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스승의 날 즈음에 학교 선배 한 분이 스승처럼 떠올랐다. 8년 선배인 그분은 학위를 마친 후 교수가 되었고, 2018년에 제5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며, 지금은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신 강상현 교수이다. 그 선배와 막역하게 지낸 사이는 아니었지만, 내가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선배는 연구실에 계시며 후배들의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신촌 로터리 탁구장에서 같이 운동도 하며 후배들의 얘기를 들어주시던 참 좋은 선배였다.
졸업 후 30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나는 그 선배를 딱 세 번 뵈었다. 물론 소식도 듣고, 축하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지만, 직접 뵌 것은 세 번이 전부였다. 2015년에 선배 부인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가서 선배를 뵈었다. 그리고 2017년에 동문회장을 맡은 내가 동문 체육대회를 열었을 때 그 선배가 참석해 주셨고, 1등 상을 받으셨다. 세 번째 만남은 올해 3월이었다. 선배가 암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지 꽤 되었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뵙게 되었다.
내 우려와 달리 선배는 매우 밝은 표정에 건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신우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한 후 지난해 1월에 수술을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이되어 회복이 어렵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였다. 이후 치료 방법은 그나마 성공률이 20% 내외밖에 안 되는 새로운 면역항암요법뿐이었는데, 마침 그 치료가 선배에게 맞아 담당 의사 말처럼 ‘드라마틱하게 좋아졌다’고 한다.
선배는 표지가 예쁜 책 한 권을 내게 주었다. 전공책만 저술하셨던 선배가 처음으로 시·산문집을 낸 것이다. 아내 10주기를 맞아 펴낸 「사랑하는 당신에게 – 함께 걷는 길 위에서」(2025)였다. 추억으로 남은 삶의 단편들, 아내가 떠난 후 겪어야 했던 상실감, 어느 날 갑자기 중증 암 환자가 되어 절망하며 절규했던 자신을 담담히 썼다. 그리고 ‘일찍 부르시면 아내에게 가서 좋고, 좀 더 살게 하시면 자식들과 함께 있어 좋은 것 아닌가’ 하며 감사하며 순명하는 신앙 고백을 담았다. 비록 의사가 완치는 없다고 했지만 선배는 완치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며, 응원하고 기도해 준 모든 분들이 아프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평화에 이르기를 기도한다고 썼다.
5월이 뜨겁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란 간의 긴장과 공세는 세계 각국의 경제를 흔들고 있다. AI 호황에 힘입어 대형 테크 주가가 요동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성과급과 임금 갈등으로 인한 총파업 위기를 넘겼지만 이후 노조와 주주, 경영진과 주주 사이의 갈등뿐만 아니라 노노 갈등까지 그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 간 도덕성과 자질, 과거 행적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역 경제와 민생 이슈를 제대로 짚어보기보다는 이번 선거가 정권과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라는 잣대를 내세우며 여야가 대치하는 형국이다.
갈등과 파국으로 치닫기에 앞서 유한한 우리의 삶이 주는 교훈을 돌아보게 하는 스승을 만날 수는 없을까. 선배는 5월 6일에 산티아고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생전의 아내와 이 길을 걷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려는 듯 몸이 회복되자 바로 산티아고로 떠났다. 그가 돌아와 들려줄 이야기를 나는 기대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