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소비자보호의 민낯]
비대칭 규제의 역설
“공격투자형이어야 ETF 가입돼”
직원들이 고객에 일일이 알려줘
불완전판매 방지 취지 퇴색 우려
서울 시내에 설치된 은행 ATM기. 연합뉴스
현행 제도상 은행 고객은 금융투자상품에 가입할 때마다 투자자 성향 분석을 거치도록 돼 있지만 절차가 길고 복잡한 탓에 영업점에서는 직원이 ‘모범 답안’을 알려주는 식의 영업이 이뤄지고 있다.
31일 C은행 영업점에서 반도체 ETF 상품 가입을 위해 투자 성향 분석을 진행하던 중 ‘손실 감내 수준’ 항목에서 ‘50% 이내 손실 감내 가능’을 선택하자 직원이 “전액 손실 감내 가능을 선택해야 공격투자형으로 나온다”고 안내했다. 반도체 ETF 상품은 2등급인 ‘높은 위험’으로 ‘공격투자형’ 고객에게만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D은행 영업점에서도 직원이 고객의 성향 분석 진행 과정을 지켜보며 “가입을 원하시는 상품은 지금보다 더 공격적으로 응답하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은행의 ETF 상품 판매는 통상 고객이 먼저 원하는 상품을 밝히고 이후 투자성향 분석을 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결과가 안정형·안정추구형 등으로 나오면 고객이 원해도 ETF 등 고위험 상품을 추천할 수 없다. 이에 현장에서는 직원이 고위험 상품에 가입하기 위한 답변을 유도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상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성향 분석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진행하는 사례도 있었다. 한 은행 창구에서는 직원이 “현장에서 성향 분석을 하면 10분 이상 소요되는데 모바일로는 3분 정도면 끝난다”며 모바일 진행을 권유했다.
투자 성향 분석은 고객에게 적합한 상품을 권유해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한 장치이지만 절차에 따른 불편이 커지면서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객이 스스로 판단해 응답해야 할 항목에 직원이 개입하는 관행이 굳어질 경우 형식상 절차만 갖춘 채 고위험 상품 판매를 유도하는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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