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전시 따라잡기] 이광호 작가 개인전…리안갤러리 대구 신관 29일까지

미술 작품이 끝내 남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형태일까, 아니면 재료일까. 그것도 아니면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일까. 세계 미술사에서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은 재료나 작업 방식의 혁신보다 더 중요한 것을 제시하며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광호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안갤러리 대구 신관 전경.

미술 작품이 끝내 남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형태일까, 아니면 재료일까. 그것도 아니면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일까. 세계 미술사에서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작가들은 재료나 작업 방식의 혁신보다 더 중요한 것을 제시하며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들의 작품들이 시대를 넘어 살아남은 힘은 세계와 관계 맺는 존재 방식, 삶과 시대를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을 끝내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완성해 낸 태도였다.

세계미술사가 기록된 위대한 예술가들은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어떤 언어로 우리 앞에 펼쳐 보였는가”를 인정받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영혼을 발견했고, 파블로 피카소는 하나의 세계를 수많은 시점으로 해체했으며, 앤디 워홀은 소비되는 이미지를 통해 현대사회의 초상을 드러냈다.

이광호 작가가 리안갤러리 대구에 전시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이광호의 작업 앞에서 동일한 질문을 떠올린다.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가 먼저 읽힌다. 최근 개막한 리안갤러리 대구 신관 개관전인 이광호 개인전 ‘Initial End’에서는 그가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으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리안갤러리 대구 신관은 기존 전시장 건물을 허물고 새롭게 마련한 공간으로, 수장고와 프라이빗 뷰잉룸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번 이광호 개인전은 신관 첫 공개 전시이자 마지막 전시다.

이광호는 ‘전선을 엮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산업 현장의 재료인 전선을 손으로 감고, 묶고, 엮어 거대한 유기적 구조를 만드는 작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전선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작업을 전선으로 한정 짓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전선은 재료의 하나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자신의 세계관을 펼치는데 전선이라는 재료가 주효했을 뿐, 언제든 또 다른 재료가 등장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

전선이라는 재료의 출발은 가족이었다. 유년 시절 농사를 짓던 조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주변의 평범한 재료들이 생활 속 도구로 다시 태어나는 풍경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버려진 사물도 쓰임을 만나면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경험이었다.

‘짜기’라는 기법 또한 어머니의 뜨개질로부터 왔다. 실 한 올이 반복되는 손놀림 속에서 천이 되고 옷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짜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창조 방식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다. 그 기억은 훗날 산업용 전선으로 이어졌다. 전통적인 손기술이은 현대 산업 재료와 만나 완전히 새로운 조형 언어로 거듭난 것이다.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는 약 200㎞에 달하는 전선을 쌓아 올려 만든 거대한 조형물이 설치됐다. 조형물은 수많은 전선들로 제작됐는데, 그 속에서 전선을 짜고 쌓은 작가적 행위들이 셀수 없이 축적돼 있다. 그것은 곧 시간의 축적을 의미한다. 이광호에게 전선은 목적이기보다 하나의 언어다. 평생 전선을 직조했지만, 실제로 그가 엮은 것은 시간이었다.

전시 제목인 ‘Initial End’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전시제목인 ‘시작’과 ‘끝’은 직선적 시간의 개념을 뛰어넘는다. 그에게 시작은 끝을 품고, 끝은 다시 시작을 낳는 개념으로 작동한다. 시작과 끝에 대한 그의 인식은 불교철학의 순환론을 닮아있다.

“하나의 선을 자르는 행위는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연결의 출발점입니다.”

그는 작품을 유기체로 인식한다. 이번 전시에서 바닥에 설치된 거대한 조형물은 다른 전시장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설치할 수 있다. 예컨데 바닥이 아닌 천장에 달 수 있다.

“제게 작품은 고정된 조형물이기보다 공간과 만나며 계속 생성되는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 그의 작업에는 발견되는 미학 중 하나는 느림이다. 전선을 엮어 조형물을 제작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느림의 방식이다. 디지털 기술이 속도의 미덕을 낳고 있는 현실에서, 가장 느린 길을 택한 것이 맞나 싶을 만큼 그의 작업은 느리게 진행된다.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제공

작업에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은 과정이다. 그는 완성된 작품보다 작업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예전에는 완성도를 향해 달렸지만 지금은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되는 전선 감기와 묶기, 당기기와 절단이라는 반복된 행위가 그에게는 노동을 넘어 수행이고, 그 시간들이야말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단초”라는 인식이 담겼다.

그가 작업 과정에서 수없이 많이 던졌던 “나는 왜 계속해서 조형물을 짜고 있을까”라는 질문들은 “나는 무엇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과 연결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재료나 완성된 조형물보다 그가 몸으로 감당하며 반복한 행위 자체이며, 수없이 반복된 그의 행위들은 수행 그 자체였다. “형태보다 수행”이라는 그의 말은 이를 증명한다.

그는 재료를 통제하려는 태도를 지양한다. 젊은 시절에는 재료가 가진 물성을 철저히 통제하려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완벽한 통제야말로 작품의 생명력을 잃게 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오히려 작업 과정에서 저항하고 우연성이 개입되는 통제가 어려운 재료들을 선택했다.

이광호 작. 리안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서도 새로운 재료가 포착된다. 전선을 중심으로 한 그의 작업이 칠보, 사진, 설치, 조각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금속판 위에 유리질 유약을 입혀 고온에서 구워낸 칠보 작업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가는 칠보작업을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 “전선을 엮던 시간이 다른 표면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칠보작업은 완성까지 수차례의 소성과 연마, 긁어내기와 재소성을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여섯 번, 일곱 번씩 가마를 드나들며 여러 겹의 색을 쌓고 다시 벗겨내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렇게 뜨거운 열 속에서 생성된 표면은 그야말로 시간의 응축이다. 이는 작가가 작품 제목을 ‘시간의 표면’이라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가마 속에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얻는 칠보 작업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반영돼 있다. 그는“예술은 완벽한 결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실패를 견디며 다시 시작하는 힘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칠보 작업 외에도 3D 프린팅 등DNK 다양한 재료와 기술에도 적극적이다.

비록 다양한 재료를 수용하는 그이지만 변함없이 고수하는 것도 있다. 바로 발손의 수행이다. 심지어 3D 프린팅 마저도 “원본은 내가 만든다”고 말할 정도다. 그에게 기계는 자신이 만든 패턴을 반복 수행하는 또 하나의 손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제작 방식이 아니라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 자신의 몸과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활동은 국제적이다.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 보테가 베네타 등과의 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브랜드들이 이광호와 협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손으로 반복적으로 엮고 쌓는 시간성, 재료와 끝없이 대화하는 장인정신, 그리고 직조를 통해 공간을 새롭게 조직하는 조형 감각 등이 꼽힌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뜻밖의 고백을 했다. “저도 제 마지막 작업이 궁금합니다.” 70대, 80대가 되면 지금처럼 무거운 전선을 들지 못할 수도 있고, 그때는 또 다른 재료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어떤 형상을 만들게 될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렇더라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고수하는 것은 있다. 그가 지금까지 던져왔던 “나는 지금,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작업 속에 행위를 시간으로 축적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그의 태도는 시간이 지나고 계속해서 면면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전시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