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돌파 ‘오디세이’ 신드롬… 신들의 바다, 스크린을 집어삼키다
극장에 가야 할 이유 천만 관객이 답했다
172분 압도적 스케일…IMAX 체험으로 흥행 돌풍
원작·그리스 신화까지 관심…관련 도서 판매량 증가
2026년 09월 07일(월) 20:00
‘오디세이’
영화를 보기 위해 반드시 영화관에 가야 했던 시대는 지났다. OTT와 유튜브, 대형 TV부터 스마트폰까지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그렇다면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영화관까지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는 그 질문에 172분 동안 답하는 영화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깎아지른 절벽, 거대한 괴물과 전쟁터를 스크린 가득 펼쳐놓으며 ‘극장에서 봐야 완성되는 영화’의 힘을 보여준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오디세이’는 지난 6일 기준 누적 관객 1002만7986명을 기록했다. ‘왕과 사는 남자’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천만 영화이자 국내 열 번째 천만 외화다.
영화는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를 바탕으로 한다.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마친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가 아내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와 아들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귀향길은 또 다른 전쟁과 다름없다. 오디세우스는 거인 키클롭스와 마녀 키르케, 사이렌, 칼립소를 만나고 죽은 자들의 세계까지 헤맨다. 그 사이 이타카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믿는 구혼자들이 왕좌와 페넬로페를 차지하려 들고, 성장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아 길을 나선다.
‘오디세이’의 영상화가 처음은 아니다. ‘율리시스’(1954)는 오디세우스를 모험을 돌파하는 고전적 영웅으로 그렸고, ‘더 리턴’(2024)은 귀향 이후 피폐해진 모습에 집중했다. 놀란의 해석은 기존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 그의 오디세우스는 지혜로 신과 괴물을 농락하는 ‘꾀 많은 영웅’이라기보다 비극적인 운명에 휩쓸린 한 인간에 가깝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최근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그리스군이 트로이 함락을 위해 사용한 ‘트로이의 목마’ 장면.
신들의 역할도 줄였다. 원작에서는 신들이 오디세우스의 운명에 직접 개입하지만 놀란은 대부분을 화면 밖으로 밀어냈다. 사실상 유일하게 등장하는 아테나(젠데이아 분)도 다른 사람과 대화하지 않고 오디세우스에게만 나타난다. 그래서 그녀가 정말 신인지, 살아남으려는 오디세우스의 의지 또는 양심인지 경계가 흐릿하다. 신에게 휘둘리는 고대의 영웅 이야기를, 전쟁을 마친 후 수많은 상실과 유혹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려는 현대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바꿔놓은 것이다.
물론 ‘오디세이’의 진짜 힘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아니라 관객에게 어떻게 체험시키느냐에 있다. 영화는 장편영화 최초로 전편을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 놀란과 촬영감독 호이트 반 호이테마는 실제 자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인공적인 세트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규모와 질감을 화면에 담았다.
카메라는 오디세우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그의 불안과 피로를 들여다보다가 순식간에 바다와 절벽으로 물러나 인간이 점처럼 보이게 한다. 특히 키클롭스와 맞닥뜨리는 장면에서는 괴물 자체를 과장하기보다 그 앞에 선 인간을 아주 작게 배치해 크기의 차이가 곧 공포가 되도록 만든다.
이 같은 ‘극장 체험’이 관객들이 굳이 영화관을 찾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줬다. 지난 5일까지 국내 IMAX 관객은 110만2000여명으로 ‘아바타: 물의 길’의 92만9000여명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용산아이파크몰 IMAX관에서는 예매 경쟁이 벌어졌고, 일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티켓이 10만~30만원에 거래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남광주에는 IMAX관이 없어 전주 등 다른 지역까지 ‘원정’을 떠나는 관객도 생겼다.
열기는 극장 밖으로도 이어졌다. 7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오디세이’ 관련 도서 판매량은 전월보다 940.9%, 지난해 같은 달보다 2984.8% 증가했다. 그리스 신화 관련 도서 역시 전월 대비 84.3%, 전년 동월 대비 33.5% 늘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 등장인물과 신화의 배경을 찾아보고 관람 뒤에는 원작과 영화의 차이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확장해가고 있다.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를 함께 읽는 독서모임이 생겼고, 지자체와 문화기관에서도 그리스·로마 신화를 다루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결국 ‘오디세이’의 천만 흥행은 오늘날 ‘좋은 영화’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관객을 깊이 몰입시키고 극장 밖에서도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는 것, 무엇보다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굳이 영화관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드는 것. ‘오디세이’는 그 힘을 보여준다.
/장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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