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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규 정당 바로 세우기 대표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인공지능(AI), 미국 앤트로픽의 미토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초강력 AI 모델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가 수천개의 제로데이 취약점을 초고속 탐지 능력이 드러나자, 일반 공개는 전면 보류됐다. 이 모델이 실제로 활용될 경우, 미국 금융 시스템이 민간 기업의 제품에 의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 당국을 비롯해 빅테크·금융권·국방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간 긴장 관계를 구축하던 분위기였지만, 이제 조국과 인류의 미래를 우려하기 시작했다. 중동은 이란 전쟁의 화마 속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경제적 파국을 목도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와 대만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은 ‘지구촌’이라는 낭만적 표현을 삭제한 지 오래다. 문명사적 전환기와 세계 곳곳이 사실상 전시 상황으로 치닫는 ‘제3차 세계대전의 초입’이라는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정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참담하게도 정치의 중심부에는 국가의 운명이나 공동체의 생존보다, 카메라 플래시와 SNS의 ‘좋아요’ 숫자에 매몰된 ‘셀럽 정치’의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조국은 게시글을 올리고, 한동훈은 라이브 방송을 켠다. 이준석은 설 무대를 찾아 주변을 맴돈다.
조국은 기소될 때도, 유죄 판결을 받을 때도 SNS를 멈추지 않았다. 한동훈의 당대표 시절 최대 치적은 유튜브 구독자 수와 팬카페 회원 수였다. 이준석은 집안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한가롭게 치국평천하를 논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한 이미지는 있는데, 정작 그 이미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열거된 인물들은 과연 어떠한 정치를 지향하고 있을까. 이름값에 기댄 정치를 한다면 그것은 결국 인지도 확장에 머무는 전략일 뿐이고, 그 반대라면 정치를 수단으로 삼을 뿐이다. 기 드보르가 에서 경고했듯, 오늘날 정치는 점점 ‘보여지는 것’으로만 존재한다. 결국 이는 ‘나르시시즘적 쇼비즈니스’에 불과하다.
반정치(Anti-Politics)다. 삶을 바꾸는 정치가 아니라 소비되는 정치, 심판받는 정치가 아니라 공유되고 ‘좋아요’를 받는 정치다. 정치의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퍼포먼스가, 정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미지가 들어섰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역사의 도용이다. 어울리지도 않는 과거의 거인들을 끌어와 자신을 이미지화하는 행태는 하나의 정치적 문법이 되었다. 김대중을 인용하고, 노무현의 언어를 빌리며, 링컨과 드골, 심지어 오바마까지 소환한다. 그러나 그 인용의 맥락은 언제나 공허하다.
거인의 이름을 빌려 자신을 크게 보이려는 욕망. 에리히 프롬이 지적했듯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현대인은 때로 강한 지도자에게 귀의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팬덤은 그 귀의의 현대적 변형이다. 팬덤 속에서 정치인은 더 이상 검증의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린 권위주의에 가깝다. 이러한 ‘이미지 정치’의 본질은 철저한 이기주의와 결과지상주의에 있다. 세계 정세가 어떻게 요동치든, 기술 발전으로 서민이 데스 밸리(Death Valley)에 갇혀 경제적·사회적 늪에 빠지든 상관없다. 오직 자신의 ‘팬덤’을 유지하고,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국가적 혼란조차도 이들에겐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오로지 ‘문제 발굴’에만 천착해 신문 1면 장악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강화하는 일에만 열중하는 반정치가 사회를 병들게 했다. 질서와 통합을 만들어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사회적 에너지를 무질서한 갈등으로 치닫게 만들고 있다.
이 비겁한 유희를 끝내야 한다. 결국은 선거다. 단순히 지역 일꾼을 뽑는 이벤트쇼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26년이야말로 구세대의 유산인 ‘셀럽 정치’와 무질서한 ‘팬덤주의’에 대한 단호한 사형선고여야 한다. 정치는 스펙터클이 아니다. 정치는 삶이자 현실이다.
반정치의 시대를 이제 끝내야 한다. 그다음은 무엇인가. 정치복원이다. 정치가 다시 일상의 언어로 돌아오는 것. 골목의 불편함이 정책이 되고, 밥상머리의 걱정이 예산이 되며, 아이의 통학로가 의제가 되는 정치. 스펙터클이 아니라 일상, 이미지가 아니라 과정과 결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정치의 본래 모습이다. 정치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반정치 청산 이후의 빈자리를 정치복원이 채워야 한다. 그 첫 번째 벽돌을 6월의 유권자들이 놓아주길 기대한다.
신인규 정당 바로 세우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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