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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라 Insight] 완주 봉동생강 “땅이 품고, 시간이 익힌다”

완주 봉동생강은 비옥한 토양과 큰 일교차 속에서 자라고, 토굴 저장이라는 전통 과정을 거치며 깊은 맛과 향을 완성한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토굴에서의 숙성은 품질을 높이는 핵심 비결이다.

[전라 Insight] 완주 봉동생강 “땅이 품고, 시간이 익힌다”

완주 봉동생강은 비옥한 토양과 큰 일교차 속에서 자라고, 토굴 저장이라는 전통 과정을 거치며 깊은 맛과 향을 완성한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토굴에서의 숙성은 품질을 높이는 핵심 비결이다. 여기에 공동체의 손길, 현대 유통과 가공, 체험 관광이 더해지며 봉동생강은 단순한 농산물을 넘어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이자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편집자

“생강은 땅에서만 자라는 게 아니에요. 토굴에서도 한 번 더 자랍니다.”

완주 봉동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 주민의 말이다. 이 짧은 문장에는 봉동생강이 가진 깊은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봉동 들녘. 수확을 마친 생강밭은 고요하지만, 그 속에서 건져 올린 생강은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바로 ‘토굴 저장’이다. 봉동생강의 품질을 완성하는 마지막 과정이자,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생강 토굴

봉동읍 구암리와 둔산리 일대에는 지금도 생강을 저장하는 토굴이 남아 있다. 땅을 깊게 파고 내부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이 전통 저장 방식은 수십 년, 길게는 1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지혜다. 외부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도 토굴 안은 대체로 영상 10도 안팎을 유지한다.

이곳에 저장된 생강은 서서히 숙성된다. 수분이 안정되고 섬유질이 부드러워지면서 특유의 알싸함은 더욱 깊고 은은하게 변한다.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시간으로 빚는 과정’인 셈이다.

봉동에서 40년 넘게 생강 농사를 지어온 김모(67) 씨는 토굴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토굴이 있었어요. 겨울이면 가족들이 모여 생강을 옮기고, 하나하나 손으로 정리했죠. 그게 일이기도 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함께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토굴은 단순한 저장 공간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기도 했다. 수확철이면 이웃들이 서로 품앗이를 하며 생강을 나르고, 저장이 끝나면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던 풍경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같은 전통은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일부 농가에서는 여전히 토굴을 고집하며 “시간이 만든 맛은 흉내 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토굴 저장을 거친 생강은 조직이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향이 오래 지속되는 특징을 보인다.

완주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토굴 저장은 온도와 습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돼 생강의 품질 저하를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며 “최근에는 이를 현대적으로 개선한 저온 저장시설과 결합해 품질을 더욱 균일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봉동생강이 ‘명품’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재배 환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렇게 수확 이후의 과정까지 세심하게 관리되기 때문이다.

-명품 생강 생육 최적 조건

봉동 일대는 만경강 유역의 비옥한 토양과 큰 일교차라는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조직이 치밀하고 향이 진한 생강이 생산된다. 여기에 토굴 저장을 거치며 맛과 향이 한층 깊어진다.

유통 환경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산지 중심의 단순 출하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공동 선별과 규격화가 이뤄지면서 상품성이 크게 향상됐다. 지역 농협과 생산자 단체는 브랜드 관리에 힘을 쏟고 있으며, 온라인 직거래와 라이브커머스 등 새로운 판매 방식도 시도되고 있다.

한 유통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단순히 가격보다 ‘어디서 어떻게 생산됐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며 “봉동생강은 스토리와 품질을 동시에 갖춘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가공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생강청, 생강즙, 생강환은 물론 최근에는 생강을 활용한 디저트와 음료까지 등장하며 소비층이 젊어지고 있다. 특히 겨울철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생강 제품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생강의 전략작목화

지역에서는 이를 관광과 연결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생강 수확 체험, 토굴 견학, 전통 방식의 생강차 만들기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은 물론 도시 소비자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봉동읍 한 주민은 “예전에는 그냥 농사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자원이 됐다”며 “우리 동네 이야기가 밖으로 알려지는 게 반갑다”고 말했다.

청년 농업인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스마트 농업 기술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고,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직접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 30대 청년 농부는 “부모님 세대가 지켜온 토굴과 재배 방식을 배우면서도, 새로운 유통 방식을 접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동생강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완주군 역시 생강을 지역 전략작목으로 육성하고 있다. 생산 기반 확대, 가공산업 지원, 체험 관광 연계 등 이른바 ‘6차 산업화’ 정책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이제 봉동생강은 단순한 농산물을 넘어 하나의 지역 브랜드이자 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도 토굴 안 생강은 조용히 숨을 쉰다. 그 시간은 곧 맛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봉동의 생강은 그렇게 자란다. 땅에서 한 번, 그리고 시간 속에서 또 한 번. 그리고 그 향기는 오늘도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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