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늘날 세계 경제는 통합돼 있고 기축 통화로 달러를 사용한다. 당연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 금리가 올라가면 달러가 미국으로 흡수되고, 내려가면 해외로 나간다. 돈은 고수익을 따라 자유롭게 흘러간다. 어느 나라의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 달러가 들어가 더 부채질을 한다. 환전 수요에 따라 환율이 내려간다. 고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면 달러는 빠져나간다. 환율은 다시 올라간다. 우리나라에서도 목격되는 현상이다.
주요 국가들의 통화 정책은 어느 정도 동조화될 수밖에 없다. 달러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더 그렇게 됐다. 금융 위기를 감지하기 시작한 2007년 9월부터 연준은 기준금리를 4.75%에서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금융 위기가 본격화되자 연준은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아 단숨에 기준금리(하방)를 0%로 떨어뜨린다. 그러자 유럽중앙은행(ECB)도 기준금리(예금금리)를 2.75%에서 0.25%로 크게 내렸다. 한국은행은 5.25%에서 2%로 급락시켰다.
이후 미국은 2015년 12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해 정상화를 시도했으나 코로나19가 확산되자 2020년 3월 다시 제로금리로 돌아간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한때 전년 대비 9%를 넘는 등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2022년 3월부터 금리 인상을 시작해 2023년 7월 5.25%에 이르렀다.
경기 후퇴에 대한 아우성이 높아지자 2024년 10월 단번에 4.75%로 낮추면서 다시 인하 사이클로 접어들었다. 현재 3.5%에 머물고 있다. 불황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양쪽 낭떠러지를 피하면서 좁은 길을 조심스럽게 운전하고 있다.
지난 5월 새로 취임한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애매한 시기에 무대에 등장했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유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배럴당 55.13달러(서부텍사스유 기준)까지 내려갔던 유가는 지난 4월 112.95달러로 두 배 이상 올랐고 지난 21일 기준 84.34달러로 여전히 높다.
전황이 불확실한데다 투기적 수요까지 겹쳐 유가는 종잡기 어렵다. 이에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대비 4.2%로 최근 들어 가장 높았다. 워시 의장은 취임 일성으로 물가 안정을 강조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 수준이 아니라 물가가 상승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미국 물가는 지난 코로나19 위기시 크게 상승했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를 상쇄하지 못하는 상당수 미국인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절대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4.2%의 상승은 매우 위협적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부에서는 물가 관리가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달 연준 회의에서는 금리가 동결됐지만 연내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에 비해 표면적으로 경제는 나쁘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미국 성장률을 2.0%로 전망하고 있다. 2024년 2.8%, 지난해 2.1%에 비해 다소 낮지만 그럭저럭 현상 유지는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는 미국 경제가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기술적 전환기에 시장을 선점하려는 사업자 간 경쟁이 거대한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올해 AI 관련 자본지출 전망치는 8140억 달러(약 1203조 9060억원)로 전년(4490억 달러)에 비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비금융 기업 이윤 증가의 80%가 엔비디아와 빅테크에 집중되고 있으며, 주가 상승도 얼마 안 되는 이들 기업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3년간 평균적으로 정보기술(IT) 장비 및 소프트웨어 지출은 각각 11%, 8% 늘어났다. 그러나 다른 분야의 지출은 연 평균 1.6% 감소했다. AI 붐이 없었다면 미국은 이미 불황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현 시점에서 미국은 금리를 낮춰야 할 정도로 경제가 나쁘지 않다. 이달 실업률은 4.2%로 코로나19 이전 5년간(2015~2019년) 평균 4.4%보다 오히려 낮다.
미국이 금리를 올려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AI 관련 투자는 과열 조짐이 있다. 빅테크조차 막대한 회사채를 발행하고 있으며 상당수 기업은 사모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금리 인상은 자칫 투자 붐을 가라앉힐 뿐만 아니라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연준은 매우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과 같이 AI 호황을 겪지 못하고 있는 유럽연합(EU)과 일본은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ECB는 2024년 6월부터 기준금리를 3.75%에서 낮추기 시작해 2.0%까지 인하했으나 지난달 2.25%로 소폭 인상했다.
EU는 코로나19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미국 못지 않은 인플레이션 위기를 겪었다. 물가는 점차 안정되는 추세였으나 지난달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2%에 이르러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본의 경우는 2024년 3월부터 -0.1%에서 인상을 시작해 0.75%에 이르렀는데 지난달 다시 1%로 올렸다. 지난 22일 달러당 엔화가 163.24엔으로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낮은 금리는 수출을 자극하는 효과보다는 수입품 가격 인상을 통해 물가 압력을 높이는 효과가 더 크다. 이에 일본의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며 단지 완급 조절의 문제만 남았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2.5%에서 2.75%로 소폭 인상했다. 금융 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미국의 금리를 추종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미국과 같은 경제 체력이 없기 때문에 엑셀과 브레이크를 과감하게 밟지 못한다. 대신 미국보다 조금 빠르거나 늦게 속도를 조절한다.
최근 한국 경제는 반도체 호황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올 상반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4% 증가한 4967억 달러(약 734조 6193억원)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율 전망치를 1.9%에서 2.6%로 크게 올렸다.
반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지난달 3.2%로 상당한 수준일 뿐 아니라 올해 들어 상승 추세다. 환율은 1561.5원까지 올랐다가 지난 22일 1481.3원으로 내려갔으나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일본과 비슷하게 높은 환율은 수출 증가의 혜택보다 물가 상승의 폐단을 더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저금리는 부동산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이미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유동성 증가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정부는 서둘러 이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 또 저금리는 신용을 통한 주식 투자를 조장함으로써 주가의 변동성을 크게 높인다.
기준금리 인상은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부담을 늘리고 기업의 경영을 어렵게 할 것이다. 그러나 취약층에 대한 지원은 재정 및 금융 정책을 통해 맞춤형으로 하고 시장으로 연결되는 큰 파이프라인은 좁히는 것이 맞다. 미국의 통화 정책은 급작스럽게 선회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사전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미 세계는 금리 인상 사이클로 접어들었다. 이것을 전제로 정부는 물론 가계와 기업의 대응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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