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간 ‘간극’…“인프라 수준 차이”
“책무구조도, 사고 예방 직결? 혼선 경계해야”
금융감독원이 시행한 ‘은행, 금융지주 책무구조도 운영과 내부통제 강화’ 연수. 사진=금융감독원
[주간한국 강민혜·손재하 기자] “학급에서 생긴 문제의 경우 교육당국에선 우선적으로 교장 선생님이 학교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보겠죠. 평소 교육, 방범 순찰, 점검 등 통상적인 예방 조치가 충분했는지 보고, 그럼에도 사고가 생겼다면 교장이 무조건 책임지는 것이 아닌 매뉴얼을 제대로 지켰는지 여부를 점검해 시정하도록 확인하는 겁니다. 책무구조도도 같은 논리예요. 보고·점검을 통해 예방 활동이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직접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제도가 아니라 관리·감독 책임을 다하라는 겁니다.”
금융당국 관계자가 책무구조도와 관련 본지에 설명한 내용이다. 금융사고 책임을 임원별로 사전에 나누겠다며 도입한 책무구조도가 시행 3년차를 맞았지만, 내부통제 강화의 공통된 해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먼저 향한 곳은 은행권이다.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은 물론 금융위원회(금융위)·금융감독원(금감원)은 2024년 7월 시중은행·금융지주를 상대로 시범 운영을 시작, 같은 해 11월 참여 현황을 공개한 데 이어 12월에는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 관련 제재 운영지침 시행도 발표했다. 특히 은행권에서는 신한·하나·KB·우리·농협·iM·부산·전북·IBK기업은행 등 9개 은행이 시범 운영에 참여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이들 은행이 각각 선임한 자문사 등을 거쳐 낸 책무구조도에 대한 피드백도 전했다.
◇ 관건은 ‘형식적 점검 방지’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당국이 주목한 쟁점은 내부통제 활동을 충분히 시행했는지 여부다. 금감원 관계자는 본지에 “많은 분들이 책무구조도가 도입되면 사고시 임원들이 다 제재를 받는다고 이해한다”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책무구조도 도입 전후 사고 공시 비교를 통한 피드백은 금감원이 책무구조도를 도입한 의도와 다르다는 것이다. 단순 사고 건수를 줄이는 것이 아닌 책임자를 기업이 아닌 개인으로 바꿔 명확하게 드러내겠다는 의도다.
지배구조법 제25조의2 취지는 원칙적으로 관리 의무를 충실히 하지 않은 임원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그 결과 발생한 위법행위의 중대성과 ‘상당한 주의 여부’를 함께 판단해 신분 제재를 감면할 근거 규정이 있다는 설명이다. 사고가 났다고 해서 바로 관련 임원이 자동 제재를 받는 구조로 오인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므로 정교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사고와 책무구조도를 바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것은 내부통제 활동으로, 실제 지난해 12월 은행권에서 취합한 책무구조도를 토대로 피드백한 결과 드러난 임원의 이른바 ‘셀프 점검’을 문제 삼았다. 이 같은 평가는 참여사들이 임원별 내부통제 관리조치의 효율화를 위해 당국에 제출한 ‘전산 시스템 또는 자체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했다. 준법감시부서의 2차 점검 등을 통해 내부통제 과정을 전산화한 것으로, 지난해 1분기 시스템 개발 후 각 사별로 고도화 단계에 있다.
책무기술서를 작성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행을 위한 내부 시스템·체제 마련 작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점수·체크리스트 등을 각 사별로 구현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셀프 점검, 형식적 도장 찍기 수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전산 시스템의 취지를 설명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어떤 제도도 사고를 ‘제로’로 만들 순 없다”며 “큰 사고를 막는 목적이 큰 것”이라고 짚었다.
신한(왼쪽부터)·KB국민·우리·하나·NH농협·IBK기업은행 사옥 전경. 사진=각 사
◇ “정량·수치화 평가 고도화 이어가야”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정량 평가 위주로 핵심성과지표(KPI)를 만들어야 한다”며 “예컨대 전산 부문에서 1년에 발생한 오류가 몇 회인지, 전산 인력 확보 건수가 업계 평균 대비 높거나 낮은지, 1년에 들이는 비용이 얼마인지 등을 구체화해 평가체계에 연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재준 인하대학교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내부통제·작동 여부에 대한 책임은 지도록 해야 하며 담당 임원은 자신이 맡은 영역 업무 실행에 대한 1차 책임자가 되고, 이사회는 반드시 감독자로서 감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도 “현장에서는 일은 그대로인데 문서화할 것이 늘었다는 불평이 나올 법도 하다. 중복 보고나 과도하거나 중복되는 책임 범위 설정은 최소화해야 한다. 기관에 대한 책임 추궁이 아닌 개인 책임 중심 제재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채상미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는 제도가 단계적으로 정착하는 과정에 있다”며 “사고 건수 감소 여부만으로 실효성을 판단하기에는 다소 이르다. 아직은 문서 정비·체계 구축 단계에 가까운 측면이 있고, 실제 효과는 운영 과정에 얼마나 내재화되느냐에 따라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제언했다.
다만 각 사와 금융당국이 김앤장 등 대형 로펌, 딜로이트 안진·삼정KPMG 등 외부 컨설팅을 통해 책무구조도를 수립하는 것에는 우려도 나타냈다. 채 교수는 “내부 조직이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외부 자문은 법적 정합성과 리스크 관점에서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내부 주도 없이 외부 자문에 의존할 경우 실무와 괴리된 형식적 문서가 될 가능성이 있고, 반대로 내부만으로 설계할 경우 책임 배분의 객관성·법적 완결성이 부족할 수 있다”고 평했다.
금융당국은 시행 초기 공유한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시중은행들이 각각 제출한 책무구조도를 평가하며 각 은행별 여건 차이에 따른 차별이 없게 조치하고 있다.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문서 작성 및 보고 체계 정비 등 실무 부담이 증가한 것을 우려한 조치다. 실제 시중은행과 달리 지역은행들은 책무구조도 운영과 관련한 본지 질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IM뱅크(왼쪽부터), 부산·경남·전북·광주은행 사옥 전경. 사진=각 사
광주은행은 답변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고, iM뱅크는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부산은행·경남은행·전북은행 역시 준법 부서 등을 이유로 구체적 설명에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 자료상 이들 은행 다수가 시범 운영 또는 도입 대상에 포함됐지만, 실제 운영 경험을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온도 차가 있었다. 채 교수는 “이 같은 격차는 조직 규모, 디지털 인프라 수준 차이에 기인한다”면서도 “각 여건에 따른 자율적 설계도 중요하다”고 평했다. 한국산업은행은 김앤장 및 삼정KPMG의 자문을 통해 책무구조도를 만들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타행 모방 위험이 있어 공개할 순 없지만 책무구조도 도입에 막대한 비용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전 본부부서가 참여하는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책무구조도를 완성했다. NH농협은행은 ‘NH내부통제전문가’ 인증 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우리은행도 내부통제 평가 항목을 직무 역량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또 ‘내부통제 체크업’ 제도를 도입해 본부 부서의 연속 휴가 사용시 팀장 업무 전반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아울러 ‘내부통제 가점’ 지표를 신설해 내부통제 KPI에서 감점이 없는 영업점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책무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임원의 책무 이행을 시스템 기반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시스템 개발을 통해 운영 기반을 정비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본지에 “책무구조도에 기반한 내부통제 관리 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됐다”고 말했다.
카카오(왼쪽부터)·케이·토스뱅크 사옥 전경. 사진=각 사
◇ 인뱅 3사, 전산 사고 대응 방점
인터넷은행들은 책무구조도 운영 방식과 내부통제 대응 현황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인터넷전문은행 3사(카카오·케이·토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21~2026년 2월)간 전산 사고는 총 163건으로 집계됐다. 토스뱅크(토뱅)와 카카오뱅크(카뱅)는 각각 64건, 케이뱅크는 35건이다. 토스뱅크의 금전 피해자는 1만 700명, 배상 금액은 4874만원이다.
카뱅은 별도 TF를 두고 준법감시·법무·기획·전략·인사·정보보호·정보기술(IT)자체감사 등이 참여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카뱅 관계자는 “도입 전에는 일부 부서에 통제가 집중됐다면, 도입 이후에는 전행적 차원에서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하고 문화를 내재화한 점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케뱅은 상시 감시, 통제자 자가 점검, 직무 분리, 명령 휴가 제도 확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자금 이체시 복수 부서와 직원이 단계별 승인에 참여하도록 하고,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인증서 등도 담당자를 분리해 관리하고 있다.
토뱅은 지난달 10일 발생한 ‘엔화 반값 환전 오류 사고’를 겪는 등 다소 부침을 겪고 있다. 다만 토스는 관리·운영을 포함한 내부통제 전반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수행하고 있다.
강민혜·손재하 기자 mine@hankooki.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