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대성당과 조토의 종탑. 건물의 기하학적인 미가 뛰어나다.
대망의 피렌체다! 피렌체역→산타 마리아 노벨라성당→레푸블리카 광장→시뇨리아광장·베키오 궁·우피치 미술관→베키오 다리→산타 크로체 성당→피렌체 두오모와 조토의 종탑→산타 트리니타 성당·광장→바디아 피오렌티나→산 조반니 세례당→산 로렌초 교회→산 미니아토 알몬테 수도원→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카르멜 수도원 순으로 방문하였다. 다만 피렌체를 소개하려면 수십 회를 써도 모자를 지경이니 이 지면에서는 메디치가문과 르네상스의 천재들을 위주로 서술한다.
피렌체의 최근 인구는 38만 명이다. 아르노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중세·르네상스 시대에는 건축·예술·무역·금융의 중심지와 르네상스의 본고장이다. 1865~1870년까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이탈리아는 서로 상이한 22개의 언어가 있는데 통일 이탈리아 표준언어는 14세기 피렌체 방언이 되었다. 단테의 신곡과 페테라르카의 서정시의 역할이 지대하였다. 이탈리아 문학 황금기의 작가·시인들은 피렌체 방언을 문학언어로서 표준말로 채택하였다.
피렌체 대성당 돔의 내부 그림. 천당을 이곳을 통하여 간다고 믿어 채광이 뛰어나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귀족 역사상 최고인 메디치 가문의 고향이다. 메디치 가문은 1569~1737년에는 토스카나 대공의 지위를 세습하여 통치하였다. 조반니 메디치는 메디치 은행을 설립하였다. 백년전쟁 동안 영국왕에게 자본을 대었고, 아비뇽 수도 건설과 로마의 재건·사업 등 교황청도 마찬가지였다. 아들인 코시모는 이탈리아, 런던과 아비뇽 등의 외국은행도 설립하여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다. 브루넬리스키, 도나텔로, 미켈로조,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을 후원하였다. 플라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출간하였다.
조토의 종탑. 조토 디 본도네가 설계하였다. 85m이며 계단이 414개이다.
코시모 아들인 로렌초는 15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정치적·문화적 마스터 마인드로 뽑힌다. 로렌초는 새 시대의 변화를 직감한다. 학교설립·예술가·지식인을 본격적으로 지원한다. 일 마그니피코(il Magnifico, 위대한 자)라고 불리웠다.
메디치는 16세기 교황 레오 10세, 교황 클레멘스 7세, 교황 피우스 4세, 교황 레오 11세의 네 명의 교황을 배출하였다.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혼인하여 프랑스인들에게 이탈리아 선진문화들을 도입시켰다. 포크와 나이프를 가르쳤다. 오페라를 처음 만들었고, 승마 바지로서 여성 바지를 가르치고, 하이힐을 신켰다. 이를 “에티켓”이라고 하였다. 마리아 드 메디치도 프랑스 앙리 4세와 결혼하였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메디치 가문은 1434년 아버지 메디치와 1469년 코시모 1세를 시작으로 토스카나 대공으로 군림했으며, 1743년 직계자손인 안나 마리아 루이자의 사망으로 310년간의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선보이고 막을 내렸다. 루이사는 메디치의 모든 예술품을 피렌체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남겼고 결국 모든 근대 예술·과학·문학의 효시가 되어 인류의 사회과학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요즘 돈 단위로 재산이 약 20조 정도로 전 지구상 17위 부자에 올라있다. 최고 부자는 아프리카의 황금왕 만사부사로 500조원 정도이고, 로스차일드가가 약 350조원 정도였다.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명인 젊은이, 돈에 찌들린 이들을 후원하였고 철학과 과학 공부’를 시켰다. ①그리스·로마의 철학을 가르쳤다. ②사고방식의 전환을 위하여 플라톤과 교양7선을 부활시켰다. ③예술의 생산 방식을 바꾸어 르네상스를 견인하였다. ④부의 목적을 재정립하여 가문의 명예를 남겼다. 그리하여 “빛의 시대, 아름다움의 시대, 르네상스의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시뇨리아광장. 정면 골목이 우피치 박물관이다. 메디치가의 우피치는 영어의 오피스로 변하여 사무실이 되었다.
피렌체와 관련된 천재 예술가들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와 치마부에부터 시작하여 지오토, 난니 디 반코, 파올로 우첼로에 이르며, 로렌초 기베르티를 거쳐 도나텔로, 마사초, 델라 로비아 가문 등이 있었고, 프라 안젤리코, 보티첼리,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등을 거쳐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른다. 그 외에는 벤베누토 첼리니, 안드레아 델 사르토, 베노초 고촐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필리포 리피,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 오르카냐, 폴라이우올로, 필리피노 리피, 베로키오, 브론치노, 데시데리오 다 세티냐노, 미켈로초, 로셀리 가문, 상갈로 가문, 폰토르모 등이 있었다.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다른 지역 출신 예술가들로는 라파엘로, 안드레아 피사노, 잠볼로냐, 일 소도마,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있다.
단테, 페트라르카, 구이도 카발칸티, 라포 잔니 등의 시인들도 걸작을 내놓았다. 페트라르카와 조반니 보카치오는 1321년에 단테 서거 이후, 피렌체의 문학계를 이끌었다. 정치 작가이자 철학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도 있다. 각 개인의 천재들이 100년에 한명이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들이 100~200년 동안에 폭발적으로 나타나 인류의 문학·사상·예술의 발전을 꽃을 피웠다. 우리 인류로서는 행운이다. 진화상으로는 5억 년 전의 캄브리아기 생명 대폭발에 비견할 만큼 대천재들의 등극들이다.
인류 어느 곳을 보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정말 중요하다. 르네상스 시절의 스승과 제자의 대표 4그룹을 보자. ①지오토 디 본도네의 스승은 지오반니 치마부에, ②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 안드레아 델 베키오, ③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의 스승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그리고 ④라파엘로의 스승 피에트로 페루지노이다. 종교나 과학 그리고 과거나 현재에서도 똑 같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온다.
르네상스 회화를 열은 치마부에에 대하여 조르조 바사리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에서 이렇게 표현하였다. “하느님의 섭리라고나 할까? 회화예술의 재건에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 운명을 지고 1240년 피렌체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성이 치마부에라는 조반니였다.” 아레초(산 도메니코 성당), 로마, 아씨시(성 프란체스코 성당), 피사(산 프란체스코 성당)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고 피사에서 서거하였다. 단테의 신곡에도 출연한다. 화풍은 그때까지의 기존 방식인 중세시대의 성화 수준에서 과감히 벗어나 인간의 감정, 고통, 슬픔, 비애, 안타까움을 표현하였다. 결국 온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을 연 거장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화가로서의 계보는 조반니 벨리니→조르조네 바르바렐리→베첼리오 티치아노→틴토레토→엘 그레코로 흘러 르네상스는 막이 내리고 인상파로 넘어 간다. 이들 중 메디치 가문에서 키워낸 4인의 천재예술가들은 보티첼리, 다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이다. 이들 천재들만으로도 책 몇 권을 쓸 수 있는 분량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다. 공부를 하고 이들의 예술작품을 만날 때마다 이들의 천재성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피렌체가 낳은 대표적인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의 3대 걸작은 ①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두 번째는 로마에 있는 ②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 그리고 세 번째가 피렌체의 ③산 로렌초 교회의 ‘신 성구실’이다. 미켈란젤로는 로렌초 메디치에 의하여 신플라톤주의를 교육받았다.
미켈란젤로는 조형예술 회화, 조각, 건축 3대를 완전 통일하였다. ‘성 모자상’을 조각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계단의 성모’, ‘최후의 심판’, ‘피에타’을 창조하였다. 혼자서 4년 동안 그린 프레스코화의 대절정인 ‘천지창조’는 인류가 그린 가장 위대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 4년 동안 개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벗질 않아서, 그림을 끝내고 신발을 벗을 때는 발과 개가죽이 완전이 붙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모든 인생에 몰입하는 미켈란젤로에게 어느 누가 물었다. 경쟁상대는 누구냐라고 했더니 “결국에는 몰입하고 완벽(paragon)을 추구하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철저한 몰입감이 르네상스를 더 나아가서 인간의 위대함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1550년에 조르조 바사리는 지금까지 또는 앞으로도 더 이상의 조각은 발전이 없다라고 단언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미켈란젤로는 ‘의미 있는 삶인가?’, ‘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지 못하고 이렇게 사는가?’라는 질문을 끊임 없이하였다. 이 일례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를 89세 때 하였다. 결국 “누구와 경쟁하느냐의 답은 나와의 경쟁이다”. 즉 “나는 미래의 나 자신과 경쟁한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일류 최대의 불세출 천재인 것을 피렌체에 와서 재차 확인하고 내 자신의 초라함을 느꼈다. 초라함과 함께 시에나로 가는 것이다.
전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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