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로 흐린 날씨를 보인 지난 3일 오전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렌터카 사고 11.4%로 전국 최고…교통안전 우려 여전
“단순 찬반 공방 넘어 사회적 공감대와 철저한 준비 거쳐 개방해야”
중국인 관광객에게 제주에서 렌터카 운전을 허용하는 방안이 민선 9기 출범과 함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국인 렌터카 허용론은 2014년 처음 제기된 이후 관광 활성화를 위한 해법으로 여러 차례 제안됐지만, 교통안전과 보험·사고 책임 문제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10년 넘게 같은 논쟁만 이어지는 만큼 이제는 단순한 찬반을 넘어 제도 개선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박천수 제주도 행정부지사의 발언이다.
박 부지사는 지난 2일 도청 탐라홀에서 열린 민선 9기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위성곤 지사가 관광객 소비를 늘릴 방안을 묻자 외국인 관광객 유치 방안의 하나로 중국인 렌터카 문제를 꺼냈다.
박 부지사는 “외국인 개별 관광객의 많은 부분을 중국인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지금 렌터카를 이용 못 하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단기간에 몇 시간 연수를 시켜서 운전하게 할 수 있다든지 규제 완화 차원에서 한번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성곤 신임 제주도지사가 지난 1일 오전 제주도청 탐라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간부회의가 처음으로 생중계되면서 발언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등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제주도는 지난 4일 설명자료를 내고 “중국인 관광객 렌터카 제한 완화는 검토되거나 결정된 정책이 아니며 외국인 관광객 유치 방안을 폭넓게 모색하는 과정에 나온 아이디어 차원의 언급”이라고 밝혔다.
또 단기 체류 외국인의 운전 허용은 국제협약과 법령 개정, 정부 부처 간 협의가 선행돼야 하는 사안으로 제주도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으며 현재 부서 간 사전 논의나 실무적 검토도 진행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인 렌터카 허용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 관광객이 급증하던 지난 2014년 제주도는 중국인 개별관광객(FIT)을 유치하기 위해 제주특별법 5단계 제도개선 과제로 ‘외국인 관광객 운전 허용 특례’를 추진했다.
중국 운전면허증을 가진 단기 체류 중국인에 대해 신분확인과 간이 학과시험, 적성검사, 교통안전교육 이수 등을 거쳐 제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90일짜리 임시 운전면허를 발급받아 렌터카 운전을 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었다.
특례를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안은 2014년 11월 1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입법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2015년 4월 2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심사 과정에서 보험 처리 준비 미흡과 교통안전 우려 등을 이유로 해당 조항이 삭제되며 무산됐다.
이후에도 허용론은 꾸준히 이어졌다.
2019년 10월 한중 양국이 운전면허 상호인정 협정 체결을 위한 협의를 진행했으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단됐고, 2024년 5월 열린 제주포럼에서는 당시 제주관광학회장인 김의근 제주국제대 교수가 “중국도 개별 관광객 시대로 전환했다. 도내 교통수단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중국인 관광객들의 렌터카 운전을 허용하는 제도개선을 다시 논의해야할 시점”이라며 렌터카 허용 제도 개선 재논의를 제안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중국이 발급한 운전면허를 인정하되 입국 시 신고 후 별도 임시 운전 증명서를 신청해 발급받도록 조건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10여년 동안 제주도의 제도 개선 추진과 관광업계 제안, 정부 차원의 검토가 반복됐지만 어느 것 하나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논쟁만 되풀이됐다. 그러나
10년 사이 관광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관광시장이 단체관광에서 개별관광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면서 관광객들은 자유로운 이동 수단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한수풀 해녀학교에서 제주도 글로벌 워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국인들이 해녀 물질 체험을 위해 입수하고 있다. 뉴시스
반면 제도를 둘러싼 핵심 과제는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은 국제운전면허를 인정하는 ‘도로교통에 관한 국제협약’(제네바협약) 가입국이 아니어서 중국 운전면허만으로 국내에서 운전할 수 없다.
협약 밖에 있는 중국 면허는 국제운전면허증처럼 표준화된 검증 수단이 없어 면허 진위 확인부터 보험 가입 구조, 사고 운전자 출국 시 피해 보상을 담보할 방법까지 새로 설계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제주에서만 별도 특례를 적용하려면 제주특별법뿐 아니라 관련 법령 개정과 정부 협의가 선행돼야 한다.
거꾸로 한국인은 중국에서 임시 운전면허를 발급받아 렌터카를 운전할 수 있어 한중 간 ‘비대칭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형평성 논리도 허용론의 근거로 꼽힌다.
경찰청이 지난해 중국인 단기 체류자에 대한 조건부 운전 허용을 검토한 배경에도 이 같은 형평성 문제가 있다.
교통안전은 가장 큰 과제다.
제주도 자치경찰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제주지역 렌터카 교통사고는 2천414건으로 26명이 숨지고 4천32명이 다쳤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렌터카 비율은 11.4%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두 자릿수를 기록한 곳은 제주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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