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정현목의 문화노트] 멸종 위기 사랑

AI(인공지능)가 해결해줄 수도 없다. 신경림 시인도 ‘가난한 사랑 노래’란 시를 통해 말하지 않았나.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고. 결핍이 있기에 오히려 사랑이 더 절실할 수도 있다. 가난한 두 청춘...

[정현목의 문화노트] 멸종 위기 사랑

정현목 문화선임기자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이토록 다채롭게 포맷을 변주하며 인기를 구가하는 장르가 또 있을까.

짝짓기 예능 얘기다. ‘사랑의 스튜디오’(1994~2001, MBC)가 원조인 짝짓기 예능은 청춘 남녀를 합숙시켜 촬영한 ‘짝’(2011~14, SBS)을 거치며 점점 진화하고 있다.

미혼 남녀뿐 아니라 모태 솔로, 돌싱, 중년까지 사랑 쟁취 싸움에 참전하고, 옛 연인, 친남매와 예비 시어머니(장모)까지 관찰 카메라 앞에 선다. 연예인들의 짝짓기 만으론 부족했던지, 이제는 그들의 2세들까지 뛰어들었다. 무속인, 성소수자끼리의 만남을 주선하는 예능도 있다.

짝짓기 예능이 왜 이토록 인기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남의 연애를 훔쳐보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간 본능에 내재된 관음 욕구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벌이는 밀당, 심리 싸움은 로맨스 영화보다 재미있다.

바깥세상에도 짝이 많건만, 출연자들은 마치 그 안에서 생을 마치는 사람처럼 죽기 살기로 짝짓기에 나선다. 그렇기에 그들끼리의 역학 관계, 시시각각 변하는 호감도, 환희와 낙담 등 날 것의 감정이 펼쳐지는 합숙소는 인간 심리 실험장 같다.

기자도 짝짓기 예능에서 인간 심리,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와 취향 등 많은 걸 배운다.

짝짓기 예능의 인기가 높은 건 연애 감정의 대리 체험 창구이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퍽퍽한 현실 때문에 연애조차 사치로 느끼는 젊은 세대가 이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연애는 포기했지만 남의 연애는 훔쳐보고 싶은 세태가 씁쓸하기 그지없다.

영화 ‘파반느’의 주인공 미정(고아성·앞쪽)과 경록(문상민). [사진 넷플릭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멜로 영화 ‘파반느’를 내놓은 이종필 감독은 인터뷰에서 ‘멸종위기사랑’이란 노래까지 등장한 현실을 언급하며 “이 영화를 통해 젊은 친구들에게 사랑이 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왔다네 정말로/아무도 안 믿었던/사랑의 종말론~’이란 가사로 시작하는 이찬혁의 노래는 사랑이 희귀한 ‘레어템’이 돼가는 시대의 불안을 경쾌한 신스팝 리듬에 담아냈다.

고통스러우면서도 찬란한 연애의 감정은 유튜브나 짝짓기 예능으로 대리 체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AI(인공지능)가 해결해줄 수도 없다.

신경림 시인도 ‘가난한 사랑 노래’란 시를 통해 말하지 않았나.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고. 결핍이 있기에 오히려 사랑이 더 절실할 수도 있다. 가난한 두 청춘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영화 ‘파반느’가 보여주는 것처럼, 결국 우리를 구원하는 건 사랑이라는 빛이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