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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북의 창]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들

사람들은 인생을 회고하며 종종 묻는다.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떠난 뒤 무엇이 남을 것인가?"

[전북의 창]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들

[전북의 창]죽음 이후에도 남는 것들

칼럼

새전북

2026년 06월 25일 16:47

승인

2026년 06월 25일 20:29

사람들은 인생을 회고하며 종종 묻는다.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내가 떠난 뒤 무엇이 남을 것인가?"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축적한 가치와 철학, 그리고 사회적 기여를 다음 세대가 이어가는 일은 개인의 일을 넘어 중요한 사회적 의미가 있다. 재벌가의 상속과 공익문화재단, 전직 대통령의 기념재단, 문화‧체육인의 문학관‧미술관‧체육관 등 건립 등은 우리 사회의 관심사다. 재벌가의 상속세와 지배구조, 경영권 승계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이다. 모든 상속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고, 때로는 탐욕과 독점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상속은 단순히 돈을 물려주는 행위가 아니다. 기업을 창업한 사람들은 자신이 세운 기업이 자신이 죽은 뒤에도 영원히 번성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재산의 이전인 동시에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와 비전을 후손과 미래에 남기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 이면에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욕망이 숨어 있다. 바로 유한한 생명을 넘어 자신이 이룩한 무언가가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남기를 바라는 간절함이다. 그런 점에서 기념재단 등의 설립은 매우 흥미로운 사회적 발명품이다. 개인의 삶은 끝나지만 그 사람이 세운 목적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김대중평화재단‧노무현재단은 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과 연구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라는 가치는 재단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고 있다. 미국의 Carnegie Corporation of New York 역시 마찬가지다. 철강왕으로 불렸던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생전에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도서관과 교육, 연구기관 설립에 사용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 남아 있는 카네기 도서관은 그의 육체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은 유산이다. Rockefeller Foundation도 비슷하다. 석유 산업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한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공익사업에 투입했다. 질병 퇴치와 교육, 국제 개발 분야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성과는 록펠러라는 이름을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 사회적 유산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이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자신이 추구한 가치는 죽음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것은 재벌이나 위대한 정치인, 세계적 자선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교사는 제자에게 남긴 가르침으로 살아남고, 부모는 자녀에게 전한 삶의 태도로 살아남는다. 연구자는 논문과 학문적 성취로, 예술가는 작품으로, 지역 활동가는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계속 존재한다. 정년퇴직을 앞둔 사람에게 필요한 질문은 그래서 "얼마를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것인가"일지 모른다. 어떤 이는 돈을 남기고, 어떤 이는 건물을 남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재산은 흩어지고, 건물은 낡게 된다. 반면에 사람의 생각과 철학, 공동체를 위한 실천은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옮겨가며 새로운 형태로 살아남는다. 그것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씨앗을 남기고 사라지지만 숲은 계속 확장되는 것과 같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삶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기억과 기록, 제도와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일부를 미래에 남길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장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무엇을 이어지게 했는가에 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자신의 자리를 떠나게 된다. 직함도, 명함도, 소유했던 것들도 결국 손에서 놓게 된다. 그때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재산의 규모가 아니라 자신이 세상에 심어 놓은 가치일 것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사람이 남긴 뜻은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유한자인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형태의 ‘영원성’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나의 치열한 삶과 추구하며 살아가는 가치는 이 사회에 기억되고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 송광섭(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법학박사, 수필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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