는 "단순한 음료 한 잔 들고 들어온 것이 능력 평가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며 맞섰다. ‘직장 면접 시 적절한 행위’에 대한 의견 차이는 단지 소소한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급기야 세대 간 전쟁처럼 보인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에 의하면, 사람들은 공적 공간에서 행동할 때 ‘무대 전면(Front Stage)’의 자아로서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한다. 반대로 혼자 있거나 친밀한 이들과 함께할 때는 ‘무대 뒤(Back Stage)’의 자아로 돌아온다. 무대 전면에 나선 자아는 타인의 시선을 인지하며, 가장 바람직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당대의 사회적 규범을 반영하는 극본에 맞추어 연기한다. 면접이야말로 첫인상이 성패를 좌우하기에 의상과 외모, 말투 하나까지 극도로 절제하고 관리해야 하는 ‘전면 무대’에서 하는 연기의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 무대 위 행동 양식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것일까? 이는 시대에 따라 사회적 규범이 바뀌기 때문이다. 가령, 30년 전에 통용되던 ‘예의’의 기준은 엄격한 신분 질서와 경직된 의례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은 달라지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리메이크된 할리우드 영화 ‘인턴(The Intern)’에서 70세의 시니어 실버 인턴 벤(로버트 드 니로)이 접하는 30세 청년 CEO 줄스(앤 해서웨이)의 스타트업 기업은 정장과 딱딱한 격식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다. 킥보드를 타고 사무실을 누비며 수평적 소통을 주고받는 기업 문화 속에서는, 과거의 완고한 예의보다 친근함과 유연함이 새로운 무대 전면의 규범으로 작동한다.
우리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업에서 영어 별칭 사용이나 직급 파괴, 쿨비즈(Cool biz) 운동으로 대표되는 반바지와 출근용 샌들 허용 등은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탈’이었다. 심지어 2026년 10월부터 대한민국 인사혁신처가 주관하는 국가공무원 면접시험에서는 넥타이와 정장 구두 착용이 전면 금지되고 깔끔한 평상복을 권장한다고도 한다. 과거의 정장이 ‘예의범절’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도리어 ‘경직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남자 연예인들의 귀고리와 장발 스타일, 찢어진 청바지와 왜색풍 의상 등에 대한 규제가 있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90년대 초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들의 복장과 헤어스타일 때문에 방송에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방송국 심의위원들이 이들의 레게 헤어스타일과 힙합 의상을 두고 "복장과 태도 불량"이라고 하며 단정한 의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당대의 ‘일탈’은 시간이 흘러 오늘날 K-팝 가수들의 패션이 전 세계를 사로잡는 역동적인 ‘표준’이자 멋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회적 규범이란 절대불변의 신성한 법전이 아니다. 한 시대의 기술, 산업 구조, 그리고 세대의 감각이 바뀌면 무대의 조명과 관객의 기대치도 함께 변할 수밖에 없다. 오늘 면접장에 들어선 청년의 아이스 커피는 어쩌면 새로운 사회적 약속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작은 신호탄일지도 모른다. 국가공무원 면접시험에서 정장 착용이 지양되며 평상복을 권장한다는 것도 과거의 일탈이 현재의 규범이 되어 버린 것을 의미하듯이 말이다.
기성세대에게는 간혹 부적절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세대의 행위를 도덕적 잣대로 단죄하기에 앞서, 시대에 따라 극본이 수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최진숙 UNIST 교수·언어인류학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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