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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전쟁 장기화에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는 가운데 내년 농산물 가격 상승(애그플레이션) 압력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9월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약 4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시장에서는 비료 공급난과 기후 변화가 내년 곡물값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FAO는 지난 2일 9월 식량가격지수가 136.0으로 전월(134.0)보다 1.5%, 전년 동월보다 5.8%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2022년 11월(136.0) 이후 가장 높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3월 최고치(160.2)에는 못 미친다. 곡물 가격지수는 122.8로 한 달 새 5.1%, 1년 새 17.2% 뛰었다. FAO는 2월 말 시작된 미·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차질과 흑해 물류 불안, 기후 충격이 에너지·운송·농산물 가격을 함께 압박한다고 설명했다. 막시모 토레로 FAO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압력이 이어지면 소비자 식품 가격에 곧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FAO는 올해 세계 곡물 생산량을 29억7천900만t으로 전망해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수확을 예상했다. 2026·2027년 곡물 교역량 전망은 5억580만t으로 3.5% 감소할 것으로 봤다.
선물시장도 비슷한 흐름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BOT) 11월 인도분 대두 선물은 7일 종가 기준 부셸당 1,297.50센트로 올해 초 1,000센트대 초반에서 올랐다. 6월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로 1,100센트대 초반까지 내렸으나, MOU 만료와 무력충돌 재개로 다시 상승해 지난달 중순 1,300센트를 넘어섰다. 소맥과 옥수수 선물은 올해 각각 35.06%, 13.91% 올랐다. 흑해 교역 차질 속에 밀 선물이 9월 초 3년 내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FAO는 밝혔다.
비료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미국 아르거스미디어(Argus Media)에 따르면 중동은 전 세계 요소 교역의 약 34%를 차지한다. 유엔 국제무역센터(ITC)는 호르무즈 의존 국가의 4월 요소 수출량이 전년 동월보다 83% 줄었으며, 대체 공급이 늘었어도 요소 부족을 메우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세계은행은 올해 비료 가격지수가 30% 이상, 요소 가격이 약 60%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보다 내년 부담이 더 크다고 진단한다. 올해는 슈퍼 엘니뇨가 미국 중부, 브라질 남서부, 아르헨티나 등 주요 곡창지대의 강수량과 수확량을 늘려 곡물 가격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컬럼비아대 국제기후사회연구소(IRI)는 동태평양 적도 해수면 온도가 올해 10월~내년 1월 정점을 찍고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이 경우 곡물 가격 상승을 막던 요인이 사라지고, 천연가스와 비료 가격 상승이 곡물값에 반영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엘니뇨의 효과가 모든 품목에서 같지는 않다. 인도와 동남아, 호주는 가뭄 위험이 커지는 지역으로, 9월 FAO 설탕 가격지수는 엘니뇨 우려 속에 6.1% 올랐다. 전망도 엇갈린다. 유럽중기예보센터(ECMWF)는 라니냐가 2027년 하반기 나타날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세계은행은 중동 수출이 회복되고 천연가스 가격이 안정되면 요소 가격이 2027년 내릴 것으로 본다.
에너지 공급 정상화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란을 제외한 중동의 9월 원유 수출은 일평균 1천650만 배럴로 전쟁 전의 87%까지 회복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제설비 피해와 보험료 인상 등 비용 부담이 남아 있다. 아민 나세르 사우디 아람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 영국 에너지정보포럼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전면 개방돼도 수요 충족과 재고 보충에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 파종기에 비료 수급이 불안하면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식량 위기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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