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폭등·생산 차질에 전방산업 ‘도미노 타격’
[일요서울 l 이지훈 기자] 중동발 공급 충격이 촉발한 나프타 수급 불안이 산업계와 국민 생활 전반을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정부가 수출 제한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지만, 근본적인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은 생산을 줄이며 버티기에 들어갔고 소비자는 물가 상승 압력에 직면했다. ‘산업의 쌀’이 흔들리자 경제 전반이 연쇄 충격에 빠지는 모습이다.
-석유화학 산업 ‘빨간불’…공장 멈추고 공급망 흔들
-기름값·생필품 줄줄이 압박… 국민 부담 현실화
최근 중동 전쟁 여파로 촉발된 나프타 수급 불안이 국내 산업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는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화학물질의 핵심 원료로 플라스틱·비닐·합성고무는 물론 반도체·자동차까지 광범위한 산업에 쓰인다. 이 원료가 막히자 생산 현장부터 흔들리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미 가동률을 대폭 낮추며 비상 대응에 돌입했다. 일부 기업은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정기 보수를 앞당기는 방식으로 ‘시간 벌기’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현재 보유 재고가 2~3주 수준에 불과한 만큼 4월 중순 이후에는 가동률이 30~40%대로 급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나온다.
문제는 수출 제한 조치만으로는 근본적인 수급난 해소가 어렵다는 점이다. 국내 나프타 수출 비중이 약 11% 수준에 그치는 만큼 수출을 틀어막아 확보할 수 있는 물량 자체가 제한적이다. 여기에 원유 공급까지 불안정해지면 나프타 생산량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결국 기업들은 생산 축소와 비용 증가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나프타 가격은 연초 대비 두 배 이상 급등했고 대체 수입선 확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을 감수하고 물량을 확보할지 가동을 줄일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위기”라고 토로한다.
나프타 수급 불안은 산업계를 넘어 국민 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프타는 식품 포장재, 생활용품, 가전제품 소재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만큼 공급 차질이 곧바로 ‘생활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라면·즉석밥 용기,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소재 부족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공급이 줄어들면 제품 생산이 감소하고 이는 곧 가격 인상 압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저가 생필품일수록 원가 상승이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충격이 연쇄적으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석유화학 → 제조업 → 소비재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나프타 공급 차질은 단순한 원자재 문제가 아닌 ‘전방 산업 전반의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기업 수익성 악화와 소비자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 충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초강수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나프타 수출제한 및 수급안정을 위한 규정’을 시행하고 나프타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동시에 매점매석 금지, 생산·재고 보고 의무화, 특정 기업에 대한 공급 명령 등 시장 개입 수준의 조치를 도입했다.
또한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하고 무역보험·금융지원, 대체 수입선 확보 지원 등도 병행하고 있다. 보건의료·핵심 산업·생활필수품 분야에는 나프타를 우선 공급해 피해 확산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나프타는 대한민국 산업을 지탱하는 기초 원료인만큼 정부는 수급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국외도입 지원 등을 통해 도입 물량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석유화학기업들도 공급망 관리에 책임감을 가지고 나프타 도입 등 수급대응에 최선을 다하면서 나프타와 관련 석유화학제품이 이번에 제정된 고시의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유통·관리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를 ‘시간 벌기용 단기 처방’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핵심은 결국 대체 물량 확보인데 러시아산 도입이나 중동 외 지역 확보 모두 현실적 제약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확보 가능한 물량이 국내 수요 대비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 역시 비축유 방출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나프타 자체가 비축 체계 밖에 있었던 만큼 대응 여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수급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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