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연대로 : 전라도 혐오에 맞서는 사람들 ④문성호 토끼풀 편집장
“전라도 비하 농담처럼 사용”
SNS 속 편견 교실까지 확산
사건 뒤 일회성 교육 한계 지적
“훈계 아닌 지속적 교육 필요”
문성호 토끼풀 편집장.
“혐오가 문제라는 인식은 있지만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는 학생들의 응답이 많았을 겁니다. 실제로 한 반에서 혐오 표현을 주도하는 학생은 소수지만 나머지 학생들이 방관하거나 동조하면서 교실 전체의 분위기가 되거든요.”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지역 비하 응원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7월, 서울 지역 청소년 독립언론 ‘토끼풀’이 설문조사를 실시해 드러난 교실 속 혐오 표현 실태는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이 매일 한차례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는 결과다. 그러나 문성호(17) 편집장은 그에 못잖게 또 다른 데이터에도 주목했다. 혐오 표현을 접했을 때 56.7%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37.2%가 자리를 피했다는 점이다. 성적과 학력, 외모, 지역을 근거로 한 혐오와 차별을 용인하거나 혹은 ‘경쟁’이라는 이유로 권장하기까지 하는 사회의 암묵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교실로 옮겨졌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특히 혐오와 차별에 관한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없이 사건이 터질 때마다 훈계하듯이 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무등일보는 지난 23일 혐오 표현 문제를 깊게 다뤄온 문 편집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청소년들의 교실 속 혐오 표현 실태, 배경과 함께 혐오 표현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 부재 문제까지 다양하게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학교에서 직접 접하는 혐오 표현은 어느 정도인가.
▲매일매일 혐오를 겪고 있다. 전라도 혐오뿐 아니라 장애인 혐오와 여성 혐오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오간다. 수업 시간보다는 학생들끼리 어울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혐오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학생은 있지만 적극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나 역시 심각한 표현에는 잘못됐다고 말하지만 대부분은 적당히 웃어넘긴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적하기 어려운 이유는.
▲잘못됐다고 말하는 순간 끝없이 물고 늘어진다. 여성혐오를 지적하면 ‘너는 페미(페미니스트)냐’고 하고 지역 혐오를 지적하면 ‘좌파냐’는 식으로 몰아간다. 여러 학생이 한 명을 상대로 공격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대응하기 어렵다. 다들 공부해야 하고 다른 할 일이 있는데 매번 여러 명과 말싸움을 벌일 수는 없지 않나.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어도 상대가 두세 명씩 몰려들면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그냥 웃어넘기는 상황이 반복된다.
-실제로 교실에서 5·18이나 전라도를 비하하는 말도 자주 나오나.
▲‘전라도에 가려면 여권을 챙겨야 한다’는 말은 평소에도 농담처럼 사용한다. 전라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전라도는 원래 그렇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살인사건은 어느 지역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데 전라도에서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지역 전체의 문제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접한 부정적인 정보가 이미 머릿속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한다.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당시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논란 이후 우리 반에서도 스타벅스 텀블러를 가져와야겠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평소 다른 브랜드의 텀블러를 사용하던 학생들이 집에 묵혀둔 스타벅스 텀블러를 가져오기도 했다. 5·18을 ‘폭동’이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건 반박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학생이 있더라도 ‘5·18은 민주화운동이다’라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이런 표현이 SNS를 통해 확산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나.
▲전라도와 관련된 부정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SNS에서 관련 콘텐츠가 크게 퍼진다. 이를 보고 지역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 학생들이 다시 혐오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 콘텐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제작자들도 전라도 관련 이슈를 더 크게 부각한다. 조회수와 수익을 얻기 위한 콘텐츠가 또 다른 혐오를 낳는 악순환이다. 청소년들은 SNS에서 극단적인 정보만 접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고 믿거나 표현의 어원과 사회적 맥락을 모르고 따라 하는 학생들도 있다.
-혐오 표현을 주도하는 학생들에게 공통점이 있나.
▲한 반에 30명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많아야 대여섯 명 정도가 주도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방관하거나 묵인하고 웃거나 동조하는 식이다. 주도하는 학생들은 운동을 잘하고 친구가 많고 말을 잘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알파메일(Alpha Male·집단 내에서 주도적이고 영향력이 큰 남성)’처럼 또래 집단에서 힘이 있는 학생들이다. 그런 학생이 누군가를 조롱하면 주변에서도 멋있다고 생각해 따라 웃는다. 그 학생이 하는 말이 틀렸다고 인식하기도 어려워진다.
-학생들이 혐오 표현을 재미있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금기를 깨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학생이 있고 아예 잘못된 표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도 있다. 누군가를 조롱하면 친구들이 웃어주고 더 친해질 수 있다.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학생에게는 불이익보다 이익이 많은, 일종의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다. 그게 왜 잘못됐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다면 문제를 인식하기는 더 어렵다. 결국 학교와 사회가 그런 표현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도 돌아봐야 한다.
-학교 안팎에서 정치적 낙인과 공격을 경험했다고 했는데.
▲토끼풀 편집장으로 SNS에서 활동하다 보니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나를 ‘좌파’나 ‘민주당 지지자’라고 부르는 학생들이 있었다. 실제로 민주당 지지자는 아닌데도 그렇게 알려졌다. 처음에는 손가락질하거나 사진을 찍는 학생들도 있었고 지금도 급식실에서 그런 시선을 느낄 때가 있다. 온라인에서도 익명 계정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면 논리적인 대화가 어려워 그냥 ‘따봉’ 하나를 보내기도 한다. 공개적으로 토론하자며 1대1이나 2대2로 만나자고 제안한 적도 있지만 실제로 나온 사람은 없었다. 다만 학교에서는 같은 반 친구들과 2~3개월을 지내면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일부 학생들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혐오 표현을 사용할 때 조금은 조심하게 됐다.
2025년 1월 7일, 연신중학교 방송실에서 토끼풀 기자들이 제10호 지면의 검열 문구를 펜으로 직접 가리고 있다. 토끼풀 제공
-그런 집단 공격이 다른 청소년들의 발언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그렇다. SNS에서 누군가가 집단적으로 조롱당하는 모습을 다른 학생들도 본다. 나에 관한 사진이나 게시물도 돌아다닌다. 혐오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학생들도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나서기 어렵다. 동등한 조건에서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대일로 이야기를 나누면 생각이 바뀌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여러 명이 한 명을 공격하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질 수 없다.
-배재고 야구부의 지역 비하 응원 논란을 계기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이유는.
▲배재고 학생들이 공개적인 야구 경기에서 그런 응원 구호를 외쳤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학교 안에서는 그보다 심한 혐오 표현들이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배재고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특정 학생들을 비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김에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알리고 싶었다. 토끼풀은 청소년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당사자들의 의견을 모아 사회에 전달하기 위해 설문조사 등을 진행한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응답자의 53.7%가 하루 한 차례 이상 혐오 표현을 접하고, 79.3%가 교실에서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는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특히 혐오 표현을 접했을 때 56.7%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37.2%는 자리를 피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혐오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학생들은 설문에 많이 응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혐오가 문제라는 인식은 있지만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는 학생들의 응답이 많았을 것이다. 실제로 한 반에서 혐오 표현을 주도하는 학생은 소수지만 나머지 학생들이 방관하거나 동조하면서 교실 전체의 분위기가 된다. 문제를 느끼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담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배재고 재학생을 직접 취재한 기사가 다른 언론에 인용되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배재고 학생들을 비난하려고 기사를 쓴 것이 아니다. 논란이 발생하자 교육당국이 급하게 민주시민교육을 실시했는데, 그런 방식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짚고 싶었다. 당시 교육은 기말고사 직후에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잠을 잤을 것 같다. 토끼풀 기사에서도 학생들의 잘못을 언급한 것은 앞부분이고 대부분은 교육 방식의 문제를 다뤘다. 그런데 기성 언론들은 학생들이 교육 시간에 잠을 잤다는 사실만 부각하면서 배재고 학생들을 비난하는 기사처럼 보도했다. 수업 시간에 자는 것도 잘못이지만 온전히 학생들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충분히 다뤄지지 않아 아쉬웠다.
-사건이 발생한 뒤 급하게 실시하는 교육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왜 혐오가 잘못됐는지 가르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말을 하면 인생이 망한다’고 훈계하면 오히려 반감이 생길 수 있다. 학생들이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대신 처벌과 비난의 책임을 혐오의 대상이 된 집단에 돌릴 수도 있다. 전라도를 조롱한 학생들이 비판받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구나’라고 반성하기보다 ‘전라도는 건드리면 안 되는 곳인가’라며 반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아닌 상대에게 돌리는 일종의 굴절된 분노다. 공개적으로 혐오 표현을 사용하지 않게 되는 효과는 있겠지만 마음속에는 적대감이 쌓일 수 있다. 그런 반감이 나중에 더 위험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혐오를 예방하려면 교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사건이 발생한 뒤 논란을 덮기 위해 급조한 교육은 옳지 않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부터 혐오와 차별이 왜 잘못됐는지 꾸준히 가르쳐야 한다. 문제는 교사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교사가 없는 곳에서 혐오 표현을 주고받고 교사는 그런 현실을 모른 채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학생들이 교사를 신뢰하고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도 충분히 형성돼 있지 않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왜 나쁜 것인지 설명하고 학생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물어야 한다. 권위로 찍어 누르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경쟁과 서열화 중심의 교육도 혐오와 관련이 있다고 봤다.
▲학교에서는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무리에서 배척할 수 있다. 사회에서도 학력과 지역, 외모 등 여러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서열화하는 분위기를 용인한다. 학생들끼리 시험 성적이 10점 낮다는 이유로 친구를 못났다고 말하는 상황이다. 바로 옆에 있는 친구에게도 그런 말을 하는데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는 왜 다르게 행동하겠나. 특정 시간에만 인권교육을 하는 것보다 학교와 사회의 분위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청소년 언론인으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토끼풀도 언론으로서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계속 취재할 예정이다. 배재고 논란은 지금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청소년 사이에서 비슷하거나 더 심한 일이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혐오 문제가 다시 사회적 이슈가 된다면 계속 취재하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지금은 혐오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해도 사건이 크게 주목받을 때만큼 관심을 얻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렇더라도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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