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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강길선 교수의 세계여행기 2. 이탈리아 모데나

이탈리아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물으면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가정주부들은 올리브유, 치즈, 식초 등을 들 것이고, 요리에 관심이 많으면 스펙(발효시킨 돼지고기) 중에 관짤레(돼지 뺨 부분)등을 들 것이다.

[전라 Insight]강길선 교수의 세계여행기 2. 이탈리아 모데나

우리 주에는 9명당 한 개 꼴의 기업이 있다. <무차렐리 에밀리아·로마니아주 경제부장관>

이탈리아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물으면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가정주부들은 올리브유, 치즈, 식초 등을 들 것이고, 요리에 관심이 많으면 스펙(발효시킨 돼지고기) 중에 관짤레(돼지 뺨 부분)등을 들 것이다. 또 고급 스포츠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을 들것이다. 그 페라리의 도시, 금세기 최고의 바리톤 파바로티의 고향, 모데나에 왔다.

파바로티는 아버지 페르난도 파바로티가 테너 가수였고 제빵사였다. 어릴 때부터 모데나 대성당의 성가대(모데나 로시니 만레 합창단)에서 아버지와 함께 활동하였다. 파바로티는 노래도 잘했지만, 인간성·친화성·낙천성의 인간적 매력을 인류애로 승화시켰다. 화가로도 활동하였다. 그가 부른 ‘오 솔레 미오!(오 나의 태양!)’는 최고의 노래 중에 하나이다. 파바로티를 만난다는 크나큰 기대를 가지고 왔지만 그의 생가와 박물관에 방문하는 것은 실패하여 그가 유년 시절에 노래를 공부하였고 장례식을 치루었던 모데나 대성당에서 그를 만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모데나는 기원전 로마시대 길인 에밀리아 가도(Via Emilia)가 지나간다. 비아 로메오(Via Romeo)는 순례자의 길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가도가 만나는 주의 이름을 에밀리아·로마냐 주라고 한 것이다. 이 지역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전국에서 제일 못 살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현재에는 에밀리아·로마니아 주에는 40만 개가 넘는 기업이 있다. 이 제조업이 현재의 이탈리아를 경제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제조업이 국가 경제에 끼치는 좋은 예이다.

8천개 정도가 대기업과 협동조합이며 나머지 39만여 개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이 지역 고용률이 70%를 넘어 실업자가 거의 없다. 특히 영유아 교육으로 유명하고 여성 고용률이 70%가 넘는다. 영유아 교육의 완벽함이 여성들을 경제활동으로 끌어내고 여성들의 섬세함과 꼼꼼함이 이 지역 번영으로 이끌었다.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9개 현(縣)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데나와 레지오·에밀리아 현은 세라믹·농기계산업, 리베나 현은 신발산업, 리미니 현은 목재생산·기계산업, 폴리·세세나 현은 실내장식·가구산업, 파르마 현은 식료품산업, 페라라 현은 바이오메디칼산업, 그리고 주도가 있는 볼로냐 현은 포장기계와 명품카산업로 유명하다. 못 살던 지역이 40년 만에 가장 잘 사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지자체들이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모데나 지역이 유명한 것이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파가니 등의 슈퍼카와 명차들로도 유명한 도시이다. 지자체에서 모터 밸리를 조성하였다. 페라리는 1929년 엔초 페라리에 의해서 설립된 자동차 회사이다. 유명한 모델360모데나는 이 도시의 이름으로부터 따왔다. 이탈리아는 1899년 피아트가 설립되었을 정도로 자동차산업이 125년 이상으로 오래되었다.

도시 중앙에 로마 광장이 있다.(그림1) 곁에 모데나 두칼레 궁전(그림2)을 구경하였다. 두칼레는 왕궁이라는 뜻인데, 이탈리아 사관학교가 있다. 시내에는 젊고 예쁜 사관생도 들이 가득차 활기가 있다. 이탈리아 해군사관학교는 토스카나 주의 리보르노(Livorno) 시에 있다.

왕궁 주변의 모데나 대성당(그림3)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우아한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꼽힌다. 최대 크기로 만든 장미창, 3개의 문, 중간 부분에 아치가 들어가 있다. 정면에 아담과 이브의 창조, 낙원에서의 추방, 노아의 홍수 등을 부조로 새겨 넣었다. 이 대성당의 독창성은 테라코타였다. 진흙으로 조각한 다음, 구운 테라코타 상으로 장식하였다.(그림4) 그리고 대리석 등의 화려한 소재는 배제하였고 제대단을 복층구조로 만들었다!(그림5) 결국 이탈리아 내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아주 새로운 제단을 만난 것이다. 아마도 이 지역은 대리석을 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성당 내부는 벽돌로 지었는데, 제대는 복층으로 복도 양옆은 3층 구조로 건축하였다. 언뜻 보면 집 속에 집이 있는 것처럼 건축되었다.

테라코타는 진흙에 조각한 후 구운 것으로 아리고 다 캄피오네(Arrigo da Campione) 작품이다. 원래 유럽의 도자기를 구워내는 기술은 동양기술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유는 1400~1500℃ 이상의 고온을 얻을 수가 없었다. 연료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풀무에도 문제가 있었다. 상감청자나 본차이나 등을 얻기 위한 고온의 도요를 원나라와 고려만이 가지고 있었던 최첨단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복층 대대에서 이 층으로 올라가는 대리석 난간에는 최후의 만찬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 14세기에 제작된 금색 나무 십자가가 교회 정중앙에 매달려 있다.

모데나 대성당의 원래 이름은 “성 제미니아노 성모승천을 기념하는 대주교좌 대성당”인데 모데나의 수호성인이 성 제미니아노이기 때문이다. 모데나는 성 제미니아노 성인의 유해를 1700년이나 넘게 모셔왔다. AD350년경 아틸라 훈족의 침략을 기도만으로 안개를 일으키고, 화재를 일으키게 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게 한 성인, 성 지미냐노도 만났다.

성당에 붙어있는 토레 치비카(기란디나 탑, 그림6)탑은 89.32m에 이른다. 종루로는 이탈리아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5층 높이인 50m지점에 종루가 있다. 그 위에 40m 높이의 팔각형 탑을 세워 총 90m이다. 벽돌과 돌 그리고 세멘트만으로 이렇게 높은 탑을 어떻게 쌓았는지 기술이 참 좋다. 50m종루에서 내려다보는 주황색 지붕의 모데나 구시가지는 고색창연하며 감탄이 절로 나온다.(그림7) 도시 전체가 윤택함이 흐른다. 바로 주위에 있는 전통시장도 가볼 만하다. 서민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를 샀다. 피렌체의 피오렌티나, 볼로냐의 볼로네제가, 파르마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와 프로슈토 디 파르마가 유명한 것처럼 이곳은 식초가 유명하다. 발사믹은 향기가 좋다는 뜻이다. 향이 좋고 첫 맛은 달콤하되 목 넘김 후에 신맛이 경쾌하게 남는다. 모데나에서 재배된 트레비아노종 청포도 즙만을 쓴다. 이 즙을 뽕나무, 밤나무, 체리나무, 향나무, 그리고 떡갈나무 통에 순서대로 옮겨 보통 12~15년, 길게는 100년까지도 숙성시킨다.

근처 카페에 갔다. 매대의 한 쪽에는 가수들의 브로마이드라든지, 여러 굿즈를 함께 파는 데이다. 가만히 보니 정국과 BTS 외에 K팝 그룹의 것들로 거의 채워져 있다. 주인한테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워한다. 이러한 K팝에 관련된 것이 많이 팔린다한다. 옆에 공원에서 매달 K팝 공연도 열리는 등 활발하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소도시에까지도 K팝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치에사 델 보토 성당, 빈첸초 성당과 성 어거스틴 성당도 멋지다. 보토 성당은 페스트를 물리친 성당이다. 페라리 박물관도 강추다. 9월 달에 열리는 모데나 음악제, 10월 말에 열리는 초콜렛 축제도 유명하다. 1175년에 개교한 모데나 대학교는 주위의 페라리·마세라티 등의 스포츠카 산업과도 연계한 제조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산학협동이 활발하다.

성 지미냐노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전구를 빌었다. 국내의 시끄러움을 찾아들게 하여 주시고,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싸움에서 구해 주시고, 북한 주민을 구해 주시고, 전쟁을 하지 않고도 평화 통일을 이루고, 그리고 주위의 불안한 국제 정세로부터 우리 대한민국을 구해달라고 간절히 전구하면서 파바로티와 작별인사를 하였다. 모데나에서 만토바로 떠나는 기차 안에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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