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서울 중구 중대범죄수사청에서 개청식이 열려 참석자들이 현판 제막을 하고 있다.(맨 위) 아래 사진은 부산·광주·수원·대전·대구지방중대범죄수사청.(시계 방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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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2일부터 우리 형사사법체계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검찰청 시대가 막을 내리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체제가 출범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변화의 초점은 중수청입니다. 3부의 주요 공직자들이 모여 중수청 개청식을 열고 현판을 제막했습니다. 그러나 초대 청장도 공석인 데다, 박수와 공격이 엇갈리는 어수선한 상황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7월31일 형사소송법 개정에 이르기까지는 난관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원래 최대치”를 넘어서고, 법무부 장관의 태업을 넘어설 정도로 나아간 검찰개혁의 동력은 어디서 왔을까요? 박은정·김용민·추미애·서영교 등 ‘강경파’가 다른 정치인, 청와대의 주저함과 반대를 이겨낼 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해서인가요. 그들은 불가역적 검찰개혁을 갈망하는 국민의 뜻을 충심으로 대변했을 뿐이지요. 숱한 난관을 넘어설 수 있었던 힘은 다시는 인권유린, 정치검찰의 시대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국민적 열망 덕분이었습니다. 이제 불가역적 검찰개혁의 방향을 따라 흔들림 없이 실행 단계로 나아갈 때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요? 중수청을 만든다는 정부조직법이 통과된 지 1년이 지났고, 중수청법은 올해 3월에 통과되었습니다. 중수청이 운용되기 위한 사무 공간 조성과 수사 인프라를 준비하는데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실용개혁, 신속행정을 역설해온 이재명 정부의 실력으로 볼 때 부족한 기간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출범 시점에 ‘개문발차’라는 비판을 자초했습니다. 사무 공간, 조사실, 전산망 준비도 미비한 채로입니다. 중수청 수사관에게 문의해보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고 막막하다”는 게 첫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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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잘못인가요? 국무총리실에 검찰개혁추진단이 출범했을 때 부여받은 임무 중 하나는 ‘중수청 하부조직 설계, 정원 산정, 인력 충원, 청사 확보, 예산 편성, 시스템 구축 지원 등 조직 가동을 위한 실무 준비 전반 추진’이었습니다. 총리실은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부처에 관련된 통합적 행정업무인지라 그 시스템 구축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지휘할 사령탑은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어이없고 막막한” 현재 상황은 현 정부의 검찰개혁 진정성을 의심쩍게 합니다. 지난날 잘잘못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수사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고 신생 조직의 행정부 내 위상을 착근시킬 책임은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검찰청 시대엔 검사가 수사권자였고 검찰 수사관은 보조자였지만, 중수청에서는 1급부터 9급까지 모두 동일한 ‘수사관’으로 출발합니다. 검사 출신은 수사사법관으로 하고, 검찰 수사관은 전문수사관으로 구획 짓자는 골품제적 정부 안은 배격되었습니다. 중수청에 온 이전의 검사들은 ‘검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수사 전문가로서 자신의 임무를 재설정하겠다고 나선 개척자들입니다. 검찰청 수사관도 안정된 공소청 직장을 마다하고, 전문수사의 임무에 전념하겠다고 나선 개척자들입니다. 이렇게 개척자 수사관들이 모인 ‘어벤져스’인 만큼 서로의 경험과 전문성을 잘 살려서 중대사건 수사의 길을 함께 잘 개척해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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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청의 탄생은 검찰청 시대의 수사방식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를 요청합니다. 특히 특수부나 공안부 중심의 수사방식에 대한 비판과 질타가 검찰청 폐지의 주요 원인이 되었음을 반면교사로 새겨야 합니다. 사건보다 사람을 겨냥한 표적 수사, 먼지털기식 전방위 압수수색, 별건 수사와 일가족 확대 수사, 고발 사주 의혹이나 조작 기소 논란으로 불거진 변칙수사 시비 등. 수사권, 영장청구권, 공소권을 정치 도구화하고 조직권력을 강화해온 폐습을 중수청에 갖고 와서는 안 됩니다. 선별적 수사와 기소로 비판받아온 불공정의 수사 관행과도 결별해야 합니다. 범죄에 대해서는 엄정하되, 정치적 독립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수사권을 정치적 도구로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전관예우와 같은 조직적 유착 악습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기왕의 관행에서 자유로운 신생 기관에서는 선진적인 수사기법도 선도적으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조서 위주의 수사에서 탈피해, 과학수사와 객관수사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수사받는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적법절차에 충실한 수사기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수사에 있어서는, 그들의 고충과 불편에 대한 각별한 감수성을 키워가야 합니다. 내외부 토의를 거쳐, 어떤 방식의 수사를 하고, 어떤 방식의 수사는 하지 말아야겠다는 원칙을 정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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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신뢰 형성에는 공소청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이 중요합니다. 중수청 수사관 대부분은 검찰청에서 왔으니 공소청 직원들과는 함께 근무한 공적 인연뿐 아니라 각종 개인적 인연이 겹쳐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중수청이 과거 검찰 중수부의 확대판, 심지어 제2 검찰청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걱정의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중수청을 행안부에, 공소청을 법무부에 위치시킨 것도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시도입니다. 앞으로 중수청은 공소청과의 유착 우려와 걱정을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합니다. 공소청 직원들과는 특정 사건의 수사와 관련된 직무상의 필요성 이외의, 어떤 개인적 연락과 사적 모임도 자제해야 합니다.
경찰(사법경찰관)과의 관계도 초창기에 제대로 정립해야 합니다. 종래 검찰과 경찰은 늘 불편한 관계였고,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의 귀속을 둘러싸고 조직의 명운을 걸고 맞섰습니다. 앞으로 경찰과 중수청은 동등한 수사기관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병립해야 합니다. 수사기법, 수사관의 연수와 교육, 과학수사기구와 디지털센터의 운용 등에서 수사자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수사의 영역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수사권관할조정협의회도 원활하게 운용해, 시민들의 불편과 불안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중수청 직원의 비행은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서 조사하고, 경찰 공무원의 비리는 중수청에서 수사하는 등 기관 상피(相避)의 원칙도 실행해 수사기관 전반의 국민 신뢰도를 높여가야 합니다. 물론 중수청과 국수본 사이에는 사건 경합도 있을 수 있고, 누가 더 잘해내느냐의 실력 경쟁도 필요합니다.
중수청 수사관과 검사의 관계에서는 형사소송법의 규정과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검사가 직접수사, 보완수사의 형태로 개입하려는 경우 중수청은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수사관은 책임 있게 수사하되, 필요할 때는 검사에게 법률적 판단과 증거수집의 적절성 등에 대하여 의견을 요청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검사는 그러한 의견 요청에 성실히 대응할 책임이 있습니다. 수사관과 검사는 권한을 놓고 다투는 관계가 아니라, 적법한 수사를 위한 협력자입니다. 그러면서도 수사기관과 공소기관을 분리한 것은 수사관의 과도한 열정과 확증편향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도 하고, 영장청구와 기소 단계에서 재평가한다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중수청으로 옮긴 전직 검사에게 어떤 다짐으로 새 길을 선택했는가 하고 물어봤습니다. 검사라는 익숙한 이름을 내려놓으려니 주저함이 적지 않았지만, “여전히 수사를 하고 싶고, 앞으로 어떤 수사기관이 되어야 할지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강한 수사일수록 더 절제되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실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주저하지 않되, 필요하지 않은 권한은 사용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수사와 해야 하는 수사를 구별하고 실천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건 관계자 모두에게 “정중하게 말하고, 충분히 듣고, 가능한 것은 설명하는 것. 어쩌면 아주 작은 일들일지 모르지만 그런 작은 장면들이 모여 한 기관의 품격을 만든다고 믿습니다”고 했습니다. 그의 다짐대로 앞으로 중수청이 “중요한 범죄 앞에서는 단호하지만 권한 행사에서 늘 절제를 염두에 두고, 수사받는 사람들로부터 적어도 절차만큼은 공정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기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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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 4만불을 눈앞에 둔 나라에서 출범하는 신생 수사기관이 선진 민주국가의 수준에 맞는 수사기관으로 정립하기를 기대하고 당부합니다. 출범도 하기 전에 심판부터 하겠다는 성급한 공격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새 기관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도록 지원하고 독려해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수사매뉴얼을 정립하고, 다른 기관과의 관계를 잘 정립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가야 할 때입니다. 검찰개혁, 형소법 개정의 초심을 되새기면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격려와 지적을 아끼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한인섭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법학). ‘100년의 헌법’, ‘계엄과 내란을 넘어’, ‘가인 김병로’, ‘5·18재판과 사회정의’,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권위주의 형사법을 넘어서’ 등을 썼다. 한국 현대사와 민주화에 대한 심층 대담집으로 ‘이 땅에 정의를: 함세웅 신부의 시대 증언’,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 민주화운동 40년 김정남의 진실 역정’, ‘인권변론 한 시대’ 등이 있다. 시민이 주권자로 만들어 가는 헌법과 나라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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